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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남자의 물건> - 김정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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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남자의 물건> - 김정운

온화수 2016. 2. 7. 07:37

나는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의 생각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내게 삶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2012년에 나온 책이지만, 예전에 읽어봐야겠다,하고 잊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읽게 됐다.


차범근이라든지, 박범신이라든지, 이어령, 문재인, 안성기, 최근 별세하신 신영복 교수 등의 자신이 아끼는 삶의 '물건'에 대해서 들을 수 있다. 남자는 권력을 쥐고 있다가 나이 들면서 잃게 되면 초라해지고 갈피를 못 잡게 되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물건이 있느냐 없느냐를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수집하거나 어떤 일련의 리추얼을 통해서 삶의 만족을 느끼느냐! 그렇지 못하고 외부의 세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사회적 권력을 잃었을 때, 분명 더없이 쓸쓸해질 것이다,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즉, 짧고 굵게 살려는 이기적이고 우아하지 못한 개저씨가 되지 말자는 거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래 사람들 붙잡고 맨날 술만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몰두할 '물건'을 찾으라는 것이다. 문화를 즐기고 자신 내부에 몰두하는 아름다운 남자가 되자는 것이다.

 

나의 물건은 무얼까. 책이 아닐까. 


에세이 형식이며, 술술 읽힌다. 별 다섯 중 3개 후반(?)



밑줄


이제 막 사랑하기 시작한 연인들이 놀이공원에서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고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위적으로라도 과장된 정서 공유의 경험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함께 구성하려는 것이다.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일수록 이런 정서 공유의 경험이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젊어서 서로 죽고 못 사는 연애를 한 부부의 이혼율이 높은 것이다. 결혼이 일상이 되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정서적 경험이 밋밋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변한다!


정서 공유의 경험이 가능하려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야 한다. 말귀 못 알아듣는 한국 남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도대체 뭘 느끼는지 알아야 타인과 정서 공유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자신의 내면에 무지한 이들에게 나타나는 결정적인 문제는 판단력 상실이다. 인지능력은 멀쩡하지만 보통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황당한 결정을 하게 된다. 돌아보면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집에서 아침밥 못 얻어먹고, 토마토케첩만 가득한 달걀토스트를 들고 길거리에 서 있는 그 싸한 기분부터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손님에 대한 아무 ‘배려’없이 펄펄 끓는 물을 부어 만든 싸구려 원두커피에 혓바닥을 델 때의 그 분노가 처절해질 때쯤, 아내와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형용사가 다양해져야 남의 말귀를 잘 알아듣게 된다.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라곤 기껏해야 쌍시옷이 들어가는 욕 몇 개가 전부인 그 상태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거다. - <남자의 물건> 내용 중



인생에서 어느 시절의 기억이 가장 뚜렷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학창시절을 언급한다. 노인들도 학창시절의 기억은 아주 생생하게 이야기 한다. 가슴 설레는 기억이 많은 그 시절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다. 모두가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기부터 시간은 아주 미친 듯 날아가기 시작한다. 당연하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지 기억할 만한 일들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죄다 반복적으로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하는 일들뿐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올 한 해도 불 보듯 뻔하다. 일 년 뒤, 난 또다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미친 시간’에 한숨 쉴 것이다.


한 집단의 역사는 집단적 기억이다. 기억을 통한 의미 부여의 과정을 통해 한 집단의 아이덴티티는 유지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역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기억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미 부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만해 진다.


기억할 게 없다는 이야기는 내 삶에 전혀 의미 부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죽기 직전 그 짧은 몇 초의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지며, 인생의 중요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짧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본능적 행위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수록 긴장해야 한다. 의미 부여가 안 되니 쉽게 좌절하고, 자주 우울해지고, 사소한 일에 서운해진다. 이런 식이라면 ‘성격 고약한 노인네’가 되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다. 삶의 속도와 기억의 관계에 관한 심리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이 ‘미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억할 일들을 자꾸 만들면 된다. 평소에 빤하게 하던 반복되는 일들과는 다른 것들을 시도하라는 이야기다. 인생과 우주 전반에 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계획은 아무 도움 안 된다.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시도해야 한다.


오늘도 술잔 앞에 두고 부하 직원들에게 한 이야기 하고 또 하지 말자는 거다. 이제 다 외울 지경인 윗사람 이야기 참고 또 들어줘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면서 도대체 왜들 그러는가. 이 추위를 뚫고 집까지 한번 걸어 가보는 거다. 올레길을 걷는다며 돈 들여 제주도까지 갈 일이 뭐가 있겠는가. 오늘 직접 해보는 거다. 너무 무모하다 싶고, 추위가 두려워 비겁해지면 한강 다리라도 한번 걸어서 건너보자. 도대체 평생 살면서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 기억이 있긴 한가.


시립미술관이나 덕수궁미술관에 들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요즘 좋은 전시회 정말 많이 한다. 해설방송 헤드폰 끼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자세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거다. 눈과 귀로 느껴지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은 침대에 누워 늦게까지 TV채널이나 돌리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자 속옷 광고 홈쇼핑에 채널 멈추고 집중하다가 제풀에 흠칫 놀라는 촌스런 행동은 이제 그만 하자는 거다. 우리 주위에 그런 야한 속옷이 어울리는 여자는 이제 없다. 아, 과거에도 없었다. 미안하다. 아무튼...


심리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분트는 인간이 경험하는 ‘현재’의 길이를 측정했다. 약 5초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불과 5초만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과거나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오직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5초의 객관적 단위는 주관적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팽창될 수 있다. 제발 현재를 구체적으로 느끼며 살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시간이 미치지 않는다. - <남자의 물건> 내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