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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아닌 어른이 절실하다

온화수 2016. 9. 10. 11:53


아이가 울 때 애정을 주면 안 된다. 우는 이유를 길 가던 타인처럼 물어봐야 한다. 손짓을 했을 때 가져다주면 안 된다. 키가 안 닿는다면 의자를 주어서 꺼내게 해야 한다. 울거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손짓만을 했을 때 이루어지는 게 많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직접 해결해주기보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게 부모의 성숙한 역할이다. 떼를 쓴다면 단호해야 한다. 원칙을 정하고 조금이라도 넘으면 들어주어선 안 된다. 그리고 그 원칙을 부모 기분에 따라 흔들리면 안 된다. 아이가 타당하게 느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아이가 울고 있는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 부모들은 당장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아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만 자란 아이가 된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기보다 자기 결정을 자꾸 주변에게 묻는다. 

 

당장은 마음 아파도 참고 기다려야 건강한 아이가 된다. 그게 성숙한 사랑이다. 남녀 연인 관계에서도 그렇다. 여성은 자기를 위로해달라고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하는 얘기를, 남성은 이건 잘했고, 저건 아니야,라며 문제 해결을 해주려 한다. 여성은 서로 교류하고 싶어 하고, 남성은 일방적으로 전하려 한다. 

 

무조건 자기감정을 이해해달라는 것도, 감정 교류 없이 큰 그림에서 상대를 위한 것이라며 이성 잣대만을 대는 것도 옳지 않다. 무엇이든지 양극단의 직선이 존재하고, 그 사이 평행한 중간 절충이라기보다는 한 단계 상승한 세모점 합의의 방법이 가장 온당하다. 

 

위와 같은 교육 방법이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방법이 아닐까. 나를 전부 감싸줄 것 같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것. 원칙 없는 무조건적인 이해와 관계에서 감정 교류라는 과정을 경시하고 문제 해결만을 위한 태도는 서로에게 발전이 되지 않는다. 

 

서로 각자가 자신을 존중할 때,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관계는 소유물이 아니다. 나이와 배경도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 행동만 보아야 한다. 스스로 성숙하려고 애쓰는 자만이 타인을 이해하려고 한다. 성격이 맞고 틀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르더라도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결국 나를 사랑하려고, 세상을 흘러가는 것으로 보고, 마음을 부드럽게 써야 하는 것이다. 그게 진짜 어른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엔 나이가 아닌 어른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