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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전성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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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전성은

온화수 2016. 2. 18. 14:19

몇 년 전에 SNS에서 거창고의 직업 십계명이 회자됐던 적이 있었다. 그 십계명을 보고 가슴이 뛰었고 콧등은 시큰해졌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십계명을 포스팅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조차도 한국의 현실(?)과는 괴리감에 자세히 설명해내지 못 했다. 


읽어보면 착한 말이긴 한데, 도대체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 기억에서 지워져갔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무슨 책을 읽을까, 찾고 있는데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이란 책을 발견했다. 무려 부제는 '보통 엄마의 거창고 직업십계명 3년 체험기' 


아. 빛과 같았다. 드디어 그때의 못다 푼 의문을 풀게 되는 건가. 설렘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읽다 보면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혀를 찰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의문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게 저자의 생각이 들어있다.


그럼 다들 스님이 되라는 건가, 생각할 수도 있다. 타인이 바라보는 성공보다,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서 꿈을 이뤄온 어른이라면, 이 책이 말하는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밑줄

직업선택의 십계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내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점, 그것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20대와 30대를 보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불편해질까 봐 싫어 굳이 외면한 채 청년기를 보냈다는 모종의 부채 의식. 나는 그런 부담을 갖고 있었다. 고민을 생략한 덕분에 몸은 편했는지 모르지만 외면한 순간부터 성장을 멈춘 어른이 되었다. 그걸 이제야 돌아보게 되었다.




2014년 겨울, 일본에서는 우경화 바람을 타고 이론 최초로 국산 전투기를 만들어낸 과학자가 존경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호리코시 지로. 그를 다룬 영화 <영원의 제로>가 관객 동원 1위 자리를 지켰다. 일본 전투기와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인으로서는 전혀 이해하기 힘든 일 아닌가. 호리코시는 자신이 만든 전투기가 전쟁에 사용되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다는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애니메이션 명장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작품 <바람이 분다>에서 호리코시 지로를 시대에 휩쓸려간 불행한 과학자로 묘사했다. 단지 시대의 탓일까? 동시대를 산 독일의 비행기 설계자 후고 융커스는 나치에 반대했다. 그와 비교한다면, 호리코시 지로는 국가에 순응한 현실주의자에 불과하다. 나는 그를 존경받을 만한 과학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컴퓨터를 발전시킨 두 명의 미국인 과학자들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존 폰 노이만은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미국이 소련보다 하루라도 빨리 폭격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 노버트 위너는 당시의 발전하는 기술이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든다고 판단했다. 누가 더 바람직한 인생일까?




인간의 참된 힘과 참된 행복과 참된 성공은 무엇인가. 직업십계명이 말하기를, 그것은 월급이 많은 쪽에 있지 않다. 왕관이 있는 쪽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두대가 있는 쪽이라는 말이다. 옳은 일을 위해 살다 보면 부조리한 사회로부터 박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삶의 길이 오히려 참된 인간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월급이 많은 쪽, 남들이 앞다투어 모이는 곳을 추구하면 너희만의 고유한 색깔을 잊을 수 있으니 그런 곳으로는 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아버지 같은 선생님의 당부. 참으로 행복하고 참으로 건강하고 비로소 평화가 오는 길. 이 길의 관점에서 너희가 직업을 갖고 그런 관점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가르침. 학교에서 이런 걸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거창고 졸업생 너희만은 제발 힘의 논리에서 강자가 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힘이 모이는 곳에 가서 그 힘을 모으는 일에 너희가 기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직업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가르침이다.




거고인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거고인 농부가 키운 작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거고인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거고인 판사가 내린 판결은 믿을 수 있고


거고인 직공이 만든 옷은 단추가 잘 떨어지지 않으며


거고인 선생님에게는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다.


거고인 관리는 뇌물을 받지 않고


거고인 기자는 거짓을 전하지 않으며


거고인 역사자는 그 무엇보다 진실을 목말라한다.


그래서 세상은 거고를 빛이요 소금이라고 한다.



2003년 2월 거창고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50회 최지헌이 발표한 답사문 중 일부다.




높은 자리에 앉게 되자, 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기 시작했다. 때마다 선물 공세를 펼쳤고 그에게 잘 보이려 애썼다. 그는 가족 대소사를 겪고 나서 자리의 힘을 더욱더 실감하게 되었다. 권력의 달콤함을 확실히 알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는 달라져갔다. 권력을 붙잡으려 애썼다. 자신에게 잘 보이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이미 확보한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 자꾸만 더 움켜쥐었다. 힘이란 그런 걸까? 돈의 맛이 그런 걸까? 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기만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생기면 남을 도울 거라고, 힘이 생기면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변할 수 있다. 악으로든 선으로든 우리는 어디로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돈과 힘을 갖겠다는 말은 어쩌면 지독한 오만일지 모른다. 우리는 그런 존재다. 누군가를 바꾸기는 커녕 자기 한 사람도 지키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세상은 힘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힘없는 여러 사람이 모일 때 변화하고 나아간다.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지 마라. 너나 잘 살아라. 아이들을 망치고 싶은가? 부부 싸움을 해라. 아이들을 더 망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서로를 비하하라. 무조건 아이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려라. 부모는 그저 이 아이를 열심히 도와주라고 위탁받은 존재에 불과하다."




부모는 아이 속에 신의 형상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부모는 늘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해도 아이에게 믿음을 주면 통제 속에서 큰 아이보다 훨씬 더 성숙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믿어주는 부모 되기의 첫걸음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자율이 있는 곳에 성숙도 따라온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좋은 대학 나와 돈 많이 버는 직장에 취직하는 게 목표라는 전제가 달라지지 않은 한 성적으로 인한 혹은 내가 쫓기는 그 무엇으로 인한 두려움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성공의 기준에 매달라지 말자. 남의 시선으로부터 서서히 자유로워지는 선택을 하자. 그래야만 나는 용기를 낼 수 있고 내 아이는 행복해질 수 있다. 나보다 생각이 자유로운 아이, 몇십 년 더 많이 산 엄마보다 앞뒤 재는 계산을 덜 하는 아이, 그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고 반대하지 않는 엄마가 되어보자고 다짐한다. 그 결과로 지금보다 성적이 더 떨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가 바라는 그 조건에서 멀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너무 잘 그리려고 덧칠을 할수록 망치는 것처럼, 자녀교육도 너무 잘 해보려고 하수록 점점 어긋났던 것 같다.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향기와 빛깔을 가진 존재들인데 내 빛깔을 칠해 넣으려고 했으니 나는 한참 모자란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