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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유/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페미니즘 에세이



나는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페미니즘에 관련된 페이스북의 글들과 인터뷰 기사 등을 통해서만 접했다. 나는 성향이 섬세한 편이라서 예민하다는 소릴 들으며 자랐다. 남자치고 예민하다고. 그래서 나는 남자지만 남자들의 거칠고 무례를 아무렇지 않게 침범하는 환경이 달갑지 않았다. 

내가 현재 있는 환경은 섬세한 곳이다. 여성이 다수이고, 섬세하고 사근사근 말하는 남성들이 있는 곳. 그런데도 페미니즘에 관련된 생각들을 읽을 때면 너무 예민한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자니까 어쩔 수 없는 걸까, 싶다가도, 섬세하고 개방적인 내가 이 정도인데, 무뚝뚝하고 둔한 남자들은 얼마나 이해가 안 갈지 상상이 되어 슬퍼졌다. 학교 밖의 공부를 스스로 하려는 사람은 너무나 적으니까.

내가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관련 생각을 적기라도 하면, 나는 남자들로부터 페미니스트가 된다. 나는 페미니즘 에세이를 한 권 읽었을 뿐이다. 페미니스트를 이해해보려 하지만, 소셜미디어상의 글로만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관련 책을, 접하기 쉬운 에세이부터 집어 든 것이다. 

페미니스트라 세상이 규정하는 그들끼리도 서로 싸우는데 진정한 페미니즘이 있을 수 있을까. 왜 자꾸 틀에 맞춰서 규정하려 하는 걸까. 늘 정답을 원하고 규정하려 하는 건 더는 촌스럽다. 그저 듣자고. 설득하려 하지 말고 서로 얘기를 하자고. 그러다 보면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테니까. 이야기를 들으려는 나의 첫 시도는 이 책인 거고. 


누군가의 부재는 '마땅히' 애도해야 하는 것이 되고, 누군가의 부재는 그렇지 못하다. 매 맞는 아랫집 여자가 당한 폭력은 '그런 남자를 만났거나, 여자도 똑같거나, 여자가 맞을 만했거나'로 해석되며 희석되고, 낙태를 한 여자의 아픔은 '그러게 피임을 잘 했어야 했다, 여자가 자초한 일, 여자가 아니라 죽은 아이가 불쌍하지'라며 폄하된다. 파리 테러의 희생자를 애도했던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시리아·팔레스타인 등 제 3세계 곳곳의 희생자들에게도 같은 슬픔을 느꼈을까.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함께 아파하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죽음이나 폭력에는 어떨까. 여전히 '자발적 매매춘'이었는지 '강제적 인신매매'였는지는 위안부 문제의 중심 화두가 된다. 설사 '매매춘'이라면 그 폭력은 다르게 해석되는 걸까. -78P


페미니즘은 단 하나 혹은 메갈리아와 메갈리아 아닌 것으로 나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정체성도 페미니스트 혹은 메갈리안으로만 정의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쉽게 "너는 진정한 페미니즘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 개개인의 페미니즘이 있으며, 페미니스트'들'은 사안에 따라 협력하거나 투쟁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정하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페미니스트가 세상의 구원자이거나 천사이거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재는 아니니까.

진정한 페미니즘은 없다. 나는 누군가 허락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생각이 없다. 이것은 나도 모르게 가하는 폭력을 성찰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거부이다. 나는 내 존재 자체로 자유로워지고 싶고,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자유롭길 바랄 뿐이다.

추신. 혹시 진정한 페미니즘이 있다고 믿는다면 스스로가 진정한 페미니스트의 모델이 되어주길 바란다. -111~1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