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생각 (13)
영혼의 요양소
밑줄 "나는 잠수하는 모든 이를 사랑한다. 어떤 물고기도 표면에서는 헤엄을 칠 수 있다. 하지만 5마일도 넘게 내려가려면 고래 정도는 되어야 한다. …… 세계가 시작된 이래 사유의 잠수자들은 충혈된 눈을 하고서 표면으로 되돌아왔다." 멜빌이 '사유의 잠수자들'의 운명처럼 말했던 그 고래를 나는 이 책에서 느낀다. 삶과 죽음, 이성과 광기가 골려 있는 아슬아슬한 선 위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사상가의 초상 말이다. - 38P 황금에는 도금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위대한 사건은 소란스럽지 않다. 분출하는 화염과 시커먼 연기는 사람들의 눈을 빼앗고 싶은 거짓 불개들에게나 필요한 것.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듯, "소란과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별로 일어난 일도 없지 않던가." 그 속에서는 고뇌하는 영웅조차 삼류 배우에..
아이가 울 때 애정을 주면 안 된다. 우는 이유를 길 가던 타인처럼 물어봐야 한다. 손짓을 했을 때 가져다주면 안 된다. 키가 안 닿는다면 의자를 주어서 꺼내게 해야 한다. 울거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손짓만을 했을 때 이루어지는 게 많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직접 해결해주기보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게 부모의 성숙한 역할이다. 떼를 쓴다면 단호해야 한다. 원칙을 정하고 조금이라도 넘으면 들어주어선 안 된다. 그리고 그 원칙을 부모 기분에 따라 흔들리면 안 된다. 아이가 타당하게 느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아이가 울고 있는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 부모들은 당장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아이는..
A. 막 태어난 상태. '진짜 자신'만으로 순수하지만 깨지기 쉽다. '자신'이라는 의식은 아직 없다. B. 사회 적응을 위해 신경증성이나 '가짜 자신'을 익혀간다. 그러나 때때로 답답함을 느낀 '진짜 자신'이 반발한다. 이른바 반항기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획득하려고 한다. 1인칭을 모색한다. C. 반발의 좌절과 사회에 대한 굴복. '가짜 자신'에 '진짜 자신'이 길들여진다. 사회 적응을 완성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 신경증성의 절정. '타자 본위'. 0인칭. 낙타. D. '진짜 자신'이 반역을 시작하려고 꿈틀거린다. 자신을 잃어버린 까닭에 고뇌가 생기거나 심신의 부조, 갑작스러운 부적응 형태로 신호가 나타난다. '타자 본위'의 막다른 곳. E. '진짜 자신'에 의한 혁명. 고여 있던 분노의 분출. ..
좋다. 좋다.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사회 생활을 하다 48세에 심리학 공부를 시작해 그 후로 심리학 카페를 열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심리학 카페에서 지난 18년간의 기록을 다시 읽어보았다고 했다. 사람도 어림잡아 5만 명에 달했다. 그 중에서 겹치고 많이 고민하는 내용들을 이 책에 추린 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파리에서의 고민이 한국에서의 고민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진로, 사랑, 공부, 회사의 상사, 친구들과의 관계, 결혼 등등 다양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뤘다. 나는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책을 읽거나 방송을 보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깨달았던 내용들이, 이 책 안에 대부분 이해하..
삶을 관통하는 질서 속 지혜는 무엇일까.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것들을 채비해야 할까. 그저 신념 하나만 지켜나가면 되는 것인가? 신념을 '하나'라고 규정짓기도 참 오만한 일이기도 하다. 신념에는 다양한 철학이 집약되고, 그걸 잘 풀어내야 어떤 형태가 되는 것인데. 결국 '하나'라는 건 '임시적인 하나'지. 세상에 완전히 굳어서 '하나'인 게 존재할까? 자갈에 붙은 먼지를 자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먼지가 자갈의 미세한 파편이라면, 떼어졌을 때 자갈의 개수는 줄어드는 것인가? 우주에 영원한 것은 없지. 무엇이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좋게 변하기 마련이야. 음식이나 연인과의 사랑, 인간관계 등등... 자꾸 움직여야지. 음식을 빨리 먹어버리거나, 냉장고에 넣어서 오래..
01 세상에 많은 부채를 진 나는 모든 소리를 무음으로 해놓는다. 어쩌다 새로운 곳으로부터, 미처 무음 해놓을 수 없는 낯선 곳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나는 설렘보단 전신이 두려움으로 떨린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내 말만 뱉을 뿐 제대로 타인의 말을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 유별난 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까다롭지 않아야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할 때 서로 편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고 싶어도 집착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사는 이유는 사랑인 것 같은데, 그로 인해 잦아드는 구속은 예민한 내게는 반갑지 않다. 모순이다. 내가 사는 이유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부딪는다. 아직 나는 자유..
이별한 사람들은 왜 서로에게 죄가 되어야 할까. 몸은 성인이지만, 어린아이 같은 극도의 추한 모습까지 공유해서였을까. 아니면 치기어린 영원함의 약속, 둘로 나뉠 때마저 각자의 삶을 응원한다던 어리숙했던 언어들, 수분 없는 삶에 세상을 긍정적으로 왜곡시키는 사랑이 낭만적이지만은 않구나,라는 꿈을 깨고 싶지 않아서, 이런 저런 이유들로 과거를 외면하는 것일까. 사회 생활을 잘해서 감정에 무뎌져가는 친구들은 그저 마주치라 한다. 하지만 난 담대하지 못해서, 이별이 꽤 지났음에도 많은 것들이 생각나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서로 불편하니까.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그나마 좋은 감정을 유지했으면 해서. 이별 후 마주치면 안 좋은 감정이 생산되니까. 그런 마주침의 경험이 처음이라, 괴로웠지만 싫지만은 않은 감정이라..
나는 김수영처럼 살 수 있는가. 지위와 권력에 굴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며칠 전 이어령 선생님이 나온 프로그램을 보고 혼란이 생겼다. 이어령 선생님께서는 일본을 품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군국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일본 국민들도 군국주의의 피해자라고. 광복절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일본에게도, 일본이 지배했던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기뻐할 날이라고. 일본 국민들도 나라를 위해 남편, 아들들을 희생해야 했으니까.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도 저항하는 문학을 많이 썼지만, 이제 젊은 세대에게는 품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을 바라보자면, 꼭 절실하게 저항을 해야 하는지, 서로의 타협점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저항한다고 거인들을 이길 수가 있는가. 물론, 눈앞에서 세상이 바뀌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