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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돈과 마주한 가족의 민낯

온화수 2017. 8. 19. 00:59



무력한 K는 엄마를 외면한다. K가 삶에 막막하고 죄스러워 종종 우울해질 때면, 그는 엄마를 피한다.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슬픈 표정보다 오히려 많은 감정을 함구하는 무(無)라는 표정이, 그녀에게 전염되리란 걸 걸 알기 때문에. K는 엄마의 방문 앞의 움직임에도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종교 관련 영상을 보기도 하고 명상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흐른다. 그의 눈은 강물이 되어 범람한다.


엄마는 날아온 각종 고지서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런 엄마와 대화를 하는 건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다. 당장은 엄마에게 위로가 되어도 더더욱 우울의 수렁 속으로 빠지는 성격이란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K는 엄마에게 만은 살가운 편이지만, 그녀와 거리를 둔다.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서.


며칠 후, 아침 식탁에서 작은 아빠가 괜찮아진 거 같다고 엄마는 말한다.


이젠 돈 얘기 안 하고 너네 아빠 산소도 깎고 왔더라. 곧 퇴직할 시기 됐으니까 타일 배우러 다닌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먹고살 궁리는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우리 집 화장실에 나중에 해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돈 없어요,라고 말했지. 그랬는데 그냥 시험 삼아서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렇다. K의 가족은 작은 아버지가 불편했다. 돈이 뭐길래. 형이 사고로 죽기 전부터 형을 찾아다녔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피해 다녔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작은 고모가 말했다. 아버지는 자기 가게에 찾아와서는 동생이 보증을 서달라는데 어떡하느냐고. 누나에게 울면서 말하더라고. 우리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신 분이 자신 누나에게는 보였구나.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은 아빠는 K의 가족에게 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은행에서 일하니 그간 어떤 도움을 주었고, 빚 얼마가 있다고. K측은 그 증거를 원했고, 사실 관계와는 멀어 보였고 작은 아빠의 증거도 자세히 따져보지 않았다. 그냥 그가 불행해 보여서 정으로 준 것이었다.


그 후로도 작은 아빠는 K측의 이런 일 저런 일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사망과 법적 소송으로 버거운 K측을 더더욱 괴롭혔다. 안 오던 K의 집을 몇 번이고 찾아왔고 진행 상황을 물었으며 집안의 문서를 뒤적거렸다. 자기 큰 형도, 작은 형도 떠나버렸으니, 집안에 자기가 어른 혼자니까 자신을 믿으라면서.


그와 중에 입이 걸걸한 어떤 50대 여자는 우리 집에 찾아와서 보험금을 내놓으라느니 난리를 피워댔다. K 아버지의 내연녀였는데, 사망 보험을 가입할 때, 다달이 그 돈은 자신이 내고, 법정상속인으로 계약해서, K측이 받게 된 형국이었다.


아버지가 벌려 놓은 몰랐던 일들을 대할 때마다 K측의 정신과 마음은 메말라갔다. 엄마와 아들은 차라리 아빠가 죽길 잘했다고. 더 오래 살았으면 일을 더 벌렸을 것 아니냐고. 농담 아닌 농담들을 종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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