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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 김연수 본문

책 사유/에세이

<소설가의 일> - 김연수

온화수 2014. 12. 5. 00:06

이 책 제목이 '소설가의 일'이지만, 소설은 아니에요. 에세이 형식으로 소설을 쓰는 감정이나 태도 등 크게 아울러서 자연스럽게 풀어나가요. 처음엔 소설 쓰는 법을 알고 싶어서 샀는데, 안 알려주고 주저리주저리 자기 얘기만 하니, 잘 못 샀나? 싶기도 했죠.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드는 거에요. 저도 다른 소설 작법 책이 있지만, 처음부터 단계별로 나열해서, 미션 주고 설명만 하는 비법 책들은 지루하더라고요. 김연수 작가님의 의도를 약간 간파했어요. 이래서 에세이 형식으로 쓰셨구나, 쓸 때의 감정도 엿보거나 가치관까지도 함께 알 수 있어서 꽤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돼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소설가가 됐는지, 그 당시 느꼈던 감정과 행동들도 알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일반 소설 작법 책들보다 다른 매력이 있어요. 디테일하진 않지만. 소설가의 감정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책이에요.

 

김연수 작가님은 삶도 소설과 같다고 해요.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외쳐야 된대요.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들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54쪽.

 

소설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인 '핍진성'에 대해서도 얘기를 합니다. 소설가는 모든 질문에 구체적으로, 핍진성 있게 대답하는 사람이어야만 해요. 핍진성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뜻이에요. 상상력 있게 스토리를 만들되, 캐릭터가 보여지는 외모나 성격, 질병에 따라 예상되는 행동 안에서 스토리를 짜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이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이런 내용 말고도, 무궁무진하고 핍진성 있는 얘기들이 많이 담겨 있어요. 제 글도 길면 안 읽으실테니까. 여기까지만 쓸게요. 핑계 좋죠? 퇴고 따위 하지 않아요. 귀찮아요.

 

 

밑줄 긋기

훌륭한 소설가가 되려면 원숭이보다 지혜로워서는 안 된다. 즉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입을 벌려서 감각해야만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는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나의 사랑하는 주인공을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이야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 세계를 보고 듣고 느낀 주인공이 자신에게 없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때 생겨난다. 39~40쪽

 

소설 습작이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고, 어쩌다, 안에서 밀어내는 어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보다는 좀더 긴 문장으로, 어떤 형상을, 어떤 사태를, 어떤 심정을, 어떤 부끄러움을 누구에게 고백하듯이 썼을 뿐인데, 당선이라니. 이렇게 소설가가 되어도 되는 것인가. 기쁨보다는 당혹스러움이 앞섰다. 폴 오스터가 말했던가. 작가가 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는 선택되는 것이라고. 89~90쪽

 

어떤 일을 할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 고민할 때, 나는 무조건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다리가 불탈 때까지는 써보자. 그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 98쪽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에요. 217~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