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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부터 과학을 하게 되었을까

온화수 2016. 8. 30. 23:19

인간은 언제부터 과학 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과학이나 기술과 관련된 활동은 아주 오래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과 같은 문명 발상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과학의 역사에 포함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은 근대적 과학과는 거리가 먼 초자연적 요소를 너무 많이 포함하고 있거나,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실용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시초를 정하는 문제는 근대적 과학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정의가 먼저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과학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근대과학과 공통점을 가진 활동이 언제 나타났는가를 대강이라도 결정하기 위해서는 근대과학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활동이 출현한 때를 찾아내야 한다.

 

근대과학은 다른 활동과 구분되는 주목할 만한 속성은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이 현상을 설명하기 이해 합리적 가설과 이론체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과학 활동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철학자 포퍼(karl R.Popper, 1902~1994)는 과학을 지식의 집합체로 보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가설 또는 추측의 체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 활동의 핵심은 과학지식을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의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활동이 오래전에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때를 과학의 시초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관찰한 사실을 바탕으로 가설이나 이론을 만들어 자연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에게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따라서 과학은 기원전 600년경에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밀레토스에는 최초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탈레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여러가지 자연현상을 탐구했고, 수학과 천문학에 능했다. 탈레스의 자연철학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그가 천둥, 번개, 지진 같은 자연현상을 초자연적인 것, 예를 들면 신의 활동이나 의지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해서 설명하려 했고, 추상적 사고를 통해서 자연현상을 해석하려 했다는 점이다.

 

기원전 18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바빌로니아에서는 수학과 천문학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고,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역법, 수학, 의학이 발달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수학에서 자릿수 개념을 도입해 60진법을 사용했고, 이차 방정식과 몇 가지 삼차 방정식을 풀 수 있었다. 또 기하학적 방법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력을 발명했고 1년을 365일로 나눈 달력을 사용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그에 맞추어 시각을 정했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 비록 그러한 주목할 만한 일들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에서 과학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 않는다. 과학 활동을 할 때 사람들은 현상을 관찰하고 사변을 통해 가설이나 이론을 만듦으로써 현상을 설명한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과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집트, 바빌로니아, 중국은 전제군주제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의 아들인 왕이, 바빌로니아에서는 사제왕이 국가의 정점에서 나라를 다스렸고, 각 개인은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된 사회 속 자기의 소속계층에서 주어진 일을 해야만 했다. 반면 밀레토스는 독립된 도시국가였고, 독재자에 의해 통치된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민주제도를 정치체제로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활발하게 토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러한 여건 위에서 그들은 어떤 것이 더 나은 정치체제인가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의 생성과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사변하고 토론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유로운 토론의 분위기가 과학이 출현하는 데 기여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보이지 않는 것을 경시한다. 눈에 보이는 수치만 높으면 숨겨진 실상은 외면한다. 삶에서도 적용해보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을 경시한 채, 눈에 증명되는 겉으로 보이는 겉만 좇는다 치자. 그 삶은 어떨까. 당장 새 물건들에 마음이 흡족할 것이다. 그리고나선 마음이 사그라들고 더 비싼 것을 바랄 것이다. 점점 더 기대치가 높아진다. 더는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갖고 싶은 것은 더더욱 늘어나고, 비싼 차를 타고 있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허하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진정을 좋아해서 있는 건지, 내가 돈이 있어서 붙어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보여지는 나의 직업, 자동차, 집만을 생각하며 좇다보면 삶이 피폐해질 수 있다. 시간과 돈에 지배 당한다. 진정한 부자는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돈과 함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마음을 따라 마음 가는 일을 할 때, 시간과 돈을 지배할 수 있다. 돈이 전부지만, 전부가 아니다. 돈이 전부지만, 내 삶에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인간과 과학> 1장 중 - 과학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정리 및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