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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철학

순간을 유희하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

온화수 2016. 9. 4. 01:42


A. 막 태어난 상태. '진짜 자신'만으로 순수하지만 깨지기 쉽다. '자신'이라는 의식은 아직 없다.


B. 사회 적응을 위해 신경증성이나 '가짜 자신'을 익혀간다. 그러나 때때로 답답함을 느낀 '진짜 자신'이 반발한다. 이른바 반항기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획득하려고 한다. 1인칭을 모색한다.


C. 반발의 좌절과 사회에 대한 굴복. '가짜 자신'에 '진짜 자신'이 길들여진다. 사회 적응을 완성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 신경증성의 절정. '타자 본위'. 0인칭. 낙타.


D. '진짜 자신'이 반역을 시작하려고 꿈틀거린다. 자신을 잃어버린 까닭에 고뇌가 생기거나 심신의 부조, 갑작스러운 부적응 형태로 신호가 나타난다. '타자 본위'의 막다른 곳.


E. '진짜 자신'에 의한 혁명. 고여 있던 분노의 분출. 1인칭의 실현. 개인주의. '자기 본위'. 자력. 사자.


F. '자신'이라는 1인칭이 사라진다. 자연이나 우연에 몸을 연다. 종교적 의미에서의 0인칭. 타력. 아이. 순수하고 강한 존재. 창조적인 유희.


-223~224P <뿔을 가지고 살 권리> 내용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C에서 멈춘다. 진짜로 살아가기 위해선 그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낙타, 사자, 아이의 개념이 나온다. 삶은 견뎌야 할 고통으로 생각하고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지는 낙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거대한 용과 싸우는 사자. 하지만 사자마저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린아이의 순진 무구와 세상에 대한 망각은 알지 못한다. 

 

F를 보면 '자신'이 사라진다고 했다. E단계까지는 '나'라는 자신이 존재했다. 자신이 존재하고, 자신이 갈망하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F단계인 아이의 단계에는 나라는 존재를 망각한 것이다. '나'라는 성향과 배경, 기억은 매 순간 갱신되며 그저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말고.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기쁨 앞에서 온화하고, 슬픔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을 느낄 '나'라는 존재는 없을뿐더러 비어있는 공의 세계이니 말이다. 그저 삶을 유희하면 된다. 나는 E단계 정도가 아닐까. 타자의 기준보다 나의 기준으로 내 본위대로 긍정하며 살아가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내가 존재하기에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달려가길 원한다. 아직 사자인 것이다. 

 

F의 어린아이가 되려면 꿈과 목표 같은 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 앞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몸이 가는 것이다. 나는 '왜?'라는 질문을 했고, 고민을 한 결과 목표를 세웠고, 그 길로 가고 있기에 지금을 놓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철학적 질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왜?'라는 질문이 있었기에 현실의 짐을 짊어지는 낙타를 탈출할 수 있었다. 나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지만 그 방법을 아직은 모른다. 어떻게 해야 목표를 세우지 않고 순간순간을 유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