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요양소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 조영남 본문

책 사유/예술n대중문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 조영남

온화수 2015. 9. 6. 11:47

  2007년 나온 조금 오래된 책이다. 중고서점에 갔다가, 어머니가 고른 책. 정작 사온 어머니는 보지 않으시고 시간이 지나 내가 읽는다. 조영남의 유별난 행동들에 긍정적이진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감정적이랄까. 그런 부분들. 굳이 이해하려 하진 않지만, 나는 이해가 간다. 그를 이해하지 않지만, 그런 자세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이해한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고, 현대미술은 더더욱 문외한이다. 미술을 알고 싶다. 깊지는 않아도, 작품을 보는 매뉴얼은 알고 싶다. 그래야 내가 하는 삶의 창작 활동이 보다 독창적이고 아름다워질 것 같아서.

 


 


누구도 김광석처럼 처절하리 만큼 투명한 노래로 우리의 심금을 울릴 수가 없다. 어째서 그런가. 그들의 노래에는 고흐와 고갱처럼 죽음과 늘 정면대결을 벌여야만 했던 그들의 절박한 삶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차 타고 좋은 방송국에 가서 좋은 프로그램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쓰레기' 같은 가수의 노래에 누구의 심금이 울릴 것을 기대하랴. -84P  


  슈퍼스타K를 보면 확실히 불우한 가정? 힘든 상황에 처한 참가자가, 자기 마음과 비슷한 감정의 노래를 하면, 확실히 빨려 들어간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가수로 성공해서, 상황이 안락해지면, 그 가수는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이미지를 연명해가는 것인가? 예술을 한다고 꼭 가난해야 하나? 물론, 상황이 안락하면 뭔가를 창조해낼 모티프, 충동이 덜 일어나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름 성공했다는 작가들은 작품의 성공을 위한 삶의 실패를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불안에 처한다. 그렇지만... 전쟁 전후가 아닌 안정적인 분위기엔 불안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안정의 시대에서 아무리 불안에 처하려 노력한들, 전쟁의 불안을 이길 수가 있을까.

 

 


우리는 그가 내뱉은 말, "예술은 사기꾼 놀음이다."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치밀한 두뇌플레이 없는 사기는 사기가 아니다.

백남준은 낡은 철물을 얼기설기 얽어서 로봇 인간이라는 키네틱한 조각, 그러니까 움직이는 조각을 만든 적이 있다. 그 로봇의 몸에다 개 목줄 같은 것을 잡아매서 그걸 끌고 뉴욕 거리를 산책했다. 물론 무언의 퍼포먼스였다. 그의 목적은 자신의 인조 로봇이 불시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이었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이는 것이다. 마침 뉴욕은 무단횡단의 천국이고 나는 뉴욕에서 무단횡단 단속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작품이 차에 치이면 「뉴욕 타임즈」의 기자가 달려오고 각 방송·뉴스·텔레비전에서 득달같이 달려온다는 걸 계산에 넣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고도의 두뇌플레이로 현대미술의 흐름에 휩쓸려 들어갈 수 있었다. -356P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선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 그림뿐만 아니라, 나의 글을 알리고 싶다면, 누군가 알아주길 기다리기보다, 거리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나의 창작물을 위한 2차의 창작물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3의 창작물을 만들고, 그걸 영상화해서 제 4의 창작물을 만들고, 퍼지고. 홍보 방식도 뻔하지 않아야 한다. 저자와의 만남 이런 건...

 

누군가 백남준에게 왜 예술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싱겁기 짝이 없는 세상살이에 양념 한 가지 치는 기분으로 한다."고 시덥잖게 대답했다. -363P

 

우리 쪽에선 예술을 한답시고 얼마나 거들먹거렸는가. 예술이 무슨 권력이나 되는 것처럼 얼마나 착각해왔는가. 박남준은 다만 삶의 단순한 재미를 꾀하기 위해 뒤샹이 변기통을 들어올린 것처럼 망가진 텔레비전을 들어올렸고, 케이지처럼 일부러 피아노가 물리적으로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으며 보이스처럼 천시 받는 무당 짓거리를 서슴없이 해냈다. -363~364P

  

  예술에 관심 가지다보면, 사랑하게 되고, 숭배하게 된다. 그리곤 예술에 무관심한 주변을 보며 다른 차원의 유기체라며 자뻑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인간을 위한 게 예술이라면, 하면 할수록 왜 많은 대중들을 분리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고 가벼워져야 하는 것인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 건가. 어렵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