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요양소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 본문

책 사유/인문학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

온화수 2014. 12. 29. 03:41

올해 초, 안도현 시인의 간장 게장에 관한 시인 ‘스며드는 것’을 보고 엄청 감탄했어요. 그리곤 바로 팬이 되었죠. 저는 시인의 시선이나, 방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안도현 시인의 시를 검색해보다가 시 작법에 관한 책이 있어서 서점에 달려갔습니다.

 

목차는 색인을 제외하고 26개로 되어 있어요.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2. 재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믿어라
3. 시마詩魔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4.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하라
5.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라
6.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구하라
7.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죽여라    
8.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9.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10.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
11. 체험을 재구성하라
12.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13. 형용사를 멀리 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14. 제목은 시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5.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16.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17. 시 한 편에 이야기 하나를 앉혀라
18.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19.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20.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21. 퇴고를 끊임없이 즐겨라
22.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23.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24. 개념적인 언어를 해체하라
25. 경이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26. 시를 완성했거든 시로부터 떠나라

 

목차만 보시면 무슨 말인지 짐작 안 가는 것도 많을 거에요.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쓸 거지만 사서 보셔야 속이 시원하실 것 같아요. 출판 관계자는 아니지만 책을 사야하지 않겠어요? 시인 연!봉이 200만원 수준도 안 된다는 자료를 본적이 있어요. 굳이 그렇게 따지자면요.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 안도현 시인은 이것보다는 더 버시겠지만... 자꾸.. 삼천포로...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기 전에, 많이 읽어야 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음악 하는 사람의 악기와도 같은 것이죠. 사람들과 만나 술도 많이 마시고, 연애도 많이 해보고, 많이 읽어야 해요. ‘주력은 필력’이라는 걸 믿고 계신대요. 그만큼 세상에 민감해지고 안 보이던 게 보이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연애도 마찬가지구요.

 

 

언제, 어디서든 메모지와 펜을 챙기고 받아쓸 준비를 해야 해요. 잠들기 전에 기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면 적어야 해요. 영감은 받아 적어 두지 않으면 기다려주지 않아요. 그리고 상투적으로 쓰면 아니아니아니 돼요...

 

낙엽은 '떨어진다'는 말로 연결되고, 코스모스는 '한들한들'이라는 의태어를 만나고, 귀뚜라미는 '귀뚤귀뚤'이라는 의성어와 결합하며, 단풍잎은 '빨갛게' 물이 들 것이며, 하늘은 '푸른 물감을 뿌리다'는 문장과 조우하며, 황금들녘은 풍요의 이미지를 데리고 올 것이며, 허수아비는 반드시 '참새'를 불러들이고, 추석은 '보름달'로 귀결될 것이다.

이렇게 한심한 조합으로 시의 틀을 짜려고 한다면 그 순간, 그때부터 당신의 시는 망했다고 보면 된다. -40P

 

위처럼 대상을 피상적으로 인식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독버섯과 같아요. 겉은 멀쩡한데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독을 품고 있어요. 낯설게 보는 게 중요하죠.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가 중요해요. 시인은 경험한 것에 대해 쓰지만, 경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지는 않아요.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말아요. ‘무엇’을 쓰려고 끙끙댈 게 아니라 10분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해야 해요.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고, 예쁘게 꾸미려는 마음을 없애야 좋은 글이 나와요. 이오덕 선생은 생전에 “똥 누듯이 쓰라”고 일갈했대요. 괜히 어깨와 펜 끝에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쓰라는 말이겠죠. 전 왜 이러죠. 똥 싸듯이 쓰되, 힘 빼고 써야 하는데, 변비 걸린 듯 억지로 힘 주니까 그런가봐요...

 

[특별한 의도없이 관념어를 쓰지 말자]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써요.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책을 읽어서 알게 된 것도 넓은 의미에선 경험이긴 해요. 하지만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직접 경험만큼 생생하지는 않아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써요. 쓸 것이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말해요.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아요. 그리고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써요. 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쓰지 말고, 낮은 곳에서 돌아앉아 우는 것에 대해 써요. 시는 작고 하찮은 것을 써야 해요.

 

책에 있는 핵심 내용 5분에 1밖에 얘기 안 했어요. 제겐 정말 유익한 내용이 많아서 여기에 다 쓰고 싶어요. 요약하기엔 욕심이 많아서 못하겠어요. 사실, 이런 책은 어떻게 요약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래에 줄 친 내용 골라서 쓰고 마무리 할게요. 아. 그리고 시 작법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오규원의 시작법’ 읽어봤는데, 다소 제겐 어렵더라구요. 그것보다는 훨씬 쉽고 재밌고 쭉쭉 읽혀요. 시 쓰려는 분들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시선 방법이나, 짧은 글 쓰고 싶으신 분들한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좋았어요.

 


밑줄 긋기

 

타인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이미지는 오히려 연탄보다 ‘촛불’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촛불이 연탄보다 더 시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상투성에 굴복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43P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을 의심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던 것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을 선언하라.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 순간도 미적 인식에 다다를 수 없게 된다. -45P

 

나의 행복과 충족은 남의 불행과 결핍의 증거임을 잊지 말라. 장미와 백합의 우아한 향기에 취하지 말고, 저 들판의 민들레와 제비꽃의 무취에 취하라. 금메달을 건 승리자의 영광보다는 꼴찌로 들어오는 선수의 실패를 경배하라. 성형수술 한 처녀의 얼굴을 경멸하고 주근깨로 뒤덮인 소녀의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익혀라. -57P

 

사랑에 대해서 쓰려면 ‘사랑’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제목으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고 훈수를 할 것이다. -81P

 

오규원은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라고 했다.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9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