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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으로 읽는 상처 테라피 <책으로 치유하는 시간> - 김세라 지음 본문

책 사유/인문학

세계문학으로 읽는 상처 테라피 <책으로 치유하는 시간> - 김세라 지음

온화수 2019. 12. 5. 17:53
책으로 치유하는 시간
국내도서
저자 : 김세라
출판 : 보아스 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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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용실에서 일하거든요. 속상한 일을 겪고 퇴근 후 서점으로 향했어요. 그때 눈 앞에 바로 띈 책이 <책으로 치유하는 시간>이었어요. 나와 감정을 분리를 해야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데, 아직은 마음 근육이 강하지 않아서 종종 흔들리네요.

 

이 책의 저자는 중등교사로 재직할 때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상담 분야에 몸담기 시작했어요. 그 후 대치동에서 입시학원 강사를 하면서 공교육과 사교육 현장을 경험하고 학업성적의 우열이 주가 되는 현실을 본 것이죠. 그 상황에서 개인적 성향과 감정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고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해 본격적으로 상처 치유 상담과 강의에 나섰어요.

 

큰  주제로 19장씩 나뉘어 있어요. 각 장마다 소주제로 2~4개의 소설을 이용해 상처와 감정에 대해 표현하고 있어요. 순수와 현실성의 균형감을 실패한 청춘이란 소제목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예로 든다던가, 내가 나를 존중한다면 그 무엇도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소제목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이야기해요.

 

치열한 감정싸움에 지치다 보면 점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며 갈등을 조장하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 마음속으로는 동조하지 않지만 드러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포기해버린다. 가족 간에 합의가 필요할 때는 오가는 대화가 생략되므로 대부분 주도권을 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가부장적인 아버지나 완고한 어머니는 점점 더 견고한 성을 쌓고 자녀들은 그런 부모와 벽을 쌓는다. 결국 가족들은 마음을 닫고 모여 있어도 각자의 공간 속에 부유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081P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에는 철저히 이타적 삶을 사는 여인이 등장해요. 겉으론 현실에 순응해 살지만 마음은 지치고 황폐함에도 그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요. 그녀는 램지의 부인이에요.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램지 부인이 죽었고, 8형제 중 프루와 앤드루가 죽어요. 램지 부부의 여름 별정은 부인이 없으니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돌보는 사람이 없어 황폐해져요.

램지 부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어요. 그러나 램지 부인의 인생은 이타적 삶이 온전히 남을 향해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줘요. 내가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소유하고 그것을 즐기면서 이타적일 수 있다면 이상적일 거예요. 나의 상처를 그대로 두고 이타적 삶만 추구하면 결국 램지 부인처럼 불행해져요.

때때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는 위해 삶에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극한 상황에 몰리면 그와 전혀 다른 것을 원한다. 그것이 마치 탈출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회사가 너무 힘들면 다른 직장을 찾으려 애쓴다. 마치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현재 느끼는 힘겨움이 모두 해결될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회사를 옮기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명준이 남쪽에서 크게 실망하고 북으로 간 것은 그곳은 남쪽과 전혀 다를 거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남쪽 못지않은 오히려 더 해결 불가능한 부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본다. 모든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면이 존재한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서 다시 반대의 극한 상황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같은 상처를 입고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이 될 뿐이다. -109P

저는 서른 너머 미용을 시작했어요. 다양한 직군에서 일을 했어요. 알바를 제외하고는 언론사, 광고업계, IT, 숙식 막노동 등등. 숙식 막노동은 돈 때문에 했고, 다른 일들은 무언가 마음이 끌려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같은 이유로 그만두었던 것 같아요. 벽이 느껴지고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 마음이랄까요. 내 성격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지금 생각해보면 타고난 성격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성장하려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저 미용 시험 7번 만에 붙었고 미용실 취업해서도 샴푸도 엄청 못한다고 욕먹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10년 단골손님이 자신이 받아 본 샴푸 중 3위 안에 든다는 칭찬도 들어요. 이런 거 같아요. 감정과 나를 분리하고 부딪히고 까여도 멘탈을 잘 붙잡고 다시 시도하는 이 프로세스가 성장하게 만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캐서린과의 사랑이 헨리를 지켜준 것처럼 우리도 힘든 시기에는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게 해 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삶이 힘들수록 위축되고 의지를 상실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거창한 것일 필요는 없다. 다만 몰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헨리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현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더 열정을 쏟거나,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의도적일지라도 친절을 베푸는 것이 마음을 잡아줄 수 있다. 또 좋아하는 분야의 독서목록을 만들어 다 읽어보는 것,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의 영화를 모두 찾아서 보는 것,  훌쩍 여행을 떠나보는 것,  헬스를 등록해 운동하기 등 소소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무엇엔가 몰입함으로써  상처가 삶을 잠식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 203P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든 일도 이겨내려고 더 애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은 삶의 원동력이에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1737년 죽을 때까지 악기를 만들었는데 특히 1715년 이후 만들어진 악기가 훌륭하며 보관만 잘 되어 있으면 가격이 460억에 달한다. 그 시기에 제작된 악기가 훌륭한 이유는 그것을 만든 소재가 혹독한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중반부터 유럽은 소빙하기라 할 정도로 추웠다. 이 혹독한 한파에 시달리던 1645년에서 1715년 사이에 성장한 나무로 제작된 악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추운 곳에서 자란 나무는 느리게 성장해 밀도가 높고 탄성이 좋아 소리 파동을 잘 전달하므로 좋은 악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206~207P

역경을 겪고 이겨낸 사람은 내적으로 단단해지고 다른 이의 고난을 더 잘 알아보고 이해하죠. 고통은 결과적으로 성장을 위한 단비가 돼요. 고난도 어찌 보면 괴롭지만 감사한 것이에요.

 

자신의 길을 시행착오 없이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운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필립처럼 여러 가지 실패와 좌절을 겪고 계속되는 헛발질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심지어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사회의 가치관이 다양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젊은 나이에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로 인해 오랜 시간을 돌고 돈 뒤에 자신의 길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방황의 시간들이 헛된 것이 아니다. 좌절과 혼란의 시간들은 이후의 삶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다시 만나게 되는 좌절의 시간이다. 특히 아무런 장애 없이 평탄하게 은퇴한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긴 삶은 두려움이다.  기복 없는 삶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외로움, 소외감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러므로 삶에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필립과 같은 방황은 젊은 시절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14P

필립을 보고 제 삶과 참 닮았다고 느꼈어요. 이제는 방황을 접고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긍정하고 해내려고 하죠. 미용이 너무 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제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자격증을 딸 때도 남들 1~2번에 붙을 때 저는 7번이나 봐서 붙었거든요. 취업하고 나서도 어설프다고 많이 혼났는데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거 보면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같고 미용을 하면서 책임감과 성장을 배우고 있어요. 꼭 길이 환상적일 필요는 없어요. 그저 할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충실히 해내려고 애쓰면서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어요.

 

  슈호프처럼 최악의 환경 속에서 마치 하루를 선물 받은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삶은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상처를 내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그의 삶의 자세를 단순히  긍정적인 자세나 성실함으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그는 주어진 최악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247P

그는 끝이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빵도 다른 죄수들처럼 식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놓는다. 이가 없지만 딱딱한 빵을 잇몸으로 꼭꼭 씹어 먹는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는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그의 거친 손은 수십 년의 감옥살이에서 얼마나 중노동에 시달렸는지를 짐작케 하지만 그는 전혀 굴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 -250P

그 모든 상처도 자신을 존중하고 자존감을 잃지 않는 품위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다.
  우리 모두에게는 노인처럼 자기 자신을 드높일 권리가 있다. 외부의 어떤 조건도 내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존감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남들보다 좋은 집, 남들보다 비싼 차, 명품 의상, 높은 지위가 그 사람의 지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다면 바로 품위를 잃게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떤 환경, 어떤 조건에서도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품위 있는 모습이 된다. 그 어떤 것도 그것을 잃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51P

  슈호프는 수용소에서 점점 현명해져 간다. 원망하고 약삭빠르게 살아도 수용소의 시간은 마찬가지로 흘러단다는 삶의 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를 살아내면 수용기간이 하루 줄어드는 것만을 인정하며 산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수용소에서의 생활로 받았던 몸과 마음의 상처가 그를 힘들게 할지라도, 현재 수많은 상처의 이유 속에서도 그는 당당하게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비굴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아는 현명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52P

  만약 지금 하루하루가 괴로운 나날이라면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매일을 선물 받은 것처럼 소중히 살았던 슈호프와 노인을, 그리고 처절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웠던 열사들을 떠올려 보자.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253P

저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부분이 가장 울림이 컸어요. 바로 지금에 충실하는 게 행복이라고 하는데 머리론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깊게 이해되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요즘 일터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마음이 안정화된 상태인데, 이 부분을 읽으니 무슨 말인지 엄청 와 닿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게 '바로 지금'에 충실하는 일이잖아요? 그렇게 살려고 하다 보니까 주변 관계도 좋아지고 행복해지더라고요. 요즘처럼 행복한 날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