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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이지성 본문

책 사유/자기계발

<리딩으로 리드하라> - 이지성

온화수 2012. 7. 23. 12:52

이 책을 읽는 중에도 끝까지 읽지 않았는데 하루 빨리 고전 책을 찾아서 읽고 싶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이 책은 점점 지루해지는 게 당연했다. 어쩌면 작가가 원한 게 이런 게 아닐런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일고 있는데 이게 당최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도 원문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울텐데 능력이 안돼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책을 읽고 있으니 한글이 한글이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단순히 한글의 이해도로써 이해하려면 최소 백독은 해야만 할 것 같다. 최근 읽은 책 중에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이 나에게 가장 큰 감명을 줬다. 철학과 역사를 좋아한다고 입으로만 떠들고 다녔지 실제로 철학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수업을 듣거나 한적은 있지만...

 

4학년 막학기의 스트레스를 탈피하고자 들었던 생명 철학 교양 수업이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줬다. 내 전공은 도구학문이기 때문에 되풀이하지 않으면 쉽게 잊을 수 있는데 철학 수업은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물론, 자세한 수업 하나하나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등의 변화랄까. 머리 아픈 걸 싫어했던 나에게 그 수업 하나로 인해 사회, 경제, 문화, 정치에 관심을 갖게 했고 책을 읽게 만들어줬다. 이 책을 읽은 것도 그 수업에서 시작된 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나를 또 한 번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줬다.


 

 


밑줄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두 개의 계급이 존재했다.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받는 계급. 전자는 후자에게 많은 것들을 금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조선의 지배계급은 인문고전 독서가 업이었다. 피지배계급의 접근은 사실상 허락되지 않았다. 중국의 지배계급은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인문고전 독서를 지나칠 정도로 중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피지배계급은 그 세계로부터 늘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일본의 쇼군 계급은 중국 고전을 마치 비밀문서처럼 전수했다. 다른 계급은 고전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유럽의 왕가와 명문 귀족 집안에서 실시한 교육은 인문고전 독서였다. 평민 이하 계급은 고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미국의 백인 지배계급은 흑인 노예 계급에게 인문고전 독서는 물론이고 문자교육 자체를 금지했다. 이는 농노에게 글을 가르치면 죽지 않을 만큼 매질하고 감옥에 가둔 유럽 및 러시아의 지배계급에게 배운 것이다.

 

21세기 지구의 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다. 그런데 21세기 지구의 대표적인 피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후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와는 거리가 멀다. 아니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어쩌면 그것은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나타났던 지배계급의 '의도'는 아닐까? 그리고 '의도'는 21세기에 걸맞게 자연스럽고 세련된 형태로, 아니 보이지 않는 '의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

 

초선진국이자 초강대국인 미국과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그 문턱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교해보자.

 

미국은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인문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레이트 북스 재단'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인문고전 독서 프로그램 및 독서토론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인문고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눈높이에 맞게 번역된 인문고전을 제공받을 수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저소득층, 빈민, 심지어는 노숙자도 의지만 있다면 인문고전 독서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류 대학 수준의 강사진이 포진하고 있는 무료 인문 고전 강좌인 '클레멘트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 인문 고전 독서 및 토론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공공기관 및 단체가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미국에 비교한다면 '없다'라는 말박에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나라 못지않게 인문고전을 사랑했었는데 말이다. 팔도강산에 차고 넘치던 동양고전은 이제 청학동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