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요양소

자연은 엄마가 무서울 것이다 본문

일상의 철학

자연은 엄마가 무서울 것이다

온화수 2014. 10. 11. 15:35

어제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집 앞 인도에 볍씨들이 늘어져 있다.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쌀농사꾼들은 적당히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볍씨를 말리기 바쁘다.


 넓은 공간이면 상관 없는데, 인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개념 없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집에 도착해서 난 엄마에게 따지듯 묻는다. 집 앞 도로에 누가 저렇게 해놓은 거냐고, 엄마는, 누구긴 누구야, 니네 아빠지,라며 신경질적으로 답한다.


 엄마는 전에 일하던 일터로 돈을 받으러 갔다가 못 받고 오셔서 화까지 나있다. 게다가 아빠의 행동도 이해가 안 가니 화풀이 표적이 된 것이다.


 오늘 아침 일어나 나는 소설책을 필사한다고 다락방에 올라간다. 내 방은 이상하게도 드러눕게 돼서 다락방에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걸레를 빨아서 책상, 의자, 창틀을 훔치고 자리에 앉는다.


 2시간 가량 썼을까, 공기가 답답해서 바깥으로 난 다락방 문을 활짝 열었다. 초등학생 때 말고는 다락방엔 잘 올라오지 않아서, 높은 곳에 있으니, 늘 스치던 집 앞의 모습이 정경이 돼버린다. 그렇게 잠시 취해 멀리만 바라보다가 오른편 밑을 바라보니 쓸쓸해보이는 엄마가 보인다. 어제, 아빠를 그렇게 나무라시던 엄마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 냄새나는 볍씨 위에서 못 먹는 풀씨를 골라내고 있다. 맘 약한 엄마다. 약함은 강함을 이긴다. 엄마는 비가 오면 젖고, 눈이 오면 맞고, 바람이 불면 버티고 서있다. 자연은 엄마가 무서울 것이다.

 

'일상의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독백  (0) 2014.11.04
노린재  (0) 2014.10.12
141009 꿈, 미래, 현실  (0) 2014.10.09
우리집 새끼 똥개 썰  (4) 2014.10.09
솔직하지 못함에서 괴로움은 출발한다  (4) 2014.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