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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진실을 알고 싶다면『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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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진실을 알고 싶다면『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온화수 2017. 4. 30. 22:09

이 책을 산지는 반년이 넘었다. 베스트셀러에 목 메진 않지만, 어떤 책이 사람들을 자극하나 확인하고 싶어 서점에 가면 늘 살펴본다. 반 년 전 외국 소설 부문에 이 책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에세이를 읽어본 적은 있다. 가끔 테드에서 강연 올라오거나, 그의 기사들을 관심 있게 살펴볼 뿐이었다. 이 책을 사놓고 덮게 된 이유는 번역된 문장이 부자연스러워서 이해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게 많았다. 철학자라서 전문 용어가 많은 걸까,하고 살펴보니 그리 어려운 용어는 없다. 문장이 부자연스럽지만, 내가 참을성이 없던 탓도 있었다.


일주일 전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어느 문장에 내 맘을 사로잡았고, 나는 붙들렸다. 이해 안 가는 문장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렇게 지나갔더니 그제야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문장이 부자연스러워 이해가 안 가면 분위기로 읽으면 되겠구나,라고.



내용은 불행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커스틴이라는 여자와 라비라는 남자가 만나 만남에서 결혼 후 생활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처럼 느껴져서 나는 오히려 몰입이 잘 됐던 것 같다.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만남까지 그리고 설렐 때까지를 주로 얘기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낭만적이지 않다. 낭만적인 문체로 적나라함을 마주한다.


그래서 이 소설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이성의 입장, 부모의 입장, 결혼 전 후의 입장, 자녀를 낳고 난 뒤의 입장 등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온갖 갈등의 원인과 해결해가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다가간다. 마냥 행복해 보이는 부부도 다 고난이 있다. 그 고난이 안 오길 기대하기보다 그 고난을 어떻게 헤처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책은 결혼을 앞둔 커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위험하려나.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16P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여러가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격원할 만큼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그들 역시 혼란스러워하고 망연자실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지지자로서의 새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지게 된다. -31~32P


사랑의 초기 단계에는 반드시 감추는 게 적절해 보였던 많은 비밀을 마침내 드러낼 수 있다는 순전한 안도감이 어느 정도 생긴다. 우리는 우리가 존경할만하거나 정신이 온전하거나 안정적이지 않으며, '정상'이거나 사회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유치하고, 공상적이고, 거칠고, 희망에 들뜨고, 냉소적이고, 허약하고, 다중적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연인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눈감아줄 수 있다. -37P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둬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116P


성숙함이란 낭만적 사랑이 사랑을 주기보다는 찾기를,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추구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춘 편협하고 다소 인색한 감정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146P


그러나 실제로는 친밀함이 만든 무거운 짐들을 바로잡고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랑과 섹스의 냉정한 분리, 바로 그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이용하면 분노, 감정적 취약성, 상대방의 욕구를 신경 써야 할 의무를 우회할 수 있다. 우리는 비난이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선까지 특이하고 이기적으로 굴 수 있다. 모든 감정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이해되기를 바라는 일말의 소망도 없고 다라서 잘못 이해될 위험도 없으며 그 결과 괴로워하거나, 실망하게 될 위험도 전무하게 된다. 마침내 삶의 소모적이고 거치적거리는 나머지 부분을 침대로 가져갈 필요 없이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87~188P


트롤선과 대화방에서 일어난 가상의 사건들은 라비와 커스틴이 상대방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징표가 아니다. 두 사건은 그들이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된 나머지 이제는 자의식과 책임감이 주는 억제감 없이 사랑을 나눌 내적 자유를 이따금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징후다. -189~190P


우리는 인류의 영광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회사를 설립하고, 경이로울 정도로 얇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에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수십억 인구 사이에 널리 분포된 능력이라 하더라도) 생후 몇 달 된 아기에게 요구르트를 떠먹이고, 사라진 양말을 찾고, 변기를 청소하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고, 식탁에 굳어 있는 기름대를 닦아내는 능력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195P


모험과 안전은 양립할 수 없다는 걸 그는 알았다. 사랑이 넘치는 결혼 생활과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성욕을 죽이고, 외도는 결혼 생활을 죽인다. -238P


이제 그는 이해하기 시작한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겸양과 실망을 다룰 줄 아는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가 장미의 줄기나 블루벨 꽃잎에 감탄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무엇인가 영구적으로 망가져봐야 한다. 일단 더 큰 꿈들이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타협되고 만다는 것을 깨달으면, 고요한 완벽과 즐거움을 간직한 이 자그마한 섬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다보게 된다. -27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