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요양소

이별 후 스침 본문

일상의 철학

이별 후 스침

온화수 2015. 10. 12. 10:13

이별한 사람들은 왜 서로에게 죄가 되어야 할까. 몸은 성인이지만, 어린아이 같은 극도의 추한 모습까지 공유해서였을까. 아니면 치기어린 영원함의 약속, 둘로 나뉠 때마저 각자의 삶을 응원한다던 어리숙했던 언어들, 수분 없는 삶에 세상을 긍정적으로 왜곡시키는 사랑이 낭만적이지만은 않구나,라는 꿈을 깨고 싶지 않아서, 이런 저런 이유들로 과거를 외면하는 것일까.


사회 생활을 잘해서 감정에 무뎌져가는 친구들은 그저 마주치라 한다. 하지만 난 담대하지 못해서, 이별이 꽤 지났음에도 많은 것들이 생각나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서로 불편하니까.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그나마 좋은 감정을 유지했으면 해서. 이별 후 마주치면 안 좋은 감정이 생산되니까.


그런 마주침의 경험이 처음이라, 괴로웠지만 싫지만은 않은 감정이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확실한 건, 이 감정을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말 잘 통하는 친구를 불러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처음엔 먹고사니즘으로 시작해서, 글쓰기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니 마음이 어느 정도 풀려갔다.


친구는 내 소설에 긴장이 없다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내 삶을 돌이켜보니, 그날도 우연하게 마주친 것을 제외하고는 마지막 친구들과 인사하는 자리에 함께 있어서 나만 홀로 회피했다. 내 삶에서 긴장을 피한 것이다. 매사 내 태도가 그렇다. 헤밍웨이와 반대다. 그러니 감정을 끌고 가는 긴장이 내 글에 있을리가 없지. 그런 생각이 들어 쓰고 날카로운 술잔을 집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