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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유/자기계발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박경철

온화수 2012. 5. 30. 22:20

 

나는 현재 남들이 그대로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직업이 광의적으로 접근하면 내 전공과 관련이 있고, 협의적으로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다른 전공 분야이다. 

 

안 그래도 생각이 많은 편인데 요즘 더 생각이 많아지면서 요즘 내가 위안을 얻을 곳은 책 밖에 없다고 느낀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매번 똑같은 얘기만 하는 건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얘기해주는 친구들에게는 고마움을 느끼지만.

 

좀 더 건설적으로 생각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싶다. 그래서 평소 좋아하는 사람들의 책을 찾아서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내가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사소한 규칙적인 식습관을 지킨다던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기를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 무언가에 몰두한다던가 등의 변화말이다.

 

이 책은 공감하는 내용이 많지만 어렵게 다가왔다. 이 책 내용 안에서 저자가 책은 어렵다고 느끼는 걸 읽어 버릇해야한다고 했는데 내용은 그렇다치고 책 내용이 길어서 읽는데 지루해서 혼났다. 저자는 분명 청년들에게 관심이 있고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서 라는 걸 안다. 하지만 조금은 쉽게 책을 써주셨으면 더 많은 청년들이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공감하지만 어려운 책이다.


「우리의 선택은 대부분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가 되기 쉽다. 나그네를 집에 데려와서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리고 길면 잘랐다는 이 끔찍한 이야기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이 상황에 의해 강요될 경우 우리가 처할 수 있는 난관을 상징한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선택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무언가 새로운 길을 탐색할 때 무조건 현재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먼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노력 부족을 감추기 위해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없거나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일이 아닌 다른 일에 도전하겠다는 판단이 선다고 해도 지금 당장 현재를 버리고 그 일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위한 준비를 충실히 한 다음 선택의 상황에 서라고 조언한다.

계주선수가 바통을 주고받을 때, 달리고 있는 선수는 마지막 스퍼트를 하고 전달받을 선수는 미리 달리기 시작해야 한다. 둘의 속도가 절정에 이른 순간 바통이 전해져야 이길 수 있다. 만약 전해주는 선수가 마지막에 주춤하거나 받는 선수가 제자리에 서서 바통을 받으면 경기를 망치게 된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지금 단을 딛고서야 다음 단으로 오를 수 있고, 그 다음 단에 안착해야 또 다음 단을 오를 수 있다. 직업이나 전공을 바꾸고 싶을 때나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모험을 시작할 때, 무조건 현재를 포기하고 다른 일에 뛰어드는 것은 내 인생을 걸고 도박을 벌이는 것과 같다. 다른 곳에 뛰어들고 싶다면 그 일을 지금 일보다 더 잘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때가 비로소 선택의 순간인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위선이다. 시간은 늘 충분하다. 단지 우리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면 잠을 희생하든 놀이를 포기하든 달콤하지만 의미없는 일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서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선택했다면 산을 옮기는 우공의 태도로 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진정한 도전이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취해야 할 <<주역>>의 기본원리는 계사전(繫辭傳)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는 구절에 모두 녹아 있다. 이 아홉 글자의 뜻을 우리말로 풀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영원하다'는 뜻으로, 이 말은 사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선언이기도 하다. 여기서 궁하다는 것은 난관에 부딪혔다는 뜻이다. 우리는 커다란 난관에 부딪히면 대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좌충우돌하거나 상황을 원망하며 자포자기한다. 아마 지금 청소년들의 처지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주역>>은 '막히면 변하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즉, 스스로 변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뜻이다. 바위가 길을 막고 있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굶어죽기를 기다리지 말고 두더지가 되어 굴을 파든지 나비가 되어 날아갈 궁리를 하라는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뚜벅뚜벅 걸어가 꽝 하고 부닥쳐야 한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더라도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말라는 정언명령이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렇게 변하면 결국 통하게 될 것이니, 늘 그렇게 통함으로써 영원하라는 말은 실로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더구나 이런 선언은 학자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늘어놓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신석기시대 모래무지를 만들던 사람들이 체험 속에서 스스로 얻어낸 지혜이며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원리이기에 더욱 놀랍다.

과거 인류가 조개무지를 만들던 시절에, 사람들은 강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으려 했다. 그러나 매끄러운 비늘 때문에 물고기를 자꾸 놓치게 되자, 나뭇가지에 뾰족한 돌을 매달아 창을 만들었고 사람이 더 들어갈 수 없는 깊은 곳에 사는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생선가시로 낚시를 만들었다. 변화한 것이다. 만약 이들이 비늘 때문에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고 상황을 탓하며 그냥 주저 앉아버렸다면 인류의 오늘도 없는 셈이다. 그렇게 인류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늘 변하고 변해왔으며, 그렇게 변함으로써 지금까지 통하며 번성하고 있다.-자기혁명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