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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는 밤중에 무얼 할까?> - 노경실 본문

책 사유/어린이

<바둑이는 밤중에 무얼 할까?> - 노경실

온화수 2016. 2. 24. 01:09

나이 들수록 머리에 들은 게 많아서 탈이다. 지식과 경험이 좋게 쓰이면 좋은데 편견으로 대부분 변해가기에, 자신은 상대 입장을 생각한다고 한 것들이, 편견으로 가득 차서 도리어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간다. 

 

어릴 때, 많은 걸 모를 때, 그저 사물을 사물 자체로 볼 수 있었을 때, 그 시선을 다시 찾고 싶었다. 왜 잃어버렸을까. 창의력은 아이처럼 그것만 그대로 볼 수 있는 시선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 입장에서 문제 해결을 찾는 것. 아무 정보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동화책을 많이 읽는다. 작가는 어른이지만,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표현이 새롭다. 이 닦으라는 엄마의 잔소리 가득한 입을 보고는 밥공기처럼 크게 벌어졌다느니, 소리 지르는 입안의 치아들은 밥알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느니, 놀라운 시선들.  

 

이 동화는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의 간섭이 싫어 '이'가 되고 싶다는 데서 시작한다. 치아가 아닌 털에 기생하는 해충.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바둑이의 이가 되고 싶다며. 바둑이는 학교도 안 가도 되고 숙제도 안 해도 되고 엄마의 잔소리가 없으니까. 바둑이의 삶에 감정 이입돼서 조금 울컥했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인 '나'는 밤이 되어 졸다가 뒤척여 잠에서 깬다. 그때 소원대로 바둑이의 '이'가 되어 있었다. 바둑이는 목공소 앞에 모여 동네 개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친구 개가 트럭에 치여 다리가 부러졌다고, 차들 조심하라며 얘기를 나눈다. 주인 욕도 하면서.


바둑이의 털에 매달려 '이'의 시선에서 주인 뒷담을 하는 바둑이가 괘씸하지만, 엄마에게 혼나면 자기를 찬다는 말에 찔리기도 한다. 


개들은 버려지지 않기 위해 주인 거슬리는 짓을 하지 말자는 얘기도 한다. 새벽이 되자 도둑 고양이들과 대면을 한다. 단판을 지어야 한다. 도둑 고양이들은 가정 집에 몰래 들어와 생선을 훔쳐 가니까. 그래서 개들은 자신이 대신 혼난다며.


개들은 사나운 도둑 고양이 들에게 적수가 안 되어서 도망친다. 바둑이는 남죽 엎드린 채 혀로 얼굴과 몸 구석을 핥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바둑이의 '이'가 되어 하루 종일 지켜보고선 바둑이의 삶도 버겁겠구나를 느낀다.  



*기도나 십자가나 헌금 얘기 같은 게 나와서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좋아서 개인적으로 큰 불편함은 없었다. 



밑줄

나는 며칠 동안 끙끙대다가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나를 이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면 바둑이 털 속에 꽉 붙어 있다가 살펴볼 수 있잖아요. 너무 궁금해서 숙제도 잘 할 수 없어요. 우리 바둑이가 밤중에 뭘 하나 하고 자꾸자꾸 생각했더니 변비에 걸렸단 말이에요.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보고 운동 부족이라면서 수영장에 다니래요. 하지만 나는 세수하는 것도 귀찮은데 수영장을 어떻게 매일매일 다니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이 문제만 풀어지면 나는 정말 행복할 거예요. 숙제도 그전처럼 잘 할 거예요. 친구랑 싸우지도 않고, 누나 방을 어질러 놓지도 않을 거예요.




"누나는 벌써 다 하고 자리에 누웠단 말이야. 넌 이 학년이 되어서도 만날 그 모양이니!"


엄마의 입이 이제는 밥공기처럼 커졌습니다.


"쯧쯧, 이도 제대로 안 닦으면서 밤중에 거울 앞에서 모양은 내긴! 넌 아빠를 닮아도 어떻게 나쁜 것만 닮았니?"


국그릇처럼 커진 엄마의 입.


"아빠도 씻고, 닦는 거라면 설거지하는 것보다 더 싫어하시는데...... 빨리 양치질해!"


밥솥이 되어 버린 엄마의 입. 엄마의 입에서 하얀 밥알이 막 튀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바둑이가 울고 있는 거예요. 나는 개장사에게 팔려 가는 강아지들이 우는 걸 정말 본 적이 있어요. 또 못된 주인한테 마구 맞으면서도 도망치지 못하고 우는 개도 봤었죠.


그런데 무얼 깊이 생각하며 우는 개를 보는 건 처음이에요. 바둑이는 눈을 껌뻑이며 중얼거렸어요. 아니, 기도했지요.


"멍! 내가 죽을 때까지 현호네 집에서만 살게 해 주세요.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는 거는 싫어요. 그리고 봉실이가 어디에 사는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살도록 지켜 주세요. 그리고...... 현호가 나를 발로 차지 않게 해 주세요. 현호는 부모님께 야단맞거나, 누나와 싸우거나, 시험을 못 보면 괜히 나를 발로 뻥뻥 차요.


저번에는 배가 너무 아파서 죽을 뻔했어요. 멍멍!"


나는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뜨끈뜨끈해졌습니다.


"미, 미안해 바둑아...... 내가 또 너를 발로 차면 내가 내 발을 똥뎅이라고 부를 거야! 다시는 발로 차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