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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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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온화수 2016. 1. 7. 15:08

이 책의 저자는 에밀 아자르지만, 에밀 아자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로맹 가리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가 가명으로 신분을 숨기고 출판한 책이다. 프랑스의 3대 문학상 중 최고 권위의 공쿠르 상이 있는데, 한 명의 작가에게 한 번의 수여만을 원칙으로 하는 상이다. 공쿠르상의 수상자에게는 평생 출판의 기회가 보장이 되고 권위 있는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로맹 가리는 일찍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오래 명성을 지니지만, 이후 비평가들에 의해 한물 간 작가라는 평가들을 받게 된다. 


그런 로맹 가리는 가상의 이름 에밀 아자르로 공쿠르 상에 작품을 출품하게 되고, 그 작품인 '자기 앞의 생'이 수상하게 된다. 최초로 한 작가가 두 번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주인공인 모모는 아랍계 소년이다. 사실 이름은 모하메드인데, 소설 배경 당시 프랑스에서는 모하메드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의 아랍인이라는 느낌과 하층민이라는 느낌을 동시에 주었기 때문에 모하메드는 모모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어린 모모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 없이 유태인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다. 그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 아파트였다. 


로자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세계대전을 겪었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아이들을 돌보며 버티고 있었다. 성매매 여성이 낳은 사생아를 돈을 받고 돌보는 게 그녀의 일이다. 그녀 역시 과거 사창가에서 일했었다. 모모는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지 않고 주변 이웃들을 편견 없이 사랑한다. 이방인, 비주류의 환경에서도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소년의 외로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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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로자 아줌마가 매월 말 받는 우편환 때문에 나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쯤에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내 생에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10P


로자 아줌마 집에 있는 아이들은 거의가 다 창녀의 아이들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지방에 가서 몇 달씩 머물러야 했던 그녀들이 떠나기 전후에 자기 아이들을 보러 오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엄마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만 빼고 모든 사람에게 다 엄마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보러 오게 하기 위해 복통과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길 건너에 풍선을 들고 서 있던 어떤 아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배만 아팠다 하면 엄마가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배가 아파도 소용이 없었고, 발작을 일으켜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좀더 관심을 끌어보려고 아파트 여기저기에 똥을 막 싸갈겼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4~15P


뭐 누구를 모욕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로자 아줌마의 집은 아무리 익숙해진다 해도 역시 우울한 곳이었다. 그래서 쉬페르가 감정적으로 내게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가능하다면 나 자신이 살고 싶었던 그런 삶을.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녀석이 보통 개가 아니라 푸들이었다는 점이다. 하루는 어떤 부인이 쉬페르를 보더니, "아이구, 그 개 참 예쁘기도 해라!"라며, 개가 내 것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팔 의향이 없는지 물었다. 내 옷차림이 꾀죄죄하고 생김새도 프랑스 사람 같지 않으니까 그녀는 녀석이 특별한 종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오백 프랑을 받고 쉬페르를 그녀에게 넘겼는데, 그것은 정말 잘 받은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그 마음씨 좋아 보이는 부인이 정말 돈 많은 집 부인인지 확인해보려고 오백 프랑을 불렀다. 내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그녀에겐 운전기사가 딸린 차까지 있었다. 그녀는 내 부모가 나타나 소란이라도 피울까봐 그러는지 쉬페르를 얼른 차에 태우고 가버렸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오백 프랑을 접어서 하수구에 처넣어버렸다. 그러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송아지처럼 울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로자 아줌마 집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돈 한푼 없는 늙고 병든 아줌마와 함께 사는 우리는 언제 빈민구제소로 끌려가게 될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니 개에게도 안전하지 못했다. -29~30P


"자, 우리 친구 모하메드를 소개해줄게." 그애들의 엄마가 말했다.

그녀는 모하메드가 아니라 모모라고 불렀어야 했다. 모하메드라고 하면 프랑스에서는 아랍새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난다. 내가 아랍인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모하메드라고 하면 청소부나 막일꾼을 뜻한다. -253P


"로자 아줌마, 왜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녀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구?"
"열네 살인데, 왜 열 살이라고 하셨냐구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260~261P


프랑스 소설이라 현학적인 문체는 아니라서 읽히긴 쉽다. 하지만 내용보다 스타일리쉬한 작가의 문체를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 걸 원한다면 독일 문학을 읽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한다. 문체의 화려함을 뛰어넘는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14살 소년에게서 성숙한 사랑이 무엇인지, 성숙하지 못한 성인의 나를 돌이켜보게 하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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