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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책의 도도한 인상을 허물어준 책이에요. 학습 목적보다는 독서에 관한 입장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거나, 소설이라면 모를까 비소설도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거나, 그런 편견을 깨트려요.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고 자신의 독서 방법을 예를 들어요. 그래서 읽는데 강요하지 않는 듯해서 불편하지 않고요. 독서는 재미없으면 덮어도 되고, 한 번에 여러 권을 읽어도 되고, 책에 밑줄 박박 치며 낙서해도 되고, 책에게 신봉하지 말라는 말을 주로 합니다. 다만 나의 세계를 넓히기 위한 독서도 필요하다고 하는 내용도 있어요. 소설가 김영하씨가 소설을 읽기 어려운 이유는 뇌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그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신봉하지는 않아요. 과거엔 숭배했었..
꿈을 찾는 행위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창작이라는 특성이 사회적 관계와는 거리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자신 안의 에너지에 귀 기울이며, 많은 사유를 하고, 생각을 표현하라는 뛰어난 창작자들의 말들. 나는 그 말들을 그대로 실천했을 뿐인데, 왜 마음의 병을 얻어야 했을까. 따지고 보면 그들은 창작은 성공적이었을지 몰라도 역시 외로웠다. 그 외로운 에너지로 무언가를 표현했기에, 그렇게 된 걸지도. 삶은 모든 걸 얻을 수 없지만, 균형은 잡을 수 있다. 유일무이한 창작자가 될 것이냐, 평범하지만 균형 잡힌 사람이 될 것이냐는 자신의 선택이다. 물론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면 능력자겠지만. 뛰어난 작품을 남겨도, 돈이 많아도, 외롭고 공허하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서장훈이 한 말이 생각났다. ..
죄와 벌을 읽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와 한국 사회가 떠올랐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곳이 소설의 배경인데,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새로운 것에 반응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사회 정책에 관심이 없는, 아는 정치인이나 뽑았던 정당을 매번 뽑는 듯한 분위기의 동네. 소설 속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러했다. 또한 한국 사회처럼 느낀 이유는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를 보고 떠올랐다. 무언가 마음의 충동에서 일어나는, 옳다고 느껴지면, 다양한 입장을 듣기보다 싸워서 이기려는 감정적 행동. 민족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많은 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전당포 노파를 정의를 위한다며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다. 사회의 법이 썩었을진 몰라도 노파는 법을 어기거나 하진 않았다. 주인공 라스..
몸을 나라고 착각하면, 나와 남, 나와 세상이 구분돼. 좋은 것은 가까이하고, 나쁜 것은 멀리하려 집착하지. 이런 생각들이 습관이 되면 그게 고정관념이야. 나는 정답이라고 여기지만 알게 모르게 왜곡된 행동으로 표출하게 돼있어. 자신의 생각이 강한 왜곡된 행동은 돌고 돌아서 인과응보로 돌아와. 나와 남이 분리되면 항상 머리에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일어나. 갖고 싶은 것, 취하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혼란스러워지는 거야. 삶은 무엇일까. 왜 이리도 삶은 내게 유난히 버거운 걸까, 같은 고민 섞인 질문을 많이 했었어. 지금까지 깨달은 건,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말씀처럼 삶은 그저 삶이라는 거야. 대단하지 않다는 거야. 그런 질문을 하기보다 내 눈앞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거야...
무력한 K는 엄마를 외면한다. K가 삶에 막막하고 죄스러워 종종 우울해질 때면, 그는 엄마를 피한다.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슬픈 표정보다 오히려 많은 감정을 함구하는 무(無)라는 표정이, 그녀에게 전염되리란 걸 걸 알기 때문에. K는 엄마의 방문 앞의 움직임에도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종교 관련 영상을 보기도 하고 명상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흐른다. 그의 눈은 강물이 되어 범람한다. 엄마는 날아온 각종 고지서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런 엄마와 대화를 하는 건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다. 당장은 엄마에게 위로가 되어도 더더욱 우울의 수렁 속으로 빠지는 성격이란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K는 엄마에게 만은 살가운 편이지만, 그녀와 거리를 둔다. 서로를 지켜내..
법정스님의 삶을 증언과 문헌을 취재해서 쓴 백금남님의 장편 소설이다. 속세에서의 어린 날부터 입적하시기 전까지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다. 법정스님의 세속 이름인 재철이라는 아이의 환경과 삶, 젊은 날 중이 되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과의 이별, 스쳐가는 인연들, 세속의 끈인 글만은 놓지 않았던 그, 종교를 넘나드는 진리의 인연, 시인 백석의 연인 나타샤와의 만남, 안거 중이라 못 찾아뵙던 어머니의 장례식, 법정의 죽음, 인연의 생성과 소멸 사이에서 발현되는 진리의 언어들. 400쪽이 넘는 소설을 상상하며 읽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럼에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의 글쓰기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는데 법정스님의 삶을 통해 힌트를 받았다. ㅡ죽음이 무엇일까. 아무리 높은 선지식을 얻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