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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방구석 미술관> - 조원재 지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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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방구석 미술관> - 조원재 지음

온화수 2019. 11. 20. 15:43
방구석 미술관
국내도서
저자 : 조원재
출판 : 블랙피쉬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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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서모임 선정 책이어서 읽게 됐어요. 사실 전자책으로도 보려고 시도했었고, 남동생에게 이 책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았어요. 그렇게 크게 흥미는 없었나 봐요. 하지만 독서모임 선정 책이라는 숙제 아닌 숙제를 받으니 생각보다 편하게 읽게 되더라고요.

 

이 책의 작가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미술이 본능적으로 끌려 독학하셨대요. 미술 작품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서 독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돈을 벌었고, 유럽 전역의 미술관을 순례했어요. 미술에 대한 오해와 허례허식을 벗겨 함께 즐기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분인 것 같습니다.

 

14명의 미술가가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업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작품이 나왔는가를 소개하고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에요. 에드바르트 뭉크, 프리다 칼로, 에드가 드가, 반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셀 뒤샹! 요렇게 화려하지만 슬픈 이름들이 나옵니다.

 

제가 형광펜으로 줄 친 부분을 소개해볼게요! 

 

에드가 드가 부분

"무대 위에서는 더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발레리나. 사실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습니다. 아니 고통스러웠다고 해야 할까요?
세상 물정 모를 일곱 살 소녀가 엄마의 손을 잡고 오페라 발레단에 들어갑니다. 뼈가 성장해 굳어버리기 전에 발레리나의 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당시 발레리나는 자기 인생에 대한 선택 권한 없이 발레리나가 되었습니다."


"발레리나가 이런 극한 직업임에도 소녀들이 버텼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파리는 보수적이라 여성들의 자유로운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귀족이라 하더라도 여성은 그림을 배우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도 없었죠. 하물며 가난한 노동 계층은 어땠을까요?
불우한 현실을 바꿀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던 시절, 유일한 빛은 발레리나로 화려한 성공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실제 성공한 발레리나는 당시 교사의 연봉에 무려 8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발레를 통해 성공하려는 소녀들의 경쟁은 전쟁처럼 치열했고,  그 결과 많은 소녀들이 몸을 망치고 버리게 되었습니다."

"넘치는 풍요 속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쾌락으로 채울까'를 고민하던 플레이보이들에게 발레리나는 단순히 공연으로만 보고 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그들은 발레리나들이 있는 무대 뒤편으로 찾아가 그녀들을 유혹했습니다. 쾌락의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였죠. 한 명의 소중한 소녀는 여기서 성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때 '스폰서(sponsor)'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권력을 가진 스폰서를 만난 발레리나가 단숨에 주인공을 꿰차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죠. 그것을 이용한 흑조도 있었지만, 반대로 고통받는 백조도 있었을 것입니다."
-066~068P

19세기 말 풍요로웠던 프랑스 파리의 벨 에포크 시대. 발레는 상류층들이 즐기던 문화생활. 무대 위 발레리나들은 꿈과 성공에 목마른 가난한 이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래. 연예인이 떠오르네요. 환상을 심어서 소비당하는 형태. 당하는 사람 또한 돈과 관심을 받으므로 싫지만은 않는 줄다리기. 제가 하는 미용을 보면 부유한 사람보단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돈을 위해 시간과 삶에 대한 질문과 고민은 사치가 되는 사람들. 그래서 불합리마저 받아들이는 입장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낙엽들.

 

구스타프 클림트 부분

그는 자신이 가야 하는 길 위에 놓인 짐을 기꺼이 어깨에 지고 고난의 사막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투쟁했습니다. 대다수가 순응하기에 문제없어 보이지만, 분명 맞지도 옳지도 않은 세상의 규칙에 대항한 투쟁이었습니다. 클림트는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외쳤죠. 그리고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자신의 삶을 놀이로 승화시켰습니다. 신명하는 놀이 속에서 자신만의 규칙이 살아 숨 쉬는 놀이터를 만들었습니다. 원래 정해진 세상과 규칙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룰 브레이커에서 룰 메이커로 거듭나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 117~119P

프리드리히 니체의 정신 변화 3단계가 있죠. 세상을 짐이라 여기며 순종하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낙타, 아닌 건 아니라고 화를 내 거부하는 사자, 놀이처럼 천진난만함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아이. 어린아이가 제일 높은 단계인데요. 저는 얼마전까지 사자였다가 어린아이처럼 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불합리라고 느껴져서 내 식대로 살아가야겠다며 어긋난 행동을 했고, 그러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조금씩 부끄러워졌어요. 다른 미용실에 가서 서비스도 받아보면서 내가 있는 이곳이 서비스의 질이 좋은 곳이었구나 여기게 되었죠. 그러더니 받아들여졌고 매일매일을 즐기려고,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하며 애쓰고 있어요.

 

에곤 실레 부분

어린 실레는 오스트리아 툴른 역장이었던 아버지 아돌프 실레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당시에 그린 그림이 온통 기차, 철로, 신호등으로 도배되어 있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에게 고통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성병인 매독을 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레의 어머니 마리에게까지 감염되어 아이가 사산되는 불행을 겪습니다. 이어 실레가 세 살이 되던 1893년, 열 살이던 누이 엘비라마저 선천성 매독으로 사망하죠. 그리고 1903년, 매독 증세가 심해진 아버지는 결국 직장을 잃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발작을 일으키던 중 그간 투자했던 주식과 채권 모두를 태워버리는 어이없는 짓을 저지릅니다. 그것은 실레 가족의 유일한 재산이었는데 말이죠. 
1905년, 아버지는 고통 속에서 사망합니다. 열다섯 살 실레에게 그것은 엄청난 충격으로 뇌리에 박힙니다. 아버지를 좋아했던 만큼 슬픔은 컸고,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평생 증오하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뼈아픈 경험 속에서 실레는 뜻하지 않게 자신만의 예술 주제를 얻습니다.
죽음을 부르는 '성(性)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 그렇게 실레는 어린 나이에 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이는 아마 의식 깊은 곳에 숨어 젊은 날의 그를 마구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레는 이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우는 영감의 원천으로 승화시킵니다.
-125P

자신의 괴로움을 예술의 영감으로 승화시켰다는 내용을 보고 나의 괴로움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 괴로움으로 미용에 적용시키면 저만의 개성과 스타일이 생긴다는 마법같은 팁이잖아요?

 

마르셀 뒤샹 부분

뒤샹은 풍자만화가로 일하며 풍자 정신을 깊이 체득합니다. 현실을 무조건 맹신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시각으로 보며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되죠. 게다가 풍자만화에 빠지지 않는 감초 같은 요소인 유머 감각 또한 보너스로 얻게 됩니다. 적재적소의 유머 한 방이 딱딱한 마음의 장벽을 허물 수 있다는 걸 깨닫죠. 아마 그 당시 뒤샹은 절대 몰랐을 겁니다. 풍자만화가를 하며 얻게 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기 인생의 강력한 무기가 되리라는 것을 말이죠.
뒤샹은 풍자만화가로 활동하면서도 화가의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전문적인 회화 교육을 받지 못해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보며 '나도 화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수년간의 훈련이 필요한 '기술력'보다 기존의 틀을 깨는 '사고력'이 미술에서 더 중요해졌음을 간파한 거죠. -318P

유머와 틀을 깨는 사고력! 제가 미용에서 살아남는 전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전 32살에 시작했기에 빠르면 10대 후반부터 한 이들의 기술력을 따라갈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저는 재밌는 사람이어야 하고 남다르게 해야 살아남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