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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연애와 신혼이 달콤한 기한이라면 그 이후는 상해가는 과정일까. 유통기한 넘긴 걸 먹는 사람은 비정상인 걸까. 신혼이 지난 후 부터는 종종 탈이 나는 게 자연스러운 걸까. 비정상이니까. 유통기한이 지났는데 자꾸 입에 넣어야 하니까.평균적으로 결혼만족도는 신혼 때 제일 높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중년 시기까지 만족도가 하향한다. 그러다 중년 이후부터 결혼만족도가 높아지다 노년에 이르러 질병에 걸리기 시작하면 다시 만족도는 떨어진다. 그러나 노년이라도 평소 서로에게 노력했거나, 질병에 덜 걸리면 만족감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사회생활하는 내내 가정적이지 않다가, 은퇴하고 뒤늦게 병이라도 걸려서 큰돈 나가면 원수 된다. 이혼 안 당하고 원수만 되면 다행인 것 같기도.결혼에 임하는 사랑은 싱싱했던 과일에서 유통기한이..
어린 날엔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드라마 속 지루한 말이구나 정도로 여겼었다. '사랑하는데 왜 떠나? 사랑하면 더 붙어있어야지.'라며 단순하게 생각했다. 20대 끝자락 고요한 방구석에서 책의 어느 구절을 읽다가, 문득 그 진부한 말이 떠올랐다. 왜 사랑해서 떠나는 걸까? 사랑의 의미부터 생각해야 했다. 사랑은 상대가 상대답게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상대가 자기 생각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은 사랑이 아닌 욕망이다. 상대가 나와 있을 때 상대답지 못하고 불안해한다면 떠나야 한다. 상대를 사랑하니까. 상대가 상대답게 행복해져야 하니까. 너를 위한 거라며 자신의 욕망대로 상대를 조종하려는 건 사랑이 아닌 욕망이다. 상대를 생..
이별한 사람들은 왜 서로에게 죄가 되어야 할까. 몸은 성인이지만, 어린아이 같은 극도의 추한 모습까지 공유해서였을까. 아니면 치기어린 영원함의 약속, 둘로 나뉠 때마저 각자의 삶을 응원한다던 어리숙했던 언어들, 수분 없는 삶에 세상을 긍정적으로 왜곡시키는 사랑이 낭만적이지만은 않구나,라는 꿈을 깨고 싶지 않아서, 이런 저런 이유들로 과거를 외면하는 것일까. 사회 생활을 잘해서 감정에 무뎌져가는 친구들은 그저 마주치라 한다. 하지만 난 담대하지 못해서, 이별이 꽤 지났음에도 많은 것들이 생각나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서로 불편하니까.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그나마 좋은 감정을 유지했으면 해서. 이별 후 마주치면 안 좋은 감정이 생산되니까. 그런 마주침의 경험이 처음이라, 괴로웠지만 싫지만은 않은 감정이라..
요즘같이 습한 날이면 차라리 고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수분을 먹고 불순물을 뱉는 온몸은 이토록 끈적거리는데, 누르고 있는 노트북은 매끈하다. 노트북에 아이스크림이라도 떨어져 끈적해버린들 노트북 스스로는 불쾌함을 느낄 수도 없을 테니까. 노트북은 감정이 없지만, 누군가는 노트북을 매개로 감정을 재생산한다. 키보드를 누르고 있으면, 자욱한 안갯속에서 하나의 기억이 눈앞에 머문다. 흐릿하던 주변은 함축되고 굵은 빗방울 하나가 이마 위로 툭 떨어진다. 얼마 전, 지인 A와 술자리를 했다. 그에겐 5년을 함께 했던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최근 헤어졌다. 그는 헤어지기 두 달 전부터 여자친구에게 농담으로 떠날 거냐고 자주 물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여자친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말라며 시선을 흘겼다고. ..
"그래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냥 가슴팍에 묻어둬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 멀어집니다. 글도 마찬가지죠. 고통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그 고통이 사라집니다. 고통이 객관화되기 때문입니다. 고통에 빠져 죽는 사람들은 말과 글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죽어요. 모든 예술은 고통에서 출발하죠. 행복한 사람은 예술가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고통과 외로움을 좀 알아달라고 하는 게 예술이에요." -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 “보수는 탐욕스럽고, 진보는 생명력 잃었다” 기사 내용 중기사 링크: http://joongang.joins.com/article/723/16348723.html?ref=mobile&cloc=joongang|mnews|pcve..
어제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집 앞 인도에 볍씨들이 늘어져 있다.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쌀농사꾼들은 적당히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볍씨를 말리기 바쁘다. 넓은 공간이면 상관 없는데, 인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개념 없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집에 도착해서 난 엄마에게 따지듯 묻는다. 집 앞 도로에 누가 저렇게 해놓은 거냐고, 엄마는, 누구긴 누구야, 니네 아빠지,라며 신경질적으로 답한다. 엄마는 전에 일하던 일터로 돈을 받으러 갔다가 못 받고 오셔서 화까지 나있다. 게다가 아빠의 행동도 이해가 안 가니 화풀이 표적이 된 것이다. 오늘 아침 일어나 나는 소설책을 필사한다고 다락방에 올라간다. 내 방은 이상하게도 드러눕게 돼서 다락방에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걸레를 빨아서 책상, 의자, 창틀을..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이하 그레고르)는 자고 일어나니 벌레로 변해있다. 본인도 당황스럽고 회사에 갈 시간도 지나서 몸을 빨리 일으켜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어떻게 일어나고 걸어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레고르가 출근 시간이 지나서도 회사에 오지 않자, 사장님의 지배인이 그레고르의 집에 찾아온다. 지배인은 그레고르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동생과 함께 잠겨있는 그레고르의 방 문 앞에서 그레고르를 설득한다. 어머니는 그레고르만큼 착실한 아이가 없다고, 분명 어딘가 아플 거라고, 그래서 지금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배인에게 호소한다. 그레고르는 지배인에게 지금 잠시 몸이 불편해서 못 나가고 있는 거라며 회사로 가 계시면 곧 가겠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지배인은 강고하고 결국 그레고르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결..
엄마와 동네 편의점에 갔다. 바깥 테이블에서 아저씨 무리가 무리하게 술을 드시고 계신다. 그 밑에 강아지가 누워 한없이 기다리고 있다. 길가에 지팡이를 짚으신 할머니께서 횡단보도를 건너시려 하자, 그 테이블에 있던 한 아저씨께서 술 먹다 말고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곤 할머니를 부축하고 차를 막는다. 강아지도 같이 따라 나선다. 안전하게 건너게 해드리고, 그 아저씨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술을 들이키신다. 강아지도 다시 테이블 밑에 눕는다.그 아저씨는 술을 다 드셨는지 콜택시 도착하니 쿨하게 가신다. 아저씰 따르던 강아지는 택시 앞에서 대기하다가, 떠나니, 쿨하게 횡단보도를 건너 자기 본래 서식지로 가는 것 같았다. 그 아저씨는 주인이 아니었던 거시다.엄마에게 물어보니 풍문에 저 아저씨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