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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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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온화수 2015. 7. 9. 13:42

<인간 실격>의 내용보다 충격적인 건 이 책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다. 총 다섯 번의 자살 시도 후 끝끝내 자살에 성공했다. 그 중 세 번은 연인과 동반 자살을 시도했는데, 두 번은 여인만 떠나보냈다.


1948년 그는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한다. 결국 다섯 번째 시도 끝에 그는 서른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그의 삶처럼 음울이 흐른다. 자살, 음독 정사, 정신병원, 약물 중독 등의 주된 내용은 그의 삶이 기구했음을 짐작게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비극적인 삶인 걸까. 다섯 번의 끈질긴 자살 시도 끝에 성공했다면 그가 원한 선택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위선적인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가면을 못 쓰는 어린 아이 같은, 그래서 방황하는 그. 난 다자이 오사무를 이해하고 싶다.

 

자기 삶을 수기처럼 소설로 펴 낸 것이 <인간실격>의 내용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 속 주인공 요조의 뒤에 숨었다. 요조는 자신만의 욕망을 알지도 못할 뿐더러 표현하지 못한다. 항상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에 대해 집중한다. 타인이 원하는 삶을 어릴 때부터 숙지한다. 아버지의 선물을 뭐 갖고 싶느냐란 물음에 요조는 자신이 원하는 것도 모르고, 아버지의 표정을 읽으려 한다. 그리곤 아버지가 원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선물을 자신이 원하는 것처럼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성장해가면서 요조는 세상에 대해 신물을 느낀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앞뒤가 다른 말과 행동을 하기에. 심약한 요조는 그런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마치 나와 같다고 느꼈다. 내가 그렇다. 난 심약하고, 사람이 무섭다. 거칠게 말하기보다 침착하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상처 받기 싫어서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유쾌하게 대한다. 내가 착해서 그런 게 아니다. 세상이 무서워서 요조처럼 가면을 쓰는 것이다.

 


  저는 화를 내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끔찍한 동물의 본성을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어떤 순간에, 예컨대 소가 풀밭에서 느긋하게 잠자고 있다가 갑자기 꼬리로 배에 앉은 쇠등에를 탁 쳐서 죽이듯이, 갑자기 무시무시한 정체를 노여움이라는 형태로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저는 언제나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 본성 또한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자격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저 자신에 대한 절망감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 제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고뇌는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에 담아두고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긴 채 그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가장하면서, 저는 익살스럽고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삶'이라는 것 밖에 내가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돼. 나는 무(無)야. 바람이야. 텅 비었어. 그런 생각만이 강해져서 저는 익살로 가족을 웃겼고, 또 가족보다 더 불가사의하고 무시무시한 머슴이랑 하녀들한테까지도 필사적으로 익살 서비스를 했던 것입니다. -18~1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