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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어젯밤부터 오늘 낮까지도 비가 멈추질 않네. 비가 와서 이틀 하고도 반 가까이 달리질 못했어. 어젯밤엔 비가 와도 그냥 뛰려고 했더니 엄마가 말리는 거야. 비 오는 날 이상한 사람 많다고. "이 동네 외국인 많잖니. 외국인 욕하는 게 아니라, 사장들이 돈도 제대로 안 주고 실컷 부려 먹기나 하잖아. 더구나 비도 오고 그러면 충동적인 마음에 한국인한테 해코지할지도 모르잖니. 더구나 밤이고." 그래. 여자 말 안 들어서 나쁠 게 있나 싶어 굳이 나서지 않았지.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새벽에 비는 잠잠해졌고, 아침 되니 다시 내리더라. '이따 저녁에 뛰어야겠다.' 생각을 바꿨지. 18시 지나니 비는 약해졌고 가랑비 수준이길래, 그냥 나서기로 했어. 이틀 반 가까이 못 뛴 한을 보상받으려는 듯 평소보..
엄마는 급여가 줄었다며 내게 하소연한다. 엄마는 다쳐서 그만두고 입원하셨다가 다른 곳에서 일하셨다. 그러다 전에 있던 공장에서 불러서 다시 간 것이다. 그런데 다시 급여를 기본급으로 줄이다니 너무하다는 것이다. 3일 내내 투덜거려서 내가 계산해봤다. 한 달 지나 10일이 급여일인데, 엄마는 한 달 조금 안 되게 일을 했다. 엄마가 전보다 급여가 줄은 것은 사실이지만, 엄마가 걱정하는 기본급 정도로 줄지 않았다. 그걸 안 엄마는 갑자기 화색이 돈다. 콧노래를 부르고, 편의점에 가자고 한다. 돈 20만 원 차이가 뭐라구. 사람의 감정을 좌지우지한다. 밤 11시가 됐지만, 남동생까지 꼬드겨 엄마와 편의점으로 향한다. 칭따오 두 캔과, 아사히 드라이 한 캔, 그리고 소시지를 고른다. 남동생은 엄마가 춥다며 눈 ..
며칠 전, 집에서 홀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오늘 공장에서 부대찌개 얻어왔다. 봐봐. 먹기 전에 떠놓은 거야. 라면 넣고 뿔면 남아서 버리게 되니까... 햄도 많지? 젊은 형제 두명 있다 그랬잖아. 두명 중 동생 은수가 부대찌개 햄이 없다고 투덜거리더라. 얼마나 찔렸던지... 사실 엄마 잘못만도 아니야. 매일 반찬이 남으니 먹기 전에 조금씩 덜었던 건데, 그날따라 잘 먹지 뭐니. 엄마 되게 미안했어. 경기도 어려운데, 남는 반찬 싸오는 재미도 있다. 반찬값이 얼마나 비싼줄 아니?" 맘 약한 엄마는 은수에게 미안했는지 내게 반성문 쓰듯이 토로한다. 나는 엄마를 안정시키며 할말은 하고 싶다. "어. 맞아. 엄마 잘했어. 근데 다음부턴 먹고 남은 것만 가져와야겠다." "그래. 그래야지..
어제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집 앞 인도에 볍씨들이 늘어져 있다.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쌀농사꾼들은 적당히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볍씨를 말리기 바쁘다. 넓은 공간이면 상관 없는데, 인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개념 없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집에 도착해서 난 엄마에게 따지듯 묻는다. 집 앞 도로에 누가 저렇게 해놓은 거냐고, 엄마는, 누구긴 누구야, 니네 아빠지,라며 신경질적으로 답한다. 엄마는 전에 일하던 일터로 돈을 받으러 갔다가 못 받고 오셔서 화까지 나있다. 게다가 아빠의 행동도 이해가 안 가니 화풀이 표적이 된 것이다. 오늘 아침 일어나 나는 소설책을 필사한다고 다락방에 올라간다. 내 방은 이상하게도 드러눕게 돼서 다락방에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걸레를 빨아서 책상, 의자, 창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