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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레테스식 사고방식(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드 보통) 본문

심리철학

소크레테스식 사고방식(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드 보통)

온화수 2014. 8. 15. 17:41

1. 확고하게 상식으로 인식되는 의견을 하나 찾아보자.


용기 있는 행동에는 전장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덕을 쌓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2. 잠시 상상해보자. 이런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확신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의견이 진실일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아보자.


용기가 있으면서도 전쟁터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정말로 없을까?

전쟁터에서 꿋꿋하게 전투에 임하면서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까?


돈을 가졌으면서도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없을까?

돈은 없지만 덕이 높은 사람은 있지 않을까?


3. 예외가 발견되면, 그 정의는 틀렸거나 아니면 최소한 불명확한 것임에 틀림없다.


용기가 있으면서도 후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쟁터에서 꿋꿋하게 전투에 임하고 있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도 가능하다.


돈을 가진 악한도 있다.

가난하지만 덕은 높을 수도 있다.


4. 최초의 의견은 이런 예외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용기 있는 행동은 전쟁터에서 후퇴와 전진을 동시에 뜻할 수 있다.


돈을 가진 사람은 그 돈을 고결한 방식으로 획득한 경우에만 덕이 있는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가지지 못한 일부 사람들도 덕을 추구했으되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역시 덕이 높을 수 있다.


5. 그렇게 새로 정리한 주장에서 또다시 예외가 발견된다면, 앞에서 거쳤던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진실은,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나 더 이상 논박할 수 없는 주장 속에 담겨 있어야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한 이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곧 주장에 담겨 있는 그릇된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다.


6.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뭘 빗대어 말했든 간에, 사고의 산물은 직관의 산물보다 우월하다.


물론 철학적 사색을 하지 않고도 진실에 도달할 수는 있다. 소크라테스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도 우리는 돈이 없는 사람도 덕을 추구하면서 돈을 버는 일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살아왔다면 덕 있는 사람으로 불릴 수도 있고, 전쟁터에서 후퇴하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의견이 장래 부딪히게 될지도 모르는 반대 입장들을 사전에 논리적으로 검토하지 않으ㄹ 경우, 우리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절히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즉 우리는 돈은 덕행을 실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오직 나약한 자만이 전쟁터에서 후퇴한다고 강력하게 고집하는 위압적인 인물에 눌려 입을 다물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힘이 될 반론(플라타이아이 전투와 부패한 사회에서의 부의 축적)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막연히, 아니면 기분 나쁜 채로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자신이 옳다고 고집해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반론에 이성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신봉되는 올바른 신념을 ‘순수 의견(true opinion)’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진실한 이유만 아니라 그 대안들이 왜 허위인지에 대한 이해까지 수반하는 ‘지식(knowledge)’과 그 ‘순수 의견’을 대비시켰다. 소크라테스는 그 같은 진실의 두 가지 버전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명장 다이달로스가 만든 아름다운 작품들에 비겼다. 직관에서 나온 진실은 버팀대 없이 옥외 대좌에 놓인 조각상과 같았다.

그 조각상은 강한 바람이 불면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었다. 하지만 반론에 대한 자각과 이성의 떠받침을 받는 진실은 쇠줄로 땅에 고정된 조각상과 같았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여론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 한 가지를 기약했는데, 그런 여론이라면 우리는 비록 폭풍우를 만난다 하더라도 끄떡없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 알랭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40~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