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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잘하는 방법 글 링크 모음

온화수 2014. 5. 13. 23:38

세계 최고 작가 17명의 글 잘 쓰는 법


전문 링크: http://blog.newswire.co.kr/?p=2617


1. 모든 문서의 초안은 끔찍하다. 글쓰는 데에는 죽치고 앉아서 쓰는 수 밖에 없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총 39번 새로썼다. 

-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2. 만일 그 글이 ‘쓴 것 처럼’ 느껴 진다면, 다시 써라.

- 생생한 묘사 덕분에 흔히 ‘디트로이트의디킨즈’로 불리는 미국 소설가 엘모어 레오나드(Elmore Leonard)


3.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 반짝이는 한줄기 빛을 보여줘라.

- 현대문학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되는 러시아의 의사, 단편소설가, 극작가 안톤 체코브(Anton Chekhov)


4. 글에서 ‘매우,’ ‘무척’ 등의 단어만 빼면 좋은 글이 완성된다.

- 19세기 미국사회를 묘사하며 미국문학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


5. 짧은 글은 한가지의 테마로 작성되어야 하며, 그 안에 모든 문장들이 그 테마와 일맥상통 해야한다. 

- 미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미국의 시인이자, 단편 소설가, 편집자이자 비평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


6. 작가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이 있다면 반드시 ‘영어 글쓰기의 기본’ 부터 읽게하라.

- 위트에 가득 찬 시와 소설로 이름을 떨친 미국의 단편소설가이자 시인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7.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메달 수상소감에서‘부모님께 감사 드린다. 매일 새벽 연습장으로 데려다 주셨다’등의 말을 한다. 글쓰기는 피겨 스케이팅이나 스키가 아니다. 부모님의 도움으로는 절대 늘 수 없다. 만약 글을 쓰고 싶다면 집을 나서라.

- 여행기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찬사를 받은 미국 소설가 폴 서루(Paul Theroux)


8. 재개념화, 탈대중화, 개인적으로, 결정적으로 등의 용어를 쓰지 말아라. 이런 전문 용어는 허세의 증거일 뿐이다.

- 거대 광고회사로 성장한 오길비앤매더 광고대행사를 창립한 현대 광고의 아버지 데이빗 오길비(David Ogilvy)


9. 당신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라. 너보다 더 똑똑하고 우수한 작가들은 많다.

- 잉글랜드의 소설가, 만화책, 그래픽 노벨 작가, 오디오 극장 및 영화 각본가 닐 게이먼(Neil Gaiman)


10.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뻔뻔함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앵무새죽이기’로 이름을 널리 알린 미국작가 하퍼 리(Harper Lee)


11. 영감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직접 찾으러 나서야한다.

- 미국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유명한 방랑과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기질의 작가 잭런던(Jack London)


1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 ‘동물농장’과 ’1984′ 저자로 참여적인 언론인이자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풍자를 구사한 문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13. 글을 쓰기 전에는 항상 내 앞에 마주앉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라고 상상해라. 그리고 그 사람이 지루해 자리를 뜨지 않도록 설명해라.

- 미국에서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 기록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인기 작가 제임스 패터슨(James Patterson)


14. 만약 글을 쓰고 싶다면 많이 읽고, 많이 써라.

– 미국의 작가, 극작가, 음악가, 칼럼니스트, 배우, 영화제작자 스티븐 킹(Stephen King)


15. 다른 사람의 글 쓰기 조언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 미국의 작가이자 타임(TIME)지 평론가 레브 그로스먼(Lev Grossman)


16. 많은 정보를 가장 빠른 시간안에 전달해라. 독자들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빨리 파악하고, 이 글을 계속 읽을지 결정할 수 있도록.

– 블랙코미디 및 풍자로 인기있는 미국의 수필가이자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17.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는 실제로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글쓰기다.

- 1946년 뉴욕 헤럴드 트리뷴사의 기자로 시작해 일평생 글쓰기를 연구해 온 윌리엄 진서(William Zinsser)



유시민이 말하는 글을 잘 쓰는 방법


전문 링크: http://m.vingle.net/posts/302190-%EA%B8%80%EC%9D%84-%EC%9E%98-%EC%93%B0%EB%8A%94-%EB%B0%A9%EB%B2%95?shsrc=fb


글을 잘 쓰는 방법 첫 번째는 어휘입니다. 어휘를 많이 알아야 되요. 어휘를 많이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책을 보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몇백개 되지 않아요. 여러분 300단어만 알면 영어회화를 할 수 있다고 하죠.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을 보세요. I am still hungry. 딱 네 단어잖아요. 나는 계속해서 이기고 싶어. 네단어로 표현하잖아요. 글이 복잡한 것도 네단어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이삼백 단어만 있으면 일상생활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여러분이 전부 다 우리말을 하지만 똑같은 우리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숫자로 치면 100개짜리 우리말을 하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10개짜리 우리말 밖에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혹시 더 자라서 외국 유학을 가보면 더욱 더 잘 알 수 있는데요. 똑같은 미국학생, 영국학생, 독일학생 자기들 모국어로 공부할 경우에도 결코 그 독일어가 똑같은 독일어가 아니고 그 영어가 똑같은 영어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나중에 나가보시면 느끼게 됩니다. 아마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 학생들을 보더라도 똑같은 걸 느낄거에요. 같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어휘가 다르면. 


어휘가 일차적으로 중요합니다. 글 쓰는 기술을 익히기 이전에 어휘를 많이 알아야 되요. 우리말에서 어휘가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두봉 주교라는 프랑스의 신부님이 있는데 그 분이 인터뷰하는 걸 봤더니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한국에 1950년대에 오셨는데 한국말을 배우기가 하도 어려워서 기도하면서 그랬다는 거에요. 아~ 이나라 말은 악마가 만든 말임에 분명하다. 한국말이 배우기가 굉장히 힘든 말이에요. 어미변화가 굉장히 심합니다. 여러분 중에 독일어 공부한 학생 있나요? 없어요? 독일어는 어미변화가 심하죠? 관사, 부정관사, 형용사, 동사 어미가 다 변하는데 영어도 어미변화가 있긴 합니다만. 


그런데 우리말은 정말 어미변화가 심해요. 그래서 외국인 배우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토종 우리말이 있는가하면 한자말이 많아요. 사상, 이런 단어도 한자로 표기된 말이죠. 그래서 이 우리말과 한자에서 유래한 한자말이 뒤섞어지면서 똑같은 뜻을 가진 단어도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고통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능하다 그래요. 서양에서는 어디 아파요? 배 아파요. 복통, 그죠? 치통. 이런 단어 하나 밖에 없어요. 우리말은 어떻습니까? 배가 콕콕 쑤셔요. 아랫배가 쩌릿해요.부터 시작해서 뭐가 막힌 것처럼 답답해요. 어때요. 아주 아픈 것을 묘사하는 말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죽었다. 돌아가셨다. 떠나셨다. 가셨다. 밥숟가락 놨다. 그죠? 표현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요.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 제가 재미난 말로 우리말에는 무늬가 있어요. 무늬가. 이걸 좀 유식한 말 좋아하는 사람은 뉘앙스 차이가 크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말에 결이 있어요. 결이. 우리말은. 그런데 이것이 순수 토종 우리말과 한자말이 뒤섞이면서 굉장히 다양한 말에 무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앞에 어머님들도 앉아계시는데 아주 예쁜 어머니를 보고 아 저꼴이 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말하면 되겠습니까? 밖으로 드러나는 형상을 가리키는 말이 모습, 모양이라는 말이 있죠. 가장 중립적인 뜻을 가진, 뉘앙스를 가진 모양이죠? 모양. 그것보다 약간 더 긍정적인, 더 좋은 뜻을 가진 게 모습입니다. 모습. 저 어머니 모습이 참 고우셔. 모습이라는 단어의 모습이라는 단어에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있죠. 더 올라가면 뭐가 되죠? 자태. 천사처럼 고운 자태. 천사처럼 고운 꼴. 그러면 안되죠. 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는 말의 무늬에요. 어휘의 무늬입니다. 똑같은 의미에요. 


모양에서 부정적인 어휘가 뭐가 있습니까? 꼴. 저 꼴하고는. 노는 꼴 하고는. 꼴보다 조금 더 격렬적인 것은 뭐가 되죠? 꼬락서니. 그보다 최악이 뭐죠? 몰골. 베트공 같은 몰골을 하고서. 60년대 70년대에 유행하던 표현이에요. 몰골에서 자태에 이르기까지 제가 잘 모르는 어휘들도 중간에 있을거에요 아마. 제가 대충 뽑아봐도 예닐곱 개 정도가 있죠. 이 단어들을, 이건 굉장히 쉬운 예인데 이것이 어떤 다른 어휘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여러분은 다 알죠? 아름다운 꼴 이건 없어요. 흉측한 자태 이것도 없습니다. 단어와 단어, 어휘와 어휘가 서로 어떻게 궁합이 맞는가를 여러분은 일상생활의 용례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실수를 잘 하지 않죠. 그런데 외국인이 우리말을 처음 배울 때라면 잘못하면 아름다운 꼬락서니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외국어를 배울 때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제 여러분이 어떤 논술을 하거나 어떤 주제에 대한 여러분의 견해를 쓰거나 이럴 때는 참 표현이 단순해요.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경제학 교양과목을 강의해본 적이 있는데 리포트를 써오거나 필기시험 답안지를 보면 한쪽의 답안지 안에 똑같은 표현이 네 번, 다섯 번 등장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얼마나 표현법을 모르면 똑같은 표현을 한 페이지 안에 네 번, 다섯 번 반복해서 쓰냐는 거에요. 어휘가 부족해서 그래요. 같은 표현이 한 페이지 안에 너댓번 나오면 벌써 찍 긋습니다. 평가하는 사람이. 형편없군. 지금은 글을 좀 덜 씁니다만 글을 많이 쓸 때는 책으로 해서 30페이지, 40페이지가 지나가는 동안 같은 표현이 나오면 아~ 이건 앞에서 썼던 표현인데 하고 다시 찾아보고 나서 다른 표현을 써요. 그런데 어떤 다른 표현이 있는지를 모르면 쓸 수가 없죠.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게 이것은 저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뭐 이렇게 계속 가는 거에요. 아주 따분합니다. 이런 글은 절대로 좋은 평가를 못 받아요. 그러니까 기본이 되는 것은 어휘, 어휘, 어휘를 늘려야 돼요. 우리말을 한다고 해서 다 많은 어휘를 알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어휘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 과외를 받느냐. 필요 없어요. 과외 같은 것은 있죠. 좋은 책. 우리말 어휘를 굉장히 풍부하고 정확하고 예쁘게 구사한 소설. 이런 것을 옛날에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영어사전을 다 외우면서 한 장씩 찢어가지고 씹어 먹는다는 그런 소문도 있었는데 멍청한 짓이죠. 일제시대 때부터 유행하는 건데 그게.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한 번 읽고 잊어먹고 또 한 번 읽고 잊어버리고 또 읽고 잊어버리고 계속 잊어버려요. 읽고 잊어버리고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 단어들이 그 어휘들이 나의 것이 되어있다라는 것을 알게되죠. 그걸 어떻게 아냐 하면. 계속 입력만 할 때는 그게 자기 것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어휘들을 자기가 출력하기 시작하면, 출력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면 그럴 때 자기 어휘가 되는 거에요. 용법을 알아야 어휘를 사용합니다. 단어를 외우면 소용이 없어요. 



故 박경리

그래서 제가 권하는 책은 박경리 선생님이 쓰신 토지. 제가 지금까지 읽어본 책 중에서 우리말 어휘를 늘리는 데는 가장 훌륭하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거기 보면 낯선 어휘가 많기 때문에 때로는 토지 사전 있죠? 토지에 등장하는 어휘를 설명하는 사전이 있어요. 그거 쓸 필요 없습니다. 그냥 뜻이 이해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그 단어가 혹은 그 표현이 어떤 뉘앙스를 가진, 어떤 메시지를 지닌 표현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돼요. 한 다섯 번 읽어도 해석이 안 되는 단어 이런 것은 사전을 한번 뒤져보면 좋겠죠. 제 권하고 싶은 책은 토지입니다. 토지 3부, 4부는 읽지 않아도 돼요. 1부, 2부만. 토지는 굉장히 재미난 책이에요. 중간에 남녀상열지사가 들어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어떻다 이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청소년용 토지가 따로 나왔는데, 그거 읽지 마세요. 그냥 오리지날로 읽으십시오. 


나도 여러분만한 나이 때, 원래 아이들은 불량식품도 먹으면서 자라는 거 맞죠? 어릴 때 가게에 가보면 큰 메이커에서 나오는 그런 이름있는 과자보다 상표도 알 수 없고 이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울긋불긋한 그런 과자가 훨씬 맛있어 보이잖아요. 그런 거 먹으면서 면역력도 키우고 자라는 거에요. 독서도 그렇습니다. 권장도서, 교양도서, 이거 학교에서 주는 거 문화관광부에서 교육부에서 내리는 거 이것만 읽는다고 해서 지적으로 튼튼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불량식품도 먹듯이 불량서적도 읽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여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남학생들은 몰래 숨어서 못된 걸 많이 읽잖아요. 그러니까 토지 정도는 괜찮아요. 


토지 1부와 2부를 가능하다면 10번. 10번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번. 그냥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괜찮아요. 그냥 읽어요. 재미있으니까 그냥 읽으면 돼요. 계속 한 다섯 번 여섯 번 읽으면 토지에 들어있는 어휘, 문장, 표현방식, 이런 것들이 다 여기(머리)에 입력이 돼요. 어떤 사람은 3번만 읽어도 벌써 출력을 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 타고난 재능이, 아쉽게도 무딘 분들은 한 10번 혹은 5번 읽어야 출력이 돼요. 



글 쓸 때 동원할 수 있는 어휘와 표현방법을 풍부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책을 반복해서 여러번 읽는 것이다. 이게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왜 내가 글을 잘 쓰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해볼 때 이것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사실상. 많이 읽지 않으면 절대로 글을 잘 쓸 수 없죠. 아무리 훈련을 하고 아무리 족집게 과외 선생님하고 논술을 공부를 해도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에요. 논술시험을 보는데 예상문제의 답을 미리 써가지고 그걸 통째로 외워서 들어가 쓴다는 거, 이건 정말 비극적인 거에요. 아이들을 그렇게 키워서 어디다 쓰겠어요. 여러분 그런 거 절대 하지 마세요. 책을 많이 읽으면 됩니다. 밥중에 참고서 안보고 학원 안가고 토지 읽고 있다고 타박하지 마시고 어머님들은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밀어주세요. 


두 번째로 어휘가 어느 정도 있다면 아무 어휘나 많이 안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아까 이야기했죠. 생각이 먼저, 두 번째가 말, 세 번째가 글입니다. 먼저 말이 있고 나중에 글이 생겼어요. 먼저 말을 배우고 나중에 글을 씁니다. 글은 짓는 게 아니에요. 생각을 말하는 대신 글로 옮기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글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은 말이지 글이 아니에요. 이걸 달리 표현하면 말에는 글말과 입말이 있는데 글말은 종이에 써지는 말이고 입말은 우리가 하는 말입니다. 입말이 기본이고 글말은 그 기본을 옮긴 거에 불과해요. 그런데 우리가 종종 보면 아주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문어체의 문장을 쓰거나, 이런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 글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 거에요. 좋은 글은 말하듯이 옮겨 놓은 글이 가장 좋은 글입니다. 가장. 그러니까 이런 거죠. 우리가 말로는 하지 않는 단어. 말로는 쓰지 않는 표현. 이런 것을 글로 쓴 것은 엉터리에요. 여러분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글이 얼마나 예쁘지 않고. 좋은 글은요. 써놓고 읽어보면 듣기도 좋아요. 글 써놓으면 그럴듯한데 읽어보면 아주 어감이 나쁘고 이런 글은 잘못된 글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이오덕 선생님, 얼마전에 돌아가셨죠?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우리글 바로쓰기. 1권만 읽으면 돼요. 1권, 첫권 한권만 화장실에 놔두고 이것은 진지하게 읽지 않아도 돼요. 이것은 진지하게 읽지 않아도 돼요. 화장실에 놔두고 잠깐잠깐씩 몇 페이지씩 읽어보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쓰는 글과 말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이 방송에서도 많이 들을 겁니다. 요즘 어떤 지식인들이 나와가지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 이것은 뭐 우리 사회가 더 발전되어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되어지면 해결되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 보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것은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에 발전되어지고 라는 말은 없어요. 이것은 전부 일본어와 영어의 피동형 문장에서 넘어온 겁니다.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하면 이렇게 표현해야죠.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하면 사회가 좀 더 발전하면 해결할 수 있는,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되는데 해결될 문제로 보입니다. 나는 없어요. 나는. 내가 없어요. 내가. 글쓰기에. 


여러분 신문 보시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칼럼 본 적 있습니까? 거의 없죠.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칼럼을 쓰는데 칼럼은 뭐냐? 오피니언 페이지에 실리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밝히는 글이에요. 거기서 문장 속에 내가 있든 내가 없든 간에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본다 라고 써야 될 것을 이렇게 보여진다. 이렇게 써요. 아주 무책임하죠. 남 얘기 하듯이. 


글쓰기에는 내가 있어요. 내가.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말에는 수동 문장이 원래 거의 없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수동문장을 쓰지 않아요. 우리말에는 무생물 주어라는 게 없습니다. 영어나 이런 데서는. 영어나 유럽말에서는 무생물 주어를 써가지고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문장이 많이 있어요. 우리말에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생물 주어가 들어있는 피동형 문장을 계속 우리말로 쓰니까 이게 전혀 리듬도 안 맞고 예쁘지도 않은 우리말이 돼요. 거기다가 한자말 많이 쓰죠. 무슨적, 무슨적, 그죠? 발전적, 적적 하는 건 일본말에서 온 겁니다. 읽어보세요. 얼마나 피곤해요. 소리내서. 어떤 때는 쩍 소리가 나죠. 발전적, 그죠? 마음적으로다. 마음으로는 마음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을 마음적으로는 참 아프죠. 우리말은 완전히 비틀어져 있습니다. 이건 이제 우리말이 아닌 것이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읽는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해요. 소리 내서 읽을 때 예쁘게 들리는 글이라야 좋은 글입니다. 그래서 어휘를, 제대로 된 우리말 어휘를 제대로 쓰는 것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이죠. 


첫 번째가 어휘, 어휘를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여러번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선정해서 반복해서 읽어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 것이 될 때까지.


두 번째는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좋은 글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널린 나쁜 글들을 만나요. 우리가 읽는 책들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문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오염되고 우리가 마시는 물이 오염되고 그런 것처럼 글과 말도 오염돼있고 병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면역력을 길러야 돼요. 아무 책이나 읽는다고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게 아니에요. 음식도 상한 걸 먹으면 독이 되는 것처럼 못되게 써진 그런 책을 많이 읽으면,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가 쓰는 글이 병들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언제나 좋은 글만 읽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쁜 글을 읽을 때는 잘못 써진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 이런 것을 길러야 되고, 그렇게 스스로 면역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멸균실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잖아요. 나가면 세균이 드글드글한데 학교 갔다오다가 불량식품 사먹을지 모르는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쁜 것이 들어와도 그것을 인지하고 스스로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죠. 인체에서 항체를 형성하는 그런 능력이 중요한 것처럼 정신적으로 또는 지식 면에서도 나쁜 것을 알아볼 줄 알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의 어떤 저항력, 이런 것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이런 이오덕 선생의 것을 여러번 읽을 필요도 없고 한 번만 읽으면 돼요. 한번만.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글쓰기를 할 때 그것이 사실에 관한 것인지 해석에 관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이효리가 김희선 보다 더 예뻐. 이렇게 누가 말했다 칩시다. 아니야 효리보다 김희선이 더 예뻐. 누가 반박을 했다 칩시다. 이 논쟁은 밤새도록 끝이 날까요? 안 나죠. 이것은 각자의 취향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이런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러니까 이런 각자의 취향과 주관에 관한 문제는 논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내가 된장찌개보다 김치찌개가 더 좋다는데 대통령이 그것에 대해서 말릴 수가 있어요? 무슨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것에 대해서 뭐 규제를 가할 수가 있습니까? 그건 개인의 취향이거든요. 


우리가 글을 쓴 것을 이렇게 보면 나의 주관적 취향과 어떤 논리적인 어떤 주장 사이에 구분을 못해요. 어느 게 어느 건지. 제가 하나 예를 들어보죠. 우리가 서로 논쟁을 하고 서로 이견을 주고받게 되면 자기가 내리는 어떤 주관적인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야 돼요. 예를 들어서 나는 이효리가 김희선보다 더 마음에 들어. 왜냐하면 몸매가 더 풍만하니까. 이렇게 얘기한다고 쳐봐요. 그럼 그것에 대해서는 논박할 수가 있습니다. 풍만하다는 근거가 뭐야? 그럼 어디가 살이 많으면 풍만한 거야? 이렇게 논쟁을 벌일 수가 있죠. 그러나 나는 막연히 나는 이효리가 김희선보다 더 좋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답이 딱 하나죠. 어, 그러니? 그 외에는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논증을 하라는 글을 쓰라고 과제를 주는데 자기 취향을 잔뜩 늘어놔요. 그러면 평가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게 되면 아~ 얘는 이효리보다 김희선을 더 좋아하는구나. 그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따름이지 그 사람의 논증능력을 검증해낼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수필을 쓸 때는 상관없어요. 그러나 대부분 여러분이 대학 입시에서 만나거나 학교에서 과제물을 처리하거나 대학 다니면서 리포트를 쓰거나 또는 사회에 진출한 다음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고서를 쓰거나, 기획안을 만들거나 이럴 때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근거입니다. 근거. 어떤 판단이 아니라 그 판단을 내릴 근거를 제시해야 되요. 논증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것이 반박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반박할 수 없거나 반박할 필요조차 없는 주관적인 취향에 관한 문제인가를 구분을 해줘야 돼요. 


그래서 글쓰기를 할 때 이것 참 조심해야 되는데요. 제가 한 예를 들어보죠. 우리 이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토론을 참 별로 안 하죠. 굉장히 큰 병폐입니다. 엄마, 이건 왜 그렇게 해야 돼? 선생님 왜 그렇게 해야 되요? 쪼그만 게 말대꾸하고 있어. 꼬박꼬박 말대꾸야. 또는 선생님 이건 왜 이래요. 왜 저래요. 그러면 아무개야 너무 따지는 것도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이거 곤란하죠.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다 창의적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이가 되면 창의적이기를 그만둬요. 왜냐하면 창의적으로 살려면 몹시 피곤하거든요. 왜냐하면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물어봐야 되는데. 물어보면, 잘못하면 너 나이 몇 살이야? 답변이 돌아오게 돼요. 사회에 나가면. 학교에서는 안 그러겠지만. 그러니까 왜라는 물음을 계속 던지는 사람은 인생이 피곤해요. 대한민국에서는. 그런데 대부분의 천재들은 어릴 때의 별명이 미스터 와이(Why),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끊임없이 왜라고 물으니까. 


제가 독일 있을 때 지금 여기에서는 대학원생이죠. 대학원생들의 국제 세미나에 가서 여러 나라 학생들이 다 모여있는데 독일학생 둘이서 논쟁을 하는 걸 봤는데. 한 학생은 독일 남부 뮌헨 근처에 바이에른 주에서 온 학생이에요. 우리나라로 치면 경상도 비슷한 데입니다. 대구, 알겠죠. 어떤 데인지. 그 다음에 한 학생은 함부르크에서 온 학생이에요. 북 독일쪽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어디쯤 될까요? 인천 뭐 그정도 될까요? 둘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어떤 정당의 청년당원행사에 그 당의 당수가 나와서. 총재가 나와가지고 같이 테크노댄스를 추면서 노는 장면이 나와요. 50대의 정당대표가 20대의 대학생 당원들 하고 테크노댄스를 추면서 노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봤더니 어떤 젊은 여성 대학생 당원이 배꼽에 피어싱이라 그러나요? 그걸 했어요. 배꼽티를 입었는데. 어떤 사람은 코 피어싱도 하고. 어떤 엄마들은 한국 교민들 딸들 중에 이렇게 해서(코어싱에 피어싱해서) 오면 이년아 코를 왜 뚫어? 이렇게 하면 엄마 코 뚫었어? 왜 그래? 이렇게 해서 이제 굉장히 부모들이 속이. 내 코 내가 뚫는다는 데 무슨 상관이야. 이제 그런다는 거 아니에요. 


이제 거기 배꼽을 뚫은 학생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아주 보수적인, 바이에른주에서 온 학생이 딱 보더니 우리식으로 하면 미친 것들. 미친 것들. 그랬대요. 인천쯤에서 온 거긴 진보적인 데거든요. 대학생이 뭐가 미쳤는데? 그랬더니 저거 뚫어가지고 무슨 금고리 달고 이럴 돈 있으면 아프리카에 굶는 애들 밥값이나 기부하지. 이랬어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봤더니 이제 함부르크에서 온 학생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럼 귀걸이는 어때? 보통 우리가 하는 귀걸이 그거야 괜찮지. 그건 왜 괜찮은데? 그 귀걸이 값은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서 기부하면 안 되나? 그러더니 그러면 귀걸이 한 개가 아니고 열 개면 어떻지? 열 개면 더 정상인가? 논쟁이 붙었어요. 30분동안 그걸 가지고 논쟁을 하더라고요. 


결론이 뭐냐하면 정상적인 장신구와 미친 짓 같은 피어싱 사이에 정상적인 어떤 치장행위 미친짓 같은 피어싱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이 결론이었어요. 그 결론에서 무엇이 나오느냐 하면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자기의 미적 취향을 과시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이 자기가 가진 잣대를 가지고 들이대가지고 비정상적이거나 미친 짓으로 몰아갈 권리는 없다. 그 경계선이 모호하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경계선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각자 상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해줄 수 밖에 없고 대체로 자기가 생각건대 아주 혐오감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자기가 가진 가치기준을 벗어나는 정도의 행위를 하는 것도 용인해야 된다. 결론은 유식한 말로 Tolerance. 똘레랑스. 관용. 그게 결론이죠. 


그런데 제가 이 논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논거를 댈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논쟁과 글쓰기를 막론하고. 그러니까 아유~ 나는 저 배꼽피어싱, 코피어싱은 보기 싫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관한 문제니까 별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난 저걸 미친짓이라고 생각해 라고 말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논거를 제시해야 돼요. 내가 글쓰기를 하면서 한 문장을 썼을 때 이 문장에 대해서 남들이 반박할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논거를 제시해야 돼요. 논거를 제시하지 않는 취향의 표현은 평가할 수도 없고 반박할 수도 없어요. 


우리가 논증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논리학을 학교에서 배울 거에요. 귀납법, 연역법, 그래가지고 뭐 삼단논법 많이 배우죠? 그런 거 그런 형식을 많이 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예컨대, 이렇게 생각한다. 라고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거기에 왜냐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얘기가 나와야 돼요. 어떤 사실에 관한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에 관한 것은 a는 b다 라고 쓰는데요. a는 b다. 사실에 관한 것은. 해석에 관한 것은, -라고 생각한다. 하고 왜냐하면-, 왜냐하면 빼도 괜찮아요. 반드시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는 a를 b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써야 될 것을 a는 b다 라고 쓰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태양은 하루에 한 번 뜬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논증이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다른 어떤 것을 표현했을 때 남들이 모두 인정하지 않는 어떤 것. 모든 다른 사람들이 다 인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주장할 때는 그것을 형식상 a는 b다 라고 쓰는 경우에도 반드시 자기가 a를 b로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야 됩니다. 


그런데 글쓰기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오류 중에 하나가 동어반복이죠. 나는 배가 고프다. 왜냐하면 아침에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면 나는 아침에 밥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배가 고프다. 이 이야기를 한 페이지 안에 두 번, 세 번 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반복, 불필요한 반복. 항상 중요한 것은 필요한 얘기만 하고 자기가 하는 이야기 중에서 논증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하나둘셋넷, 하나둘셋, 하나둘, 또는 하나, 이렇게 밝혀주는 것. 그래야만 이것을 평가할 수가 있어요.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저는 몰랐습니다. 잘 몰랐는데, 언제 처음 나도 글을 좀 잘 쓴다 라는 느낌을 가졌냐하면 제가 1978년에 대학입학시험을 봤으니. 그때는 예비고사라고 해서 지금 수능시험 같은 게 없고 또 이제 거기다 0.4를 곱해가지고 안고 들어가서 최종 라운드 본고사, 이걸 가지고 합쳐서 이렇게 뽑는 제도였는데 저희 때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이렇게 이제 본고사를 봤어요. 문과는. 그런데 국어시험에 굉장히 큰 점수, 100점 만점에 한 20점쯤 되는 그런 문제가 작문 문제였어요. 내가 사랑하는 생활. 그런 제목이었는데 이건 제가 지금 기억하는 제목이고 그 당시에 정확히 기억을 되살려 보면, 나의 사랑하는 생활,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것은 잘못된 우리말이죠? 그건 일본식 표현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제목이었어요. 400자 원고지를, 600자 원고지를 채우는 거였는데 열심히 잘 썼습니다. 쓰고 나서 봤더니, 제 글의 주제는 뭐냐하면 나는 평범하게 사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게 저의 주장의 요지였는데 나중에 봤더니 성적도 좋고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꽤 잘 썼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글을 잘 쓰는 마지막 요령에 관한 겁니다. 이건 진짜 비결인데 아무에게나 알려주면 안 되는데.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생각은 어떤 그림자 같은 거에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목욕을 하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쳐가요. 이건 매우 중요한 생각이에요. 내가 지금 느끼기에. 아~ 이건 중요한 생각이다. 꼭 기억해 놔야 겠다. 집에 가면, 아까 버스를 타고 올 때 무슨 생각이 났었는데. 그게 뭐에 대한 생각이었더라.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고 정작 무엇이었는지는 잡히지 않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수첩을 가지고 다녀야 돼요. 작은 수첩을. 무엇인가 스치고 지나가면 캐치를, 잡아야 돼요.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완벽한 문장을 만들지 않아도 돼요. 일단 메모를 해야 돼요.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메모를 끝까지 중요한 단어를 메모한 다음에 그걸 다시 정리를 해봐요. 또는 친구랑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했는데 영화관 앞에 있는 햄버거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친구가 20분 늦겠다고 전화가 왔다 이거에요. 여러분 앉아서 뭐합니까? 멍청하게 앉아있거나 오락기 있으면 오락을 한판 하든가 또는 뭐 PDA 같은 거 가지고 있으면 그걸로 누구한테 문자메시지 보내든가 뭐든지 하겠죠. 그 시간에 메모를 해보세요. 


글쓰기의 맨 마지막 단계는 스킬, 기술에 관한 겁니다. 이 기술은 누구에게 강의를 들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많이 써볼 때에만 느는 겁니다. 많이 써볼수록 빨리 쓰게 돼요. 많이 써볼수록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쓸 수가 있습니다. 많이 써볼수록 더 풍부한 어휘를 출력시킬 수가 있고, 많이 써볼수록 더 다양한 표현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 햄버거 집에 앉아서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묘사해보세요. 지금 저 앞에는 꽃병이 놓여있다. 이 꽃병은 이렇게 이렇게 생겼는데 예쁘다. 그 위에는 무슨 색깔 꽃이 예쁘게 꽂혀 있다. 어떤 커플이 지나가는데 너무 야하게 허리를 끼고 지나가서 눈꼴이 시었다. 무엇이든 좋아요. 기록해야 됩니다. 제가 한 스물여섯~일곱 돼서 내가 글을 좀 잘 쓴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비로소 그 훈련을 스스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이제 시국이 요즘처럼 평화롭지가 않고, 뭘 잘못 쓰면 잡혀가고 그럴 때라서 쓰고 나서 며칠 지나면 다시 불태워 버리고 불태워 버리고 끊임없이 쓰는 훈련을 스스로 하는 거에요. 


여러분이 메모장을 가지고 다녀야 돼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어떤 것, 어떤 상념, 어떤 단상, 잡야야 됩니다. 기록되지 않은 사상은 사상이 아니에요. 기록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닙니다. 반드시 글로 기록한 것만이 확실하게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괜찮아요. 졸고 있는 친구의 뒷모습을 묘사해도 좋고. 나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성친구가 없는데 그게 있는 친구에 대한 질투심을 적어도 좋고.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요. 그것을 절절하게 자기 생각 그대로, 그대로 옮기는 훈련을 하루에 20~30분 짬 내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일주일이면 하루 30분이면 210분 차이가 나게 됩니다. 일주일이면 210분 차이가 나게 됩니다. 한 달이면 약 800분 정도의 차이가 나게 돼요. 800분이면 몇 시간입니까? 13시간이잖아요? 14시간. 한달에 13시간, 14시간씩 글쓰기 훈련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라는 것은 약 1년이 지나고 나면 글쓰기에 관한한 초등학생과 대학생 정도의 차이가 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꼭 권합니다.


오늘의 결론, 첫째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라.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1, 2부. 무지하게 재미있습니다. 조금 야한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두 번째, 예쁜 고운 제대로 된 우리말을 써야 한다. 그걸 알아보는 능력을 길러야 되고, 나쁜 잘못 써진 우리말을 볼 때에도 그것을 알아보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여러분이 가져야 된다. 세 번째가 글을 쓸 때에는 이것이 확정된 사실에 관한 것인지 나의 주관적 판단에 관한 것인지를 구별하고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돼 있는 문장에 관해서는 반드시 그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습관을 길러야 된다. 네 번째 끊임없이 기록하라. 메모지를 들고 다녀라. 이 네가지만 여러분이 오늘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시면 앞으로 1년만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글쓰기 능력은 지금 상태보다, 양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10배 이상은 그렇게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제가 확언, 장담해드립니다. 일단 해보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되면 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시기 바랍니다. 



내 글로 타인을 감동시키는 방법


전문 링크: http://ppss.kr/archives/19568


추상적 단어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자기소개서가 통과되려면 내 글로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쓴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전해야 한다. 내가 쓴 기획서가 통과되려면 팀장의 마음이 동動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제 내 글로 여러분을 한 번 슬프게 만들어보겠다. 내 몸 안에 흐르는 모든 슬픈 기운이여! 자판을 두드리는 나의 열 손가락 끝으로 모여라. 손가락 끝이 욱신거린다. 슬픔을 느낀 손가락 부위의 체세포들이 분자 단위로 요동치고 있다. 이제 그 모든 슬픔을 모아서 쓴다.


“슬프다……”


자! 여러분, 내가 쓴 ‘슬프다……’라는 글을 보고 슬퍼지는가? 아마 짜증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뭔가 기대했는데, 역시 약팔이는 믿을게 못 된다고 침 뱉는 소리가 들린다. 그 침을 자기 자신에게 뱉기 바란다. 왜냐고? 내가 연출한 장면이 사실은 바로 당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슬플 때 뭐라고 쓰는가. 혹시 ‘슬프다’라고 쓰지 않나?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슬프다’라는 단어는 절대로 슬프지 않다는 사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그리고 슬플 때 그저 ‘슬프다’라고만 써버린다.


이런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이랄까…

 


사랑의 리퀘스트가 ARS를 누르게 하는 법


사랑의 리퀘스트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분들의 사연을 전하고 ARS를 통해 시청자에게 모금을 하는 자선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 분은… 정말 대단히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입니다. 정말 가난합니다. 불쌍하지요. 너무나 슬프군요. 자… 시청자 여러분! ARS 번호 눌러주시면 이분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대부분 ARS 번호를 누르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하다, 불쌍하다, 안타깝다, 슬프다, 등의 말은 추상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가난하단 말인가? 뭐가 안타깝단 말인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ARS 버튼을 누를까?


TV 화면이 온통 검다. 그런데 정적을 깨고 자명종 소리가 울린다. 순식간에 화면이 밝아지며 천정에 매달린 백열전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절대 프렌치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아니다. 백열전구다.


천정에 매달린 백열전구를 비추던 화면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자 내의 차림의 40대 남성 한 명이 아직도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고 있다. 내의 오른쪽 옆구리 쪽에는 나 좀 보란 듯 구멍이 나 있다. 화면은 좀 더 아래쪽을 비춘다. 이 남자가 자던 자리 옆이다.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며 뭘 먹는 꿈을 꾸는지 헤벌레 하고 있는 꼬마 세 명이 크레용 세트처럼 나란히 자고 있다.


남자는 다시 잠을 청하는 몸을 이끌고 방문을 나선다. 문을 열자 느닷없이 간이 부엌이 나오는데 앞에는 연탄보일러가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웅변하고 있다. 다세대 주택의 지하 단칸방. 밥상을 차리는데 그제 한 밥이 쉬어터지기 바로 직전이고, 반찬은 5개? 2개? 그렇다. 2개다. 김치와 멸치.


헤벌레 웃던 아이들은 잠이 깨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진다. 마치 현실보다 꿈을 더 선호하는 듯한 얼굴. 40대 남성이 차려준 밥상 주위로 약속이나 한 듯 제자리 찾아 앉은 아이들은 레미콘 차량이 공사장에 콘크리트를 들이붓듯 밥과 반찬을 우겨 넣는다.


40대 남성이 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챙겨서 학교에 보낼 동안, 이상한 건지 어쩌면 당연한 건지 성인 여성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집 나간 지 3년 됐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이 남성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추리닝 바람으로 어기적어기적 집을 나선 이 사람은 마치 약속된 코스가 있는 듯 정확하게 취업정보지가 있는 곳만을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는 두툼한 정보지 뭉치가 들려 있다. 전화기를 붙잡고 돌리기 시작하는데…


방송을 보며 한숨을 쉬는 시청자들이 늘어난다. 벌써 ARS 번호 누르고 있는 분들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숙련된 발음으로 정확하게 ‘가난하다, 불쌍하다, 안타깝다, 슬프다’라는 용어를 전달했음에도 꿈쩍도 안하던 사람들이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ARS 번호를 눌러대고 있다. 감동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디테일’에서 오기 때문이다.


내 글로 사람을 슬프게 만들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 사람이라는 존재가 언제 어떻게 슬퍼지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을 알아야 이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사람을 알아야 이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생생함과 감동은 ‘구체성’에서 온다


내가 글쓰기를 가르칠 때 항상 내는 과제가 있다. 자신의 장점에 대해 쓰라는 것이다. 평가기준을 제시하는데, 맞춤법이나 문장력 따위는 절대 아니다. 내가 과제글을 읽은 후 ‘진짜 이 분은 이런 장점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그런데 과제글을 읽다보면 이렇게 쓰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저의 장점은 협업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 방송부의 부장으로 활동하였을 때 방송부의 인원이 부족해 행사진행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행사를 앞두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제가 영상디자인부와의 협업을 제시하였습니다. 기존 구성원과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효율성을 내세워 설득한 후 체계적인 역할 분담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팀워크가 잘 맞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원만한 협업을 위해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려 합니다. 이런 저의 장점을 가지고 동료·선배·사회와 협력하여 조직의 목표가 실현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실제 글쓰기를 하면서 과제로 제출받은 글이다. 이 글의 문제는 무엇일까? 영상디자인부와의 협업을 제시했다는데, 무슨 협업인지 떠오르는가? 전혀 모르겠다. 기존 구성원과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는데, 도대체 상대편이 내 뺨을 때려서 틀어진 건지, 아니면 약속시간에 늦어서 그런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효율성을 내세워 설득한 후 체계적인 역할 분담을 했단다. ‘효율성’ ‘체계적인 역할 분담’ 같은 추상적 단어로는 도무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재간이 없다.


그 어떤 면접관이 이 자기소개서를 읽고 ‘참 이 친구는 협업을 잘 하겠구먼’이라고 생각할까? 면접관 대부분은 50대 넘는 임원들이 아닌가. 만약 협업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이를 헛먹은 것이다. 이 글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no information’ 그야말로 아무런 정보가 없는 글이다. 디테일이 없으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다른 자기소개 글을 보자. 좀 길지만 차분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역시 글쓰기를 가르칠 때 과제로 제출받은 글이다. 오타를 고치지 않고 원문 그대로 살렸으니 이해 바란다.


어머니는 다른 또래들에 비해 말 배우는 것이 느리고 어눌하게 말하는 저를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잘 못 말하는 부분을 지적해 주시고 바른 발음이 나올 때까지 계속 시키며 노력했었지만 차도가 없자 4살 때부터 대구계명문화대 대명캠퍼스 네거리에 있었던 언어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책상이 가운데 놓여 있었고 내과에서 볼 법한 차가운 쇠 막대기, 수술용 장갑, 수십 장의 단어카드, 거울, 녹음기가 놓여있었습니다. 구석 책장에는 한 층이 전공책으로 가득 채웠고 나머지 공간은 소리가 나는 장난감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 방에는 삼십대 후반의 남성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남성분은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제 혀의 위치를 바로 잡아주시고 똥누는 소리 내지 말라며 자연스러운 발음이 나올 때까지 계속 시켰습니다.


맘같아서는 정확한 발음을 해서 빨리 답답하고 무서운 언어치료실에서 나와서 건너편 편의점에서 파는 딸기맛 쉐이크를 먹고 싶었습니다. 빨리 나가고 싶어서 열심히 했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늘 찌푸렸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입과 혀가 내 맘 같지 않아서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과정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당시 더이상 어눌한 말투때문에 또래들에게 놀림을 받기 싫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수치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제가 종이를 붙이려고 친구에게 풀을 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못 알아 들은 듯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 그 친구는 피식 웃은 채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날 “풀 좀 빌려줄래?”를 열 번도 넘게 말했습니다. 상당히 수치스러웠고 화가 났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목이 쉬어 버리고 안면 경련을 참아가며 10년을 보내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오기가 몸에 베였습니다. 앞으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이 글을 읽고 언어치료실을 찾아갈 수 있다. 대구계명문화대 대명캠퍼스 네거리에 있다하지 않나. 세 평 정도의 공간이었단다. 똥 누는 소리 내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으며, 빨리 끝내고 딸기 맛 쉐이크를 먹고 싶었다는데 말이다. 언어장애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당한 얘기를, ‘풀 좀 빌래줄래’를 열 번도 넘게 말했다고 ‘디테일하게’ 회상한다.


솔직히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비문도 속출하는 글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으면 ‘이 분은 언어장애를 이겨낼 정도의 의지력을 갖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맞춤법, 문장력 떨어지는데도 말이다. 이 글은 50대 너구리 면접관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 ‘풀 좀 빌려줄래’를 열 번도 더 말했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감동은 어디서 나온다고? 잊지 말고 기억하시라. ‘디테일’에서 나온다.



음식으로도 이 정도 생생한 감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마라


취업 자기소개서를 쓸 때 많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모범 자기소개서를 구해 거의 그대로 도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폐해가 얼마나 심한지, 내 페이스북 친구인 한 언론사 편집장이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면서 절반 가까이가 장점을 ‘경청’이라고 했다고 타임라인에 한숨을 내쉰다.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내용에 과연 ‘디테일’이 존재할 수 있을까?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내용이라면 얼마나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하게 서술되어 있을까? 혹시 자기소개서 써야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부탁하는데, 자기소개서는 직접 쓰시라. 최대한 디테일을 살려서 말이다. 그래야 면접관의 마음이 움직일 것 아닌가.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리죠. ‘봄’에 대해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세요. ‘사랑’에 대해 쓰지 말고 사랑할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 쓰세요. 감정은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전달되는 건 오직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뿐이에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앞으로는 봄에 시간을 내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애인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 맛이 어땠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를 기억하려 애쓰세요. 강의 끝.”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마음산책, 2010)


소설가 김연수의 이 글이 진리다. ‘슬프다’라는 단어는 절대 슬프지 않다. 슬픔을 표현하려면 슬펐던 경험을 ‘디테일’을 살려 자세히 써야 한다. 제주 여행 다녀온 다음에 ‘제주도 풍경이 너무 멋있었어’라고 말하면 어떡하나? ‘멋있었어’는 추상적인 단어 아닌가. ‘멋있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내가 본 것, 냄새 맡은 것, 맛 본 것, 손끝으로 느낀 감각을 써줘야 할 것 아니겠나.


사람이란 존재는 오감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통해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그렇다면 내 글로 무엇을 해야 할까? 내 글로 내가 본 것을 생생하게 보여줘야 한다. 내가 냄새 맡은 것을 냄새 맡게 해줘야 한다. 내가 느낀 촉감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글쓰기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더 잘 이해할수록 글을 더 잘 쓰게 된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는 소년은 소녀가 죽어서 ‘슬펐다’는 얘기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는 눈물 콧물 다 쏟는다. 그저 소년과 소녀 사이에 있었던 일을 디테일하게 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20대 시절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봤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걸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샐리: 미안하지만 해리, 송년의 밤이고 외롭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냐. 이런 식으론 안 돼.


해리: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샐리: 몰라. 하지만 이런 식으론 안 돼.


해리: 그럼 이런 건 어때? 더운 날씨에도 감기에 걸리고,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 데 한 시간도 더 걸리는 널 사랑해. 날 바보 취급하며 쳐다볼 때 콧등에 작은 주름이 생기는 네 모습과 너와 헤어져서 돌아올 때 내 옷에 배인 네 향수 냄새를 사랑해. 내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너이기에 널 사랑해. 지금이 송년이고 내가 외로워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냐. 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싶다면, 가능한 빨리 시작하란 말을 해주고 싶어.


샐리: 이것 봐, 넌 항상 이런 식이야 해리! 도저히 널 미워할 수 없게끔 말하잖아. 그래서 난 네가 미워, 해리. 네가 밉다고.


대학시절 궁상맞게 혼자 비디오방에서 보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해리가 샐리에게 건네는 대사는 그것이 도저히 샐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디테일’이 살아 있다. 덕분에 샐리의 마음은 완전히 연두부가 되고 만다. 사랑도 쟁취하는 대단한 ‘디테일’의 위력!



책을 쓰고 싶은 예비 작가가 꼭 알아야 할 기초


전문 링크: http://ppss.kr/archives/19336


일단 쪼개고 나눠서 정리하라


헤아려보니 지금껏 15권의 책을 썼다. 물론 혼자 쓴 책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쓴 책도 있지만, 2006년에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첫 책을 낸 것을 감안하면 무척 다작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한 달 만에 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내가 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예전부터 숭덩숭덩 썼을 것이라 지레 짐작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얘기하지만 나는 글치 공학도였다. 내 학부와 대학원 전공이 전자공학 쪽 아닌가? 대학 때 교양수업 보고서 쓸 때면 A4 용지 1장 채우는 것도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책을 써재낄 때는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유리씨와 함께 쓴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이라는 책이 있다. 2008년 5월에 원고를 쓰기 시작해 3개월 만에 다 쓴 책이다. 우리는 이 주제로 책을 쓰기로 결정하고 나서 목차부터 짜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책을 쓰겠다며 다짜고짜 머리말부터 적어나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초짜 인증하는 것이다. 원고지 1,000장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설계도가 필요한데, 그것이 목차다.


우리는 목차를 짜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이유리씨는 그 엘레강스한 외모(안 보이는가? 믿으시라. 내 아내다)에서도 알 수 있듯 미술에 조예가 깊기 때문에, 주로 미술 분야에서 세상을 바꿨다고 할 만한 뒷얘기가 담긴 예술 작품 목록을 20개 뽑아오기로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둘은 부부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둘은 부부입니다.

 


사람들이 내 외모를 보고 전혀 예상을 못하는데, 나는 음악에 꽤 조예가 깊다. 그래서 미술은 이유리씨가 맡고, 음악과 그 외의 분야에서 세상을 바꿨다고 할 만한 에피소드가 담긴 작품 목록을 역시 20개 골라 오기로 했다. 조사를 마치고 다 모아보니 총 40개의 작품목록이 생겼다.


우리는 40개 중에 26개를 고르는 선별작업에 들어갔다. 글의 호흡 때문이다. 예컨대 A4 용지 100장 분량의 책을 쓰는데, 다뤄야 할 예술작품 목록이 100개다. 그러면 A4 용지 1장에 작품 하나를 다뤄야 하는 셈인데, 너무 짧아서 내용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겠나? 그렇다고 예술작품 목록을 5개로 한다면? 하나 당 A4 용지 20장씩 써야하니 글이 너무 늘어진다. 우리는 25개 정도를 다루는 것이 적당하다고 봤다.


A4 용지 100장을 25개로 나누면 하나 당 A4 용지 4장이다. A4 용지 네 장정도 호흡이면 대중서로서 너무 장황하지 않고, 그렇다고 허전하지도 않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5는 2로 나눠지지 않는다. 둘 중 누군가가 하나를 더 써야 한다는 것인데, 성격 상 나나 이유리씨에게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각각 13개씩 26개로 정하게 됐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 됐지요.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 됐지요.

느닷없이 A4 용지 100장을 쓴다면 숨이 막히겠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에 대해 A4 용지 네 장짜리 글을 쓰는 것은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도서관에서 해당 예술작품을 만든 작가에 관한 책을 조사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한다. 확보한 자료를 숙지해서 나의 목소리를 담아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어느덧 근사한 한 편의 글이 된다.


이렇게 A4 용지 네 장짜리 글을 목차에 따라 26개 쓰면 그것이 바로 ‘책’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한 권의 책이 됐다.


 


목차가 중요하다


이렇듯 목차는 책의 설계도이다. 무조건적이라고 한다면 좀 과도하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책을 쓰기 전에 목차부터 짜는 것이 좋다. 목차를 제대로 짜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글을 쓰다보면 책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특히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누구나 책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의욕이 넘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것을 최대한 쏟아 부어서 쓰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글이 좀 장황해진다.


그런 이유로 보통 머리말과 서두만 보면 인류 지성사의 역작 하나가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의욕이 떨어지고 생각한 수준만큼 글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실망만 늘어가다가 결국 글이 꼬리를 내리게 된다. 그래도 끝까지 쓰면 그나마 다행이지, 대다수는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목차가 없기 때문이다. 설계도가 없으니 골격이 부실해 금세 무너지는 것이다. A4 용지 100장의 책을 쓰는데 목차를 짜보니 챕터1부터 챕터10까지 총 10개가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챕터1을 어느 정도 분량으로 쓰면 좋을까? A4 용지 10장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이렇게 전체 그림을 확실하게 가져가면 챕터1에서 A4 용지 20장 넘게 쓰다가 힘 빠져서 고꾸라지는 일이 없어진다.


 


저작의 시작, A4 용지 네 장을 쓰는 비법


그런데, 이 정도 알려드려도 책 쓰는 것 버거워들 하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앞서 말한 대로라면, 예컨대 책 주제 잘 잡고 목차 25개 짜서 하나에 A4 용지 4~5장씩 쓰면 책 되는 것 아닌가.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A4 용지 네 장정도 쓰는 것도 힘들어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서비스를 하겠다. A4 용지 네 장 쓰는 비법 대공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하여 논하라’라는 과제가 나왔다. 이 주제로 A4 용지 네 장 써서 제출해야 한다.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서 한숨만 쉬다가, 결국 어디서 베낄 글 없나 으슥하게 검색질하고 있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이런 장면은 그만! 지금부터 나만 따라오시라.


아이폰 들고 따라오라규.

아이폰 들고 따라오라규.

 


첫째, 글의 재료를 늘어놓아라.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하여 논하라’라는 과제를 받았다면, 생각을 하라. 이 주제로 내가 뭘 쓸 수 있는지를. ‘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장르가 도대체 어느 TV프로그램에서 먼저 시작했는지 궁금한 걸’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바로 쓰려고 하지 마라. 단지 밑에다가 이렇게 적어 놓는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어디서 제일 처음 시작했는가?


써놨으면 잊어라. 곧바로 다른 것 뭐 쓸 것 없나 생각해라. ‘아! 내가 Mnet에서 했던 보이스코리아를 엄청 재밌게 봤는데, 개인적인 느낌을 써볼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역시 바로 쓰지 마라. 아까 적어 놓은 것 밑에 이렇게 적어 놓는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어디서 제일 처음 시작했는가?


Mnet 보이스코리아 봤던 개인적 감상


이런 식으로 주제와 관련해 당신이 쓸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재료를 늘어놓으시라. 맛있는 카레라이스를 만들려면 당연히 당근, 양파, 카레 가루, 고기, 쌀 등의 재료가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리는 재료 구해놓고 하면서 왜 글은 항상 재료도 없이 쓰려는가?


재료가 좋아도 독자가 없으면 결국, 이렇습니다만...

재료가 좋아도 독자가 없으면 결국, 이렇습니다만…

 


둘째, 글을 꼭 도입부부터 써야한다는 강박을 버려라.


재료를 늘어놨다면 이제 본격적인 요리(글쓰기)를 해야 할 텐데, 막상 쓰려면 글이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입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쓴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보니 도입부가 떠오르지 않으면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다.


되레 묻고 싶다. 왜 글을 꼭 도입부부터 써야 하는가? 예컨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최초로 시도했던 TV프로그램에 대한 얘기가 도입부와 상관없이 글의 어딘가에 꼭 들어갈 것 같다면, 미리 이 부분을 먼저 써 놓고 뒤에 빼 놓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소재에 대해서 글을 미리 써 놓으면, 점점 글의 분량이 늘어나게 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에 논리전개를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야 할지 더욱 명확해진다. 그에 따라 써놓은 글들을 마치 블록 쌓기 하듯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연결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입부가 도출된다. 카레라이스를 하는데 꼭 당근 먼저 깎아 놓을 필요가 있는가? 양파부터 썰어놓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왜 글은 꼭 도입부부터 쓰려고만 하는가?


물론 가끔 신 내림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예기치 않게 글이 도입부부터 술술 풀리는 경우다. 그런데 이런 경우 십중팔구 겪게 되는 상황이 있다. 마무리가 좋지 않다. 분명 신 내림대로 쭉쭉 써내려갔는데, 막상 결론이라는 목적지에 와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고치기도 쉽지 않다. 어디부터 손 대야할 지 막막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잔 소우만 박사 팀은 사람들을 사막에 떨어뜨려 놓고 길을 찾아보라고 시켰다고 한다. 실험 참가자들은 해나 달이 보일 때는 똑바로 걸었지만 해나 달이 구름 뒤로 숨으면 바로 방향감각을 잃었다. 참가자들은 사막에서 원을 그리며 걷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똑바로 걷고 있다”고 착각했다. 한 걸음 한 걸음에서 각도가 1도만 틀려도 그것이 한쪽 방향으로 계속 쌓이면 원을 그리며 같은 곳만을 뱅글뱅글 돌게 되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한 문장 한 문장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1도씩 방향이 틀어져 있다. 긴 글일수록 문장마다 조금씩만 어긋나도 마지막 결론에서는 배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글쓰기는 구조적인 작업이다. A4 용지 100장이 넘는 책을 쓰는 과정도 그렇고, A4 용지 네 장짜리 보고서를 쓰는 과정 역시 다르지 않다. 책을 쓸 때는 목차를 먼저 작성하고, A4 용지 네 장짜리 글을 쓸 때는 재료부터 먼저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