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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무력한 K는 엄마를 외면한다. K가 삶에 막막하고 죄스러워 종종 우울해질 때면, 그는 엄마를 피한다.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슬픈 표정보다 오히려 많은 감정을 함구하는 무(無)라는 표정이, 그녀에게 전염되리란 걸 걸 알기 때문에. K는 엄마의 방문 앞의 움직임에도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종교 관련 영상을 보기도 하고 명상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흐른다. 그의 눈은 강물이 되어 범람한다. 엄마는 날아온 각종 고지서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런 엄마와 대화를 하는 건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다. 당장은 엄마에게 위로가 되어도 더더욱 우울의 수렁 속으로 빠지는 성격이란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K는 엄마에게 만은 살가운 편이지만, 그녀와 거리를 둔다. 서로를 지켜내..
어젯밤부터 오늘 낮까지도 비가 멈추질 않네. 비가 와서 이틀 하고도 반 가까이 달리질 못했어. 어젯밤엔 비가 와도 그냥 뛰려고 했더니 엄마가 말리는 거야. 비 오는 날 이상한 사람 많다고. "이 동네 외국인 많잖니. 외국인 욕하는 게 아니라, 사장들이 돈도 제대로 안 주고 실컷 부려 먹기나 하잖아. 더구나 비도 오고 그러면 충동적인 마음에 한국인한테 해코지할지도 모르잖니. 더구나 밤이고." 그래. 여자 말 안 들어서 나쁠 게 있나 싶어 굳이 나서지 않았지.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새벽에 비는 잠잠해졌고, 아침 되니 다시 내리더라. '이따 저녁에 뛰어야겠다.' 생각을 바꿨지. 18시 지나니 비는 약해졌고 가랑비 수준이길래, 그냥 나서기로 했어. 이틀 반 가까이 못 뛴 한을 보상받으려는 듯 평소보..
절여진 집마다 화가 피었다. 화 피는 집에 파란 배추가 비치어, 젖은 앞머리처럼 축 쳐진 집들은 결박된 남편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니 아빠는 뭐한대니..."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성토를 했다. 아빠에게 부탁한 배추가 없다며. 우리는 배추밭이 있다. 엄마가 아빠에게 아침에 따달라고 부탁을 하고 확답을 받았다고 했다. 이미 주변 아주머니들과 김장 일정은 잡아놓았는데 배추가 보이질 않으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니 아빠는 말만 번지르르 해. 말이나 꺼내지 말던가." 비가 추적추적 추적 60분의 음산한 분위기처럼 쏟아졌다. 엄마는 야밤에 배추를 따겠다며 중무장을 하고 하우스로 향했다. 나는 엄마를 말렸다. "비 오는 데 어딜 가. 내일 아빠한테 말해." 엄마는 아빠..
엄마는 급여가 줄었다며 내게 하소연한다. 엄마는 다쳐서 그만두고 입원하셨다가 다른 곳에서 일하셨다. 그러다 전에 있던 공장에서 불러서 다시 간 것이다. 그런데 다시 급여를 기본급으로 줄이다니 너무하다는 것이다. 3일 내내 투덜거려서 내가 계산해봤다. 한 달 지나 10일이 급여일인데, 엄마는 한 달 조금 안 되게 일을 했다. 엄마가 전보다 급여가 줄은 것은 사실이지만, 엄마가 걱정하는 기본급 정도로 줄지 않았다. 그걸 안 엄마는 갑자기 화색이 돈다. 콧노래를 부르고, 편의점에 가자고 한다. 돈 20만 원 차이가 뭐라구. 사람의 감정을 좌지우지한다. 밤 11시가 됐지만, 남동생까지 꼬드겨 엄마와 편의점으로 향한다. 칭따오 두 캔과, 아사히 드라이 한 캔, 그리고 소시지를 고른다. 남동생은 엄마가 춥다며 눈 ..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이하 그레고르)는 자고 일어나니 벌레로 변해있다. 본인도 당황스럽고 회사에 갈 시간도 지나서 몸을 빨리 일으켜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어떻게 일어나고 걸어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레고르가 출근 시간이 지나서도 회사에 오지 않자, 사장님의 지배인이 그레고르의 집에 찾아온다. 지배인은 그레고르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동생과 함께 잠겨있는 그레고르의 방 문 앞에서 그레고르를 설득한다. 어머니는 그레고르만큼 착실한 아이가 없다고, 분명 어딘가 아플 거라고, 그래서 지금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배인에게 호소한다. 그레고르는 지배인에게 지금 잠시 몸이 불편해서 못 나가고 있는 거라며 회사로 가 계시면 곧 가겠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지배인은 강고하고 결국 그레고르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