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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강신주 본문

책 사유/인문학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강신주

온화수 2015. 4. 14. 02:48

이 책은 작년에 샀다. 친구 일터에 들렀다가 어떤 책을 사려고 했었는데, 그 책이 없어서 고심하다가 고른 책이다. 난 강신주씨 책을 감정수업만 끝까지 빠져서 읽어봤고, 그 책에 빠져서 '철학vs철학'에 무심코 도전했다가 패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란 책도 읽다가 흥미가 없어져서 접었다.

 

그럼에도 다시 강신주씨의 책을 짚어든 건, 살 당시에 딱히 살 책도 없었거니와, 그나마 호감이 가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철학적인 생각을 좋아하지만 철학은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라 강신주씨 책이 쉬워서 마음이 간다. 플라톤의 향연을 읽어보는데 이건 뭐... 도저히... 재미도 없고 내가 시험볼 것도 아닌데 왜 읽고 있지란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난 쉽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좋다. 그러다 푹 빠지고 내 지식이 늘어나면 향연을 다시 짚어들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음... 그저 그렇다. 감정수업에 푹 빠졌던 것과는 달리 재미가 덜하다. 내가 진지한 거 잘 보는 편인데도 교과서처럼 읽혔다. 이 책을 읽는데 한 번에 달리기 보다는 경전처럼 봐야겠다 생각이 들 때 천천히 읽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불교 철학은 무문관이다. 무문관은 1228년에 나온 압축적인 화두 모음집이다. 무문관의 뜻은 한자 뜻대로 '문이 없는 문'이라는 뜻인데, 상식을 깨라는 걸 의미한다.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듯 내 삶에 있어 무언가에 의지하게 되면 그걸 넘어서라는 것이다. 남들 다 가는 그 문엔 문이 없다. 스스로 서야한다는 의미. 책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애매하다. 나도 끝까지 읽을 때쯤에야 감이 왔다.

 

결국 자유의 삶을 살기 위한 사람들의 책이다. 내가 이해한 생각이기에 작가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론, 어떤 사람, 어떤 방법을 만나면 걷어차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너무 격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으면 이 책을 짚어치워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이되, 나만의 방법으로 소화해야 하는 것인가. 하. 어려워.

 

밑줄 긋기

H2O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아무리 물을 얻으려고 해도 물을 얻을 수가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부처의 마음을 얻으려고 일반인의 마음을 제거해서는 안 됩니다. 일반인의 마음을 제거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도 사라질 겁니다. 마음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부처의 마음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 252~253P

 

'존재하는 나'와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살아가는 나와 '생각 속의 나'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참선과 같은 치열한 내성을 거쳤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불성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스스로 불성을 실편하며 사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354P

 

잘 연주하려는 그의 노력은 역효과를 가져오기 십상일 겁니다. 오히려 바흐의 곡에만 몰입해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낳을 겁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바흐, 바이올린, 관중,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연주를 하겠습니까. 자신이 바흐인지 바이올린인지 구별할 수 없이 몰입해 연주할 때 최상의 연주가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374P

 

일체의 인위적인 노력 없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 바로 그것이 평상심에 따르는 행동, 자신의 본래면목으로 행하는 삶이니까요. 이제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그것이 바로 평상심에 머무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37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