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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뮤니케이션의 역사> - 어빙 팽 본문

책 사유/사회과학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역사> - 어빙 팽

온화수 2013. 8. 11. 20:42

본래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체는 인간의 의사소통을 용이하게 하는 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매스미디어는 도리어 인간의 의사 소통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그만큼 매스미디어가 인간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세상을 알기 위하여 집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이제는 거꾸로 집안으로 들어와야 세상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바쁜 직장인들보다 안방에서 TV를 많이 접하는 가정주부나 컴퓨터를 끊임없이 두드리는 젊은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선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20세기를 주도하였던 신문과 방송은 이제 양적, 질적인 면에서 인터넷과 같은 훨씬 고도의 능력을 가진 뉴미디어들에 의해 그 영역이 크게 잠식당하고 있다.

  

매스미디어가 지배하였던 산업사회가 집중화, 표준화, 대중화의 시대였다면, 새로운 미디어가 지배하는 사회는 분산화, 개성화, 탈대중화를 지향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사회질서까지도 변화시키게 될 것이 분명하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활자인쇄술이 절대왕조국가와 중세종교의 권위를 붕괴시켰다면,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는 산업사회의 중앙집권화된 권력 체계를 다시 한번 재편성 할 것이다.


이 책의 글쓴이 어빙 팽(Irving Pang) 박사는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발달과정과 삶의 변화를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여섯 단계의 혁명으로 나누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혁명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게 된 문자의 발명이라고 말한다


청각 우위의 구술문화시대에 말은 소리 속에서만 존재했고 인간생활에 밀착되어 있었다. 또 추상적이기 보다는 상황 의존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래의 기록, 종교의 기록을 위해 확립된 문자가 필요했고, 기원전 약 3100년경 수메르인들은 양의 상징과 양의 수를 구별하는 수(數)를 발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연구가들은 문자와 수학은 함께 발전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무렵, 하나의 자음과 하나의 모음이 상징을 의미하는 표음문자로 발전되어 문자언어와 소리언어가 합쳐졌다고 하니 참 신기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수메르인들의 비상한 머리가 놀라울 뿐이다. 문자의 발전이란 것이 수메르인들의 비상한 머리덕택 뿐 아니라 공동체가 성장했고, 정복자들이 통일하고, 정부가 들어서고 상업이 번창하던 그 사회적 시기에 문자의 발명은 불가피한 것이었을 것이다.


글쓰기는 모든 새로운 세대를 위해 빛나는 등불이 되었고, 1차 정보혁명인 기록의 혁명은 배타적인 구전문화에서 기록의 수단으로 자취를 남기는 문화로 움직이게 했다. 일반 동물들과 다를 바 없었던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계급을 상승하게 했던 원인은 바로 이 문자였을 것 같다. 문자의 발명이 정보의 축약을 가능하게 했을것이고, 시공간을 가로질러 전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쓰기, 즉 문자의 발명을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첫 번째 혁명이라 보는 것은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두 번째 혁명은 인쇄술의 발전


인쇄혁명은 15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종이가 처음 만들어진 중국에서 기원했으나 아랍과 무어인들을 통해 받아들인 종이와 독일의 금세공장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조립한 인쇄체계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책이 만들어졌고 문자문화가 강력해졌다. 각국의 민족어로 성경이 출판되어 르네상스,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민족의식이 등장했다고 한다. 인쇄를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표상으로 본 것이다. 고작 인쇄술에 르네상스니 종교개혁이니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표상이니 하는 말을 갖다 붙인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쇄술로 인해 책이 더 발달했고 대학이 발달했다. 대학 발전으로 뛰어난 학자들을 발굴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지식층도 더 많아 졌고 말이 사물화 된 것 이다. 인쇄술로 인해 신문이 발달했고, 대중의 알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했다. 대중이 똑똑해지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 하고 또 변하게 만든다. 이것이 인쇄가 근대 사회로의 전환점이 됐다는 증거일 것이다.

 



세 번째 혁명은 대량전달 매체의 발달


저자는 대중매체의 혁명이 19세기 중반에 서구 유럽과 미국 동부에서, 종이 생산과 인쇄, 출판방법의 발달과 정보전달의 변화를 가져온 전보의 발명 등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국립학교, 국립도서관, 전보 그리고 사진이 이 혁명에 합류하여 처음으로 대중에게 지식과 시사정보를 전달했다고 한다. 광고는 산업혁명이 공장 생산품의 시장을 확대하며 활기를 띄게 했다. 대중매체로 인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깊이 뿌리내리게 된 순간이었다.

 



네 번째 혁명은 오락의 혁명


오락의 혁명은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소리의 녹음, 개인 소유가 가능해진 카메라 그리고 활동사진 등의 기술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오락산업은 패키지 오락물에 굶주린 대중을 발견하면서 커져갔다. 컬러인쇄술이 발달하여 신문에 연작만화 부록이 등장했고, 그로 인해 황색 저널리즘이 탄생했다. 추문 폭로 시대가 이어졌고 사람들은 짜릿한 기사와 선정적인 기사를 원했다. 잡지를 사서 보고, 녹음된 음악이 들어있는 판을 사서 들었다. 원래 군수 목적이었던 라디오가 민수용으로 전환되어 사람들에게 보급되었고 가장 값싼 여가수단이 되었다. 영화산업도 발달했다.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이 무궁무진해졌다.

 



다섯 번째 혁명은 도구창고가 된 가정


20세기 중반에 전화, 방송, 음반, 발달된 인쇄술, 값싸고 보편화된 우편서비스 덕분으로 가정이 정보와 오락을 수신할 수 있는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친밀하고 세심한 교류보다는 고립이 증가했고, 이로인한 사회적 문제도 많았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집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에서 주로 먹고, 자고, 가족을 이루게 해주는 친밀감을 느끼려 모이는 장소가 아니다. 그 대신 그곳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이 쌓여 있고 집을 벗어나는 통신이 전송되고 수신되는 장소가 되버린 것이다.

 



여섯 번째 혁명 정보고속도로


‘정보고속도로’는 컴퓨터, 방송, 인공위성 그리고 시각화 기술들의 결합으로 구축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기술의 발달은 전통적의미의 일과 공부 그리고 놀이의 모습을 뒤흔들고 있다고 본다. 이 혁명의 차원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것은 직접 이동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한 커뮤니케이션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소외를 수반한다. 걱정스럽게도 정보고속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사회적 기능장애가 될 정도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처럼 이 책은 구체화하기 힘든 내용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을 위주로 써내려 가고 있다. 사실 책을 읽다가 머리가 다 아팠다. 외국원서를 의역한 탓인지 한국말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그래도 과거 ‘미디어발달사’ 강의시간에 배웠던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모든 혁명들을 시기 구분 지어 나눈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각각의 혁명은 한 가지 이상의 커뮤니케이션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졌고 또 얻어졌을 때 어떤 것의 가치는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보 혁명은 정치적 혁명과 달리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한 시작은 있으나, 실제로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마지막 혁명이었던 정보고속도로. 그 혁명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1년 사이에 수많은 스마트폰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날씨, 도로 사정을 알 수 있게 됐고 인터넷도 하게 됐다. 앞으로 이러한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매체는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고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 그리고 인쇄문화를 거쳐 전자 문화에 접어든 우리는 매스커뮤니케이션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고 좀 더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