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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결국 스마트폰에서 SNS를 모두 삭제했다. 인스타그램, 스레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은 오래전부터 내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은 공간이었다. 지인들과 소통하며 내가 던진 농담이나 진지한 생각이 반응을 얻는 순간을 즐겼다. 그곳은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들로 채워진 무대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무대는 더 이상 나를 채우지 못했다. 즐거움은 희미해졌고, 그 뒤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감이 자리 잡았다.스레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내 삶에 스며들었다. 운동을 시작하며 매일의 과정을 기록하는 데 썼다. 작은 성취를 공유하며 느꼈던 뿌듯함은 곧 익숙해졌고, 점차 시들해졌다. 거기에 더해, 솔직히 말하자면 여성들과의 소통이 재미있어서 머물렀던 것도 사실이다. 그 소소한 재미마저 금세 빛을 잃었다.페이스북은 다른 이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변수 속에 놓인다. 사주라는 동양의 전통 체계는 우리가 태어난 시간과 환경이 삶의 성향과 흐름을 정한다고 말한다. 한편, 현대 과학은 우리의 DNA가 신체적 특징과 성격의 기초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결정된 궤적 위를 걷는 존재일까? 아니면, 선택과 의지로 운명을 새롭게 그려낼 수 있는 존재일까?사주는 철학적 틀로, 개인의 성향과 삶의 흐름을 해석하려 하지만, 과학적 증거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사주를 통해 위안을 얻고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진다. 이는 사주의 유연한 해석이 인간의 보편적 성향과 심리적 기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DNA는 삶의 청사진을 제공하지만, 그 설계가 곧 운명의 완성은 아니다. 환경, 교육, 경험,..
삶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는 한 발 물러나 관찰자로서 존재하는 데서 출발한다. 나는 나 자신을 고정된 실체로 여기지 않는다. 신체와 정신은 변하고, 나라는 존재도 그 변화를 따라 흐르는 과정일 뿐이다. 이 관점에서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는 나를 유체이탈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이끌고, 사건과 경험을 마치 비디오를 감상하듯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감정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도록 돕고, 삶의 사건들을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하게 한다. 나는 목표를 설정하지만,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삶은 단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노력과,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결과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변모한다. 긍정적이라고 여긴 일이 시간이 지나면..
꿈을 찾는 행위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창작이라는 특성이 사회적 관계와는 거리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자신 안의 에너지에 귀 기울이며, 많은 사유를 하고, 생각을 표현하라는 뛰어난 창작자들의 말들. 나는 그 말들을 그대로 실천했을 뿐인데, 왜 마음의 병을 얻어야 했을까. 따지고 보면 그들은 창작은 성공적이었을지 몰라도 역시 외로웠다. 그 외로운 에너지로 무언가를 표현했기에, 그렇게 된 걸지도. 삶은 모든 걸 얻을 수 없지만, 균형은 잡을 수 있다. 유일무이한 창작자가 될 것이냐, 평범하지만 균형 잡힌 사람이 될 것이냐는 자신의 선택이다. 물론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면 능력자겠지만. 뛰어난 작품을 남겨도, 돈이 많아도, 외롭고 공허하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서장훈이 한 말이 생각났다. ..
몸을 나라고 착각하면, 나와 남, 나와 세상이 구분돼. 좋은 것은 가까이하고, 나쁜 것은 멀리하려 집착하지. 이런 생각들이 습관이 되면 그게 고정관념이야. 나는 정답이라고 여기지만 알게 모르게 왜곡된 행동으로 표출하게 돼있어. 자신의 생각이 강한 왜곡된 행동은 돌고 돌아서 인과응보로 돌아와. 나와 남이 분리되면 항상 머리에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일어나. 갖고 싶은 것, 취하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혼란스러워지는 거야. 삶은 무엇일까. 왜 이리도 삶은 내게 유난히 버거운 걸까, 같은 고민 섞인 질문을 많이 했었어. 지금까지 깨달은 건,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말씀처럼 삶은 그저 삶이라는 거야. 대단하지 않다는 거야. 그런 질문을 하기보다 내 눈앞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거야...
무력한 K는 엄마를 외면한다. K가 삶에 막막하고 죄스러워 종종 우울해질 때면, 그는 엄마를 피한다.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슬픈 표정보다 오히려 많은 감정을 함구하는 무(無)라는 표정이, 그녀에게 전염되리란 걸 걸 알기 때문에. K는 엄마의 방문 앞의 움직임에도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종교 관련 영상을 보기도 하고 명상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흐른다. 그의 눈은 강물이 되어 범람한다. 엄마는 날아온 각종 고지서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런 엄마와 대화를 하는 건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다. 당장은 엄마에게 위로가 되어도 더더욱 우울의 수렁 속으로 빠지는 성격이란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K는 엄마에게 만은 살가운 편이지만, 그녀와 거리를 둔다. 서로를 지켜내..
연애와 신혼이 달콤한 기한이라면 그 이후는 상해가는 과정일까. 유통기한 넘긴 걸 먹는 사람은 비정상인 걸까. 신혼이 지난 후 부터는 종종 탈이 나는 게 자연스러운 걸까. 비정상이니까. 유통기한이 지났는데 자꾸 입에 넣어야 하니까.평균적으로 결혼만족도는 신혼 때 제일 높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중년 시기까지 만족도가 하향한다. 그러다 중년 이후부터 결혼만족도가 높아지다 노년에 이르러 질병에 걸리기 시작하면 다시 만족도는 떨어진다. 그러나 노년이라도 평소 서로에게 노력했거나, 질병에 덜 걸리면 만족감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사회생활하는 내내 가정적이지 않다가, 은퇴하고 뒤늦게 병이라도 걸려서 큰돈 나가면 원수 된다. 이혼 안 당하고 원수만 되면 다행인 것 같기도.결혼에 임하는 사랑은 싱싱했던 과일에서 유통기한이..
내실 있는 것엔 태풍이 불어도 휘청일 뿐, 가라앉지 않는다. 태풍이 잠잠해졌다고 흥분하지 않고 자기 속도로 간다. 어느 지역이 뜬다, 어느 산업이 뜬다, 옆집 애는 학원을 몇 개 다닌다는데 우리 애도 더 보내야 할까 봐, 그 사람은 북한에 다 퍼줄 것 같아서 싫어, 맛집이라고 TV에 나왔대,라고 해서 따르면 대개 실망한다. 통찰력을 위한 자기 공부가 있어야 덜 속는다. 무엇이 진실인지 가치 판단이 안 되어 가벼우면 타인 얘기만 들으며 타인에 의해 삶이 흔들린다. 모든 것에 거품을 조심해야 한다. 거품은 당장 하늘 모르고 치솟지만, 그만큼 꺼진다는 걸 망각한다. 현명한 선택을 판단하는 시선을 길러야 삶을 덜 후회하지 않을까. 타인 얘기를 듣지 말라는 게 아닌, 그대로 순응하기보다 듣고서 가치 판단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