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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노린재

온화수 2014. 10. 12. 12:47


노린재 한 마리 뒤집혔다
등이 둥근 방패 같아서
홀로 일어서기 버겁다
차라리 바람이라도 불면
누군가 건들기라도 하면
그걸 타고 일어설 텐데
거센 바람이나
천적의 위협이
때론, 위기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


 *노린재라는 벌레 한 마리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나는 벌레를 보면 휴지로 싸서 잡거나 터트리는 건 싫어서, 병뚜껑이나 종이컵 등으로 가둬둔다. 일종의 놀이기도 하고. 그러다 노린재가 뒤집혔는데, 등이 넓고 둥근 방패 같아서 홀로 일어서지 못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 중간 네 다리는 짧아 땅에 안 닿고, 뒤 두 다리는 비교적 길어 땅에 닿긴 닿는데, 일어서기엔 역부족이다(카프카의 '변신' 소설에서 아침에 침대 위에서 벌레로 변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서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다시 종이컵으로 가둬봤다. 그리고 10초쯤 뒤에 다시 열어보니, 종이컵 안 쪽에 붙어있다. 이 노린재는 자신을 가뒀던 종이컵의 안쪽 면을 딛고 일어선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무수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뒤집힌 삶일수록 차라리 후폭풍 같은 거센 비바람이 때론, 우리를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다시 일어선 노린재를 보고 생각한다. 노린재는 다시 밖으로 보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