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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이끄는 교육,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 안젤름 그륀·얀 우베로게 본문

책 사유/인문학

영성으로 이끄는 교육,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 안젤름 그륀·얀 우베로게

온화수 2012. 8. 15. 18:36

자녀 교육에 관한 책을 이제 갓 학생을 벗어난 내가 볼줄은 몰랐다. 지금 굳이 자녀 교육에 관한 책보다는 고전 책이나 베스트셀러와 같은 책들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처음으로 위드블로그에서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광고홍보를 전공했기 때문에 위드블로그 및 출판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블로거들이 신뢰를 많이 잃고 있고,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예비 소비자에게 내 느낌을 왜곡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느낀 그대로 쓰겠다. 

 

우선, 이 책을 처음 접한 느낌은 상당히 생소했다. 예상과는 달리 종교적인 느낌이 강했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영성'이라는 단어를 모른 내 무지의 탓이 크겠지만. 


 


제게 영성으로 충만한 삶이란 신의 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삶입니다. 더 높은 정신, 그러니까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과 접촉하는 삶이죠. 교회라는 물리적 공간과도 상관없고, 세상과 담 쌓은 채 은둔하는 삶과도 관계없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사랑, 공감, 인내, 관용, 용서과 같은 정신적·영적 가치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들어가는 글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영성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영성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이라고 나와있다. 그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블로그 관련 글들을 보니 기독교 관련 내용이 많았다. 다시 저자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보니 그 중 한 명인 안젤름 그륀은 독일 성 베네딕도회의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장이다. :)

이 책에서는 종교와 상관없이 '영성'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종교적인 색채가 있으니 무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단순하게'를 강조하면 영성에 대한 또 다른 의미가 눈에 들어옵니다. 영성은 날로 더해 가는 세상사의 복잡함을 줄이는 데 기여하죠. '단순하게'란 그냥 내버려 두는 자유방임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으로 눈을 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부모에게 적용하면 여유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완벽주의와 강박관념을 떨쳐버리고, 엄마·아빠로서 자기 자신은 물론 아이에게 더 부드럽고 관대해지라는 것이죠. '단순하게'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머물라는, 즉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우주와 자연이 자신에게 선사한 힘과 능력을 강하게 믿을수록 더 큰 영성을 느낄 수 있는 법입니다.

 

물론, 종교적인 색채가 있어도 그것과 상관없이 자녀를 키울 때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어린 시절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떠올려가며 읽으니 일정 부분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다소 내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나에게 이렇게 해서 이런 행동들을 했었구나.'라는 깨달음과 훗날 자녀를 키울 때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들. 이런 부분을 떠올려가며 읽으면 다소 책이 흥미로울 수 있으나 뒤로 갈수록 내 상황과 거리가 머니 지루한 건 사실.

 


영적 교육은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어른은 가르치고, 아이는 배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며라는 얘기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교육자가 있다. 

첫째, 아이들을 백지라 생각하고 자신의 능력과 기술로 빈자리를 채우려 하는 교육자가 있다. '지식 전달' 형 교육자다. 아이들은 미숙하고 무지한 존재이므로 자신이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둘째, 아이들을 찰흙 덩어리라고 생각하고 이를 자신의 힘으로 빚으려 하는 교육자가 있다. '도공' 형 교육자다. 아이는 아직 무형의 존재이므로 어른이 형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도 어른이 결정한다. 그러므로 이런 교육자는 유순한 아이, 복종하는 아이, 자기 뜻을 꺾는 아이를 원한다.

셋째, 아이의 기질, 성격, 특성을 키우는 교육자가 있다. '정원사' 형 교육자다. 어떤 식물은 물을 많이 먹지만, 어떤 식물은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썩어버린다. 또 어떤 꽃은 햇빛을 좋아하지만, 어떤 꽃은 너무 강한 햇살을 받으면 말라버린다. 정원사는 각 식물의 특성을 잘 파악해 물을 주고 햇빛을 조절해야 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백지로 태어나지 않으며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는 교육을 비판하고, 세 유형의 교육자를 예를 들며 설명한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사람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 보다는 아이의 인생길에 동행할 사람인 '정원사' 형 교육자가 안성맞춤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로는 다섯가지 사실을 유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첫째, 모든 아이는 자기만의 존재 방식을 지닌 유일한 존재이며 그 누구와도 비교 불가능하다. 

둘째, 교육은 교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기 도야와 관련이 있다. 자율성과 자립심 형성, 호기심과 창의성 개발에 기여하며, 이를 통해 아이 스스로 이룬 성과에 기뻐하도록 만든다.

셋째, 인생길을 탐색하는 것은 쉼 없는 모색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공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실망과 좌절도 경험해야 하고, 원하는 것을 잠시 미뤄야 할 때도 있다.

넷째, 영적 교육도 갈등되고 모순되는 여러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영적 교육은 힘겨운 순간 절망적인 순간을 용인한다. 그 때문에 정서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만 인생이 요구하는 여러 시험을 견뎌낼 수 있다.

다섯째, 상호 존중하고 공존하는 삶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규범과 가치를 전달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아이가 규칙을 무시할 때는 그에 따른 책임도 인식시켜주어야 한다. 자유와 책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아이들은 훈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교육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 고달픈 노동이 된다. 완벽주의적인 태도로 교육에 임하면 부모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교육만이 완벽한 아이를 만든다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무조건적인 훈육 보다는 '동행'을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저자는 아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야하고, 아이의 단점보다는 능력에 주목해야 하며, 늘 아이 곁에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부모와 자식 간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 영적 존재이며, 스스로 배운다. 하지만 분별력이 떨어지기에 그 시기에 부모와 자녀가 '동행'을 해야하는 것이지 '억압'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사회 규범과 가치를 배워야 능동적인 존재가 되며 강한 아이가 된다고 생각한다. '억압'을 하면 아이는 단순히 그 순간의 벌이 무서워 규칙을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고 책에서 말한다. 그렇다고 아이를 방임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신체적·정신적 우위를 가지고 아이들을 규범과 가치를 따르도록 억압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규범과 가치를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알려주고 '동행'하라는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풀을 잡아 당긴다고 해서 더 빨리 자라는 건 아니다.'

지금 아이에게 '동행'이 아닌 '억압'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혹여나 부모님이 '날 너무 억압해요.'라고 생각하는 자녀들은 이 책을 부모님에게 알려보는 것도 새로운 시작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