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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어떻게든 부족한 나를 채우려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어떻게 내가 배운 것들에서 벗어날까,를 위해 읽고 있다. 부족함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배워서 부족하다고 시선에 휩쓸렸다. 채울수록 고집은 강해졌고 나와는 멀어져 갔다. 나를 찾는다는 건 사회의 요구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덧붙여진 걸 깎아내는 일이었다. 깎아냈더니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코며, 어디가 입인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마음이 이끄는 걸 볼 수 있었고 맡을 수 있었고 맛볼 수 있었다. 채우려 발버둥 쳤더니 어느 순간 비우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백색점이 나타났다.
같은 글을 읽어도 시간을 두고 다르게 다가 올 때가 있다. 해석은 했지만 속뜻을 몰라 의아했던 문장들이 부쩍 다가오는 찰나의 순간.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채플린의 언어가 최근 그러했다. 인생은 하루하루 늘 버거운 일들의 연속이라 비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고통들이 안 지나갈 것 같지만 결국 지나갔고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그래도 잘 버텨왔구나’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희극 아닐까. 시간을 두고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전보다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유하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게 된 계기는 세상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솟아나면서부터였다. 성인이 되어 생각하는 습관이 찾아왔다. 청소년기에는 무기력한 학생이었다. 그랬던 나도 성인이 되어서 독서를 하기..
어린 날엔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드라마 속 지루한 말이구나 정도로 여겼었다. '사랑하는데 왜 떠나? 사랑하면 더 붙어있어야지.'라며 단순하게 생각했다. 20대 끝자락 고요한 방구석에서 책의 어느 구절을 읽다가, 문득 그 진부한 말이 떠올랐다. 왜 사랑해서 떠나는 걸까? 사랑의 의미부터 생각해야 했다. 사랑은 상대가 상대답게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상대가 자기 생각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은 사랑이 아닌 욕망이다. 상대가 나와 있을 때 상대답지 못하고 불안해한다면 떠나야 한다. 상대를 사랑하니까. 상대가 상대답게 행복해져야 하니까. 너를 위한 거라며 자신의 욕망대로 상대를 조종하려는 건 사랑이 아닌 욕망이다. 상대를 생..
무언가를 보상 받으려 무엇이 되려하면 안 돼요. 실행하는 과정에서 고난에 대한 보상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나마 보상이 내 안에 있다고 한다면 그 고난조차 무언가에 홀려 이겨내게 되는 자긍심 정도랄까요. 이미 고난을 두려워 하고 과정을 보상 받으려 한다면 자기 마음 안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꿈이 아니에요.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신하려면 자신에게 끊임 없이 묻고 행동하고 실수해야 해요. 처음엔 누구나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확신이 없어서 구분을 잘 못해요. 자기 확신을 갖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혹은 책에게, 강연을 통해서도 노하우를 묻는 게 도움이 돼요. 하지만 결국 답을 찾는 건 스스로 해야 해요. 책과 강연에서는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답을 찾기 위한 좋은 질문을 얻는 것이에요. 성공했다..
처음 수영 강습을 받았다. 내가 생각보다 수영을 못하는구나 알게 됐다. 1년에 두어 번 계곡에 놀러 가도 물속에서 그리 불편함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까 수영장에 가서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뜨지도 못했다. 수영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으니 숨 쉬는 법도 이해가 안 가서 물을 엄청 먹었다. “입을 닫고 으음 소리를 내보세요. 입과 코에서 진동이 느껴지세요? 그걸 물속에서 해보세요.” 강사는 설명했다. “나와서는 파하고 뱉으시는데 급하게 뱉지 마시고 물 위에 완전히 올라왔을 때 뱉어보세요.” 나는 설명을 들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안경 안까지 물이 들어가고 코에도 물이 들어가 눈이 붉어졌다. 그러면서도 강사가 뒤에서 떠밀길래 살짝 군대 생각이 났다. 마냥 편하게 배우러 왔는데 강사가 스파르타식이다. 하..
머리로 자신을 판단하지 말아요. 심리테스트를 너무 신뢰하지 마세요. 물론, 자기 탐색을 위한 좋은 자세이긴 해요. 안 하는 것보다 좋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을 하고 심리테스트를 해본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테스트 결과는 자신을 가둬요. 이론일 뿐이에요. 고민하기 이전에 어떤 분야에 마음이 갔다면 해보는 거예요. 현재 직업을 관두고 무작정 도전하느냐고요? 아니에요. 직장을 유지한 채 시간이 날 때 조금씩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을 배워보거나 해보진 않아도 봉사를 해보거나 하는 거예요. 한국에선 시간이 없으니 어려울까요? 네. 힘들거예요. 하지만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조금의 시간 할애를 못할까요. 머리로는 자신이 가슴 뛰는 걸 알 수 없어요. 몸이 알죠.
부모가 자식을 강압적으로 조종하려 들면, 그 아이는 자기 내면의 또 다른 아이에게 강압적이 된다. 머리가 계획한 사회적 이상치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걸 따라가지 못하면 자신을 혐오한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삶으로 아이를 안내해야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도 그렇다. 자신이 그런 시대와 가족 사이에서 자라왔기에 그 모습이 싫음에도 부모를 닮아간다. 강압적인 환경 밑에서 자라왔다면 노력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머리로 살지 말고 마음을 따라야 한다. 머리와 사회가 원하는 것보다 내 마음이 원하는 걸 해야 과정에서 만족을 느낄 뿐더러 결과도 수월할 수 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과정이 즐거웠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삶 아닐까.
우리 집 뒷집에는 70대 중후반의 부부가 산다. 나는 5살 때 같은 동네 안에서 한 번 이사한 것 빼고는 서른 가까이 쭉 이 집에서 살았다. 그때부터 이웃이었다. 뒷집 부부를 친근함을 실어 늘 존재하는 '뒷집'이라고 부른다. 혹은 뒷집 할머니네. 어릴 때는 어른들의 삶에 자세히 관심이 없었다. 근데 나는 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파악해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 중반이 지나서 세상이 마음대로 안 돼가는 걸 느낄 때쯤 사람과 사회를 알고 싶었나 보다. 뒷집 부부는 여름에는 내방 창문 너머에 조그만 하우스와 텃밭에서 열일을 한다. 뒷집 할아버지는 내가 방 창문으로 몰래 관찰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가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했다. 가령, 자기네 덩치 큰 믹스견을 목줄에 매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