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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솔직하지 못함에서 괴로움은 출발한다

온화수 2014. 9. 28. 13:15

최근 나를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잘 웃고 장난기가 많은 사람으로 알고 있을 것 같다. 나이에 비해 철없는 장난도 많이 걸고, 웃기려 안간힘 쓴다. 그러고 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오면 급격히 침울해진다. 인터넷에 쓰는 글들 보면 우울한 느낌이라 호감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인터넷과 실제의 모습이 왜 이렇게 다르냐며 한마디들 한다. 나도 모르겠다. 사람들과 있으면 웃어야 할 것 같고, 즐겁게 해주고 싶고, 뭔가를 잊으려는 듯 실없이 웃는다.


어떨 때는 지나치게 솔직한 글을 써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는데, 꼭 좋은 것들만 포장해서 보여주는 건 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은 면만을 보여줘서 주변에 사람이 남는 건, 나쁜 면을 보였을 때 떠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딜 가서든 솔직하려 애쓰고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수컷인지라 아리따운 여성 앞에서 불편한 질문은 얼버무리는 건 있다. 내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 의견대로 나서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움직인다. 좋고 싫음을 말하고, 소수의 의견이라도 그 사람이 자기 의견대로 되지 않았을 때, 모두에게 불편함을 내색한다면, 그 사람 말을 따른다. 그게 모두에게 덜 피곤한 것으로 생각되기에. 


주변을 봤을 때, 무엇이 좋고 싫은지 잘 모른다. 남자든 여자든 선택을 잘하지 못해 결정을 서로에게 미룬다. 그리곤 다툼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좋고 싫음보다, 다수가 원하는 선택을 하게 돼서 그런 것 같다. 어른들이나 가족들, 튀면 눈치 주는 학교 교육들. 그들은 감시하고 시기마다 주는 미션에 미션에 달려가야만 한다. 자신이 무엇이 좋고 싫은지 모른 채 살아간다. 내가 원해서 좋아하는지, 남들이 원하는 모습을 만족하는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난 이 모든 게 우리가 솔직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윗사람이 어떤 부탁을 했을 때, 거절하고 싶다고 치자. 하지만 현실적으론 거절하기 쉽지 않다. 내 삶이 거기에 있으니까, 내 가족이 있으니까. 그래도 너무 윗사람에게 휘둘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듣고, 한 번은 핑계 대고. 그래야 여력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보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