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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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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온화수 2015. 2. 12. 22:45

"목표 같은 건 없어도 괜찮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춤일세." 

 

이 책은 리디북스에서 ebook으로 구입했다. 현재 온오프라인 서점들에서 베스트셀러 1위인 책이다. 난 사실 베스트셀러에 집중하지 않는다. 보통 남들이 많이 찾는 건 흥미가 없고 시시하다고 느껴지는 이상한 병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근데 이 책은 왜 샀느냐. 요즘 내 자신에 대해 '너무 고집스럽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고, 머리가 커갈수록 주변 인간 관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이 있다 싶었다. 그런 고민들을 하던 차에 이 책을 보았고, 관련 소개글에 '아들러'라는 이름이 나와서 사게 됐다. 

 

  요즘 심리학 관련 공부를 하고 있어서 '아들러'에 대해 궁금하기도 반갑기도 했다. 또한 호감이 있는 김정운 교수님이 감수를 하셨다니 재밌는 책이겠구나 싶었다. ebook으로 바로 받아서 신나게 읽어내려갔다.




내가 변하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할 용기가 부족하다, 즉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불행한 것이다. -55P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다.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과거에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행동이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고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것이라 말한다.

 

  원인을 통하여 현재가 결정된다는 '원인론'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재 행동한다는 '목적론'이 나온다. 프로이트와 융은 과거의 어떤 영향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이어진다는 '원인론'을, 아들러는 바꾸려고 마음 먹으면 바꿀 수 있다는 '목적론'으로 반박한다.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서 현실을 잘 사는 사람은 과거를 빨리 잊고 눈 앞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 영광스러웠던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지금은 비루하다는 생각에 매달려 사는 것 같다. 이러한 관점들은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지금을 사는 것에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에 아들러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적면공포증에 걸린 여학생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차이는 것을 두려워하듯 자네는 남에게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을 무서워하지. 그런 상황에 휘말리느니 처음부터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걸세. 즉 자네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네 -69P

 

이 부분을 읽고 내 행동의 원인을 조금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과거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트라우마와 환경적 요인에 집중했고. 프로이트가 말한 5세 전후에 기본 성격이 정해진다는 것처럼 어릴적 환경에 의해 성격이나 성향이 정해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물론, 환경이 바뀌면 조금씩 사람은 변해갈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기본 성향은 잘 바뀌지 않을 거라 믿었다.

 

  "내 성향은 이래서 저 분야는 나완 안 맞아"라는 생각과 말을 자주 했다. 물론, 지금도 사람의 기본 성향에 맞춰야 한다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과거 나의 행동, 어른의 행동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멀리서 이성적으로 바라보면 변하지 않은 사람은 나와 내 주변의 특정 어른일 것이다. 일반화를 하고 있었다.

 

한 발 앞으로 내미는 것이 무서운 거지.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예를 들면 놀거나 취미를 즐기는 시간-을 희생해서까지 변하고 싶지 않다. 즉 생활양식을 바꿀 '용기'가 없는 거라네. 다소 불만스럽고 부자유스럽지만 지금 이대로가 더 편한 거지. -84P

 

  이 부분을 읽고 뒤통수를 맞았다. 현재 불만스럽고 나아지고는 싶지만,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져보면 지금이 편한 것이다. 불평을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을 빌려 나아지려 하지 않는 자신을 욕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자존감은 낮아지고 반복되는 것이다.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고, 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는 거기에 개입할 수 없네. 물론 전에도 마했듯이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가는 ' 노력은 할 걸세. 하지만 거기에 물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제지.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165P

 

  나는 상대방의 감정을 빨리 읽는다. 하지만 이게 단점일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표정 하나하나에 내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 생각이 많아지고 행동하기 전에 머뭇거린다. 불편한 사람에게 다가갈 때는 감정과 과제를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철학자: 인생이란 지금 이 찰나를 뱅글뱅글 춤추듯이 사는, 찰나의 연속이라고. 그러다 문득 주위를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왔다니!" 하고 깨닫게 될 걸세. 바이올린이라는 춤을 춘 사람 중에는 그대로 전문연주자가 된 사람이 있을 거야. 사법고시라는 춤을 춘 사람 중에는 그대로 변호사가 된 사람이 있을 테고. 집필이라는 춤을 추고 작가가 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 어쨌든 저마다 다른 장소에 다다를 거야. 단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의 삶도 '길 위'에서 끝났다고 볼 수는 없어.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청년: 지금을 즐기면 그걸로 충분하다?

 

철학자" 그래. 춤을 출 때는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춤을 추면서 어디론가 가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지. 그래도 춤춘 결과 어딘가에 도달은 하겠지. 춤추는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다. -263~264P

등산의 목적이 '정상에 오르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키네시스적 행위라고 할 수 있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헬리콥터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가 5분가량 머무르고 다시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와도 상관없지. 물론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경우 그 등산은 실패고. 하지만 목적이 산 정상이 아니라 등산하는 그 자체라면 에네르게이아적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산 정상에 올랐는지는 관계없다네. -266~267P

 

어느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그 목표의 성취만을 위해 현재를 유보하고 달려나간다는 건 도박과도 같다. 물론, 그것이 현재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그것 또한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만, 찰나가 괴로운 사람들.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현실 때문에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겐 배부린 소리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야속한 사람이 '아들러'다. 내가 어떤 위치에 올라가지 않아도 평소에 하고 있는, 내 시간을 대부분 할애하는 어떤 것에 집중하는 행위. 지금에 만족하는 행위. 그 행위로 인해 뭔가를 이루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 멀리있는 것보다 자신만의 행위를 찾고 지켜내는 것. 항상 지금이 완결인 인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