영혼의 요양소

법정스님의 생애를 소설화한 <바람 불면 다시 오리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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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생애를 소설화한 <바람 불면 다시 오리라>

온화수 2017. 6. 22. 18:59

법정스님의 삶을 증언과 문헌을 취재해서 쓴 백금남님의 장편 소설이다. 속세에서의 어린 날부터 입적하시기 전까지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다.


법정스님의 세속 이름인 재철이라는 아이의 환경과 삶, 젊은 날 중이 되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과의 이별, 스쳐가는 인연들, 세속의 끈인 글만은 놓지 않았던 그, 종교를 넘나드는 진리의 인연, 시인 백석의 연인 나타샤와의 만남, 안거 중이라 못 찾아뵙던 어머니의 장례식, 법정의 죽음, 인연의 생성과 소멸 사이에서 발현되는 진리의 언어들. 400쪽이 넘는 소설을 상상하며 읽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럼에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의 글쓰기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는데 법정스님의 삶을 통해 힌트를 받았다.





ㅡ죽음이 무엇일까. 아무리 높은 선지식을 얻었다고 해도 갈 수밖에 없는 세계. 부처님은 그 세계를 열반이라고 했다. 분명히 타고 있는 불꽃을 바람이 불어와 꺼버리는 것이 죽음이다. 그리하여 본래 상태로 되돌려버리는 작업, 그것이 죽음이다. 그런데도 기가 막히게 수행승들은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버리는 작업을 열반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비로소 적정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한다. 바로 그 세계가 최상의 세계인 안락이라고 한다. 진정 그 세계가 영원한 평안의 경지요, 완전한 평화의 경지라고 한다. 적멸의 세계.

그러나 범부에게 죽음은 열반이 아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승에게 열반은 최상의 세계이지만, 범부에게는 미혹이고 미지의 세계이며 공포의 세계다.ㅡ 212~213P


ㅡ스승은 문자를 가까이하되 그것을 사다리로 삼아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 했던 것이다. 유가의 방식대로 글귀에만 매달린다면 어찌 될까?ㅡ 258P


ㅡ세상에 절 아닌 곳이 어디이며 승 아닌 이가 누구이던가. 꼭 머리를 깎고 승복을 걸쳐야 수도승이고,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면 수도승이 아닌가. 수도를 하기에는 오히려 거칠고 거친 저잣거리가 제격 아니던가.ㅡ 292P


ㅡ감정과 감성을 무기로 삼은 지식의 소산! 그러면서 모든 강물이 결국에는 예술이라는 바다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중생제도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상도, 어떤 신념도, 어떤 철학도, 어떤 신앙도, 결국에는 예술에서 꽃이 된다고 생각했다. 도가 예가 되려면, 예가 도가 되려면 순수무구純粹無垢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도와 예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구도의 방편으로 예를 택했다면 마음의 깨침 그대로가 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이 승이 가지는 예의 입장이다. 그럼 너는 그 경지를 얻어냈는가. 그 경지에서 중생을 인도했는가. 너의 글이 도의 궁극적 모습이었는가. 허접한 글로 중생의 마음을 훔치지 않았다고?ㅡ 4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