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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죽음> - 차윤정 본문

책 사유/과학

<나무의 죽음> - 차윤정

온화수 2013. 3. 7. 14:05

-죽어간다는 표현은 바뀌어야 한다


오래된 깊은 숲에는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생물종이 존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오래된 숲은 생태학적으로 400년에서 500년 정도 된 숲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부정적인 간섭 때문에 우리는 오래된 숲에 익숙하지 않다. 인간들은 윤택한 삶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멀쩡한 숲을 파헤친다. 수백 년을 사는 나무는 그리 흔하지 않고 오래된 숲을 이루는 나무는 거의 정해져 있다. 봄의 정취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산벚나무, 산사나무, 물박달나무, 팥배나무 등과 같이 햇빛을 좋아하는 나무들은 숲이 오래되어 그늘이 지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숲의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숲을 이루는 나무의 종류나 구조가 점차 단순해지고 기후나 지형 조건에 따라 비슷해진다. 오래된 숲은 평균 수령을 넘긴 늙은 나무들이 많다.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늙은 나무들이 있다 해도 어린나무의 수가 많다면 오래된 숲이 아니다. 오래된 숲은 죽어가는 나무의 비율이 높고 숲의 성장이 매우 느려 변화가 없는 숲이다. 오래된 숲에는 죽은 나무, 썩은 가지들, 두터운 낙엽들은 오랜 기간 숲 바닥의 지형과 기후를 변화시킨다. 오래된 숲이란 성장의 끝점과 소멸의 시작점이 서로 만나는 지점의 숲이다.




나무는 일생 동안 온갖 생명체의 공격으로 성할 날이 없다. 잎, 줄기, 눈, 꽃, 열매, 심지어 뿌리까지도 무수한 동물의 표적이 된다. 나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시련을 극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장기의 활력 높은 나무는 상처가 나더라도 곧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보상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무와 적들 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나무가 극복하지 못한 상처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멀쩡하게 살아 있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극적으로 죽는 일은 없다. 나무의 죽음은 급작스럽거나 극적이지 않다. 위로는 바람에 부러진 가지로부터, 멥시벌이 산란한 줄기 허리로부터, 수액에 달라붙은 곰팡이에 의해, 그리고 아래로는 곰이 발톱으로 할퀸 상처에 의해 큰 나무는 숲의 작은 생물들에게 자신을 내주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무의 상처는 치유의 한계를 넘어 더 이상 아물지 않겠지만 대신에 숲을 키울 것이다.


나무는 이제 죽어가는 나무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죽어간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어차피 나무의 상당 부분은 이미 죽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부터 나무의 몸속에 살아 움직이는 세포가 들어찬다. 단지 5퍼센트의 살아 있는 세포로 구성되었던 나무가 살아 있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생명들로 다시 채워지는 것, 죽어간다는 표현은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 나무는 쓰러진 뒤에도 숲을 활발하게 유지 시킨다.


 

-숲은 역동적인 생태 드라마다


나무는 끝까지 희생을 멈추지 않는다. 죽어서도 지상 높은 곳에 둥지를 트는 새나 곤충들에게 좋은 주택을 제공하기도 하고, 목질을 먹이로 삼는 다양한 생물들에게 양분 저장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동물들의 양식이 될 뿐 아니라 보유한 양분을 숲으로 흘려보냄으로써 나무는 숲의 전체적인 양분 상태를 개선한다. 나무는 오랫동안 죽은 채로 지낸다. 한겨울에는 죽은 나무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봄이 오면 살아 있는 나무는 생장을 더해가지만 죽은 나무는 더욱 초라해진다. 시간은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더욱 명확히 갈라놓는다.


수피는 나무가 완전히 죽고 난 후에도 한동안 그대로 유지된다. 나무가 속으로 와해되어가는 동안에도 수피는 아무런 내색 없이 나무의 외형을 유지시킨다. 그러나 아무리 완강한 수피라도 언젠가 나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인을 잃은 호위무사는 이제 주인의 모든 것을 정리해주는 늙은 집사가 된다. 늙은 집사는 주인의 모든 것이 드러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주인의 명예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수피가 떨어져나가기 전까지는 비록 죽은 나무라 해도 함부로 침입할 수 없다. 딱딱함도 장애고 두꺼움도 장애다. 설상가상으로 겨우 구멍을 뚫었다 할지라도 수피 조각이 떨어져버리면 같이 떨어진다. 자칫 비라도 오면 수피 속으로 스며들어 구멍은 부풀어 오르고 막힌다. 소나무나 굴참나무 같은 나무는 수피가 두꺼워 그 자체로 훌륭한 거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무의 경우 수피는 침략자들에게 쉽게 정복되고 마는 존재이다.


죽은 나무는 군류와 미생물에 의해 끊임없는 분해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때 죽은 나무로부터 방출된 분해열과 이산화탄소는 난기류 대에 상당 시간 잡힌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숲에서 보다 죽은 남에 붙은 이끼 층에는 10배가 넘는다. 풍부한 이산화탄소는 이끼의 중요한 자원이다. 붙잡힌 열과 습기와 이산화탄소는 이끼 층에 고스란히 이용된다. 그러나 이끼의 포자는 이미 다른 이끼 성체가 있는 곳에서는 발아를 하지 않는다. 이끼의 포자가 바람을 타고 이동을 할 수 있으려면 포자의 높이가 난기류대보다 높아야 하기 때문에 이끼의 포자 대는 항상 이끼의 전체적인 높이보다 훨씬 높이 자란다. 숲에서 나무에 이끼가 자라는 것은 단순히 풍경이 아닌 역동적인 생태 드라마이다.


 

-물 위를 떠가는 아름다운 단풍은 단순한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비버는 숲에서 새로운 지형을 창조해 역동적인 수생태계를 만들어낸다. 비버는 여러 해 동안 버드나무나 사시나무를 잘라 댐을 만들고 주변에 1~3ha의 땅이 물에 잠기게 만든다. 특히 10센티미터 이상 되는 비교적 큰 나무들을 잘라내므로 숲에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때 숲에는 빈 공간이 생겨 낙엽활엽수와 같은 양수 성 나무들이 지속적으로 자라나게 된다. 임업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비버가 반갑지 않겠지만 상당한 역할을 수행해낸다. 비버가 만든 댐에 의해 새로운 습지나 연못, 서식지, 어류 산란지, 침전지 등의 지형이 만들어진다. 단조로운 숲의 한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생태계가 비버라는 동물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놀랍다. 이 위대한 환경의 재창조자가 모피로 사랑받게 되면서 그 수가 급속히 줄고 있다. 비버가 만들어 놓은 댐은 무너져 내리고 저습지는 메워져 초원에서 관목지로 변했다. 하천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수로가 좁게 파이고 직선으로 변했다 비옥한 범람지를 따라 형성되었던 낙엽수림대도 사라지고 있다.


물속의 나무줄기에는 다양한 무척추동물들이 모여 있다. 자원 역할을 하는 죽은 나무가 생기면 부패를 담당하는 생물들이 모여들고 풍부한 영양분으로 인해 특히 무척추동물의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는 다양한 어류의 발생을 이끌어 결국 생물 서식지의 섬으로 작용한다. 때로 물고기는 물속으로 떨어진 가지의 잎이나 목질 표면에 붙은 미생물이 좋은 먹이 자원이 되기도 한다. 또한, 굵은 나무줄기는 물을 가두어 깊은 웅덩이를 만들고 포식자를 피해 숨을 수 있는 은신처도 만들어 준다. 


양서파충류는 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물들이다. 나무로 인해 생긴 웅덩이에 봄마다 개구리나 도롱뇽이 알을 낳는다. 개구리는 물살이 느리고 고여 있는 곳에 산란을 하는데 물풀이 주위를 막고 있거나 나뭇가지가 댐을 이루고 있는 곳이 가장 적합하다.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은 나뭇가지에 붙은 찌꺼기나 조류를 뜯어 먹고 자란다. 도롱뇽은 물에 잠긴 나무에 달린 가지로 알을 보호한다. 물속으로 떨어진 나무는 그 작은 가지들이 만들어내는 복잡성으로 인해 물속의 서식지 다양성을 높인다. 


목마른 새들은 직접 물속에 발을 담그지 않고 가느다란 가지를 짚고 서서 목을 축인다. 가끔 나뭇가지 댐에 열매들이 갇히면 이곳은 새들의 외식 장소가 된다. 가재는 완벽한 나뭇잎 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장점을 활용해 아주 쉽게 자신이 좋아하는 옆새우를 사냥할 수가 있다. 또한 물속은 유충들의 천국인데, 물속의 돌에 핀 이끼를 뜯어 먹고 살아간다. 이런 곤충의 유충들은 물고기나 다른 육식성 유충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잠자리는 반드시 물과 관련된 장소에 산란을 하고 대부분의 유충들은 물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성충이 되기 위해 애벌레는 물가의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 우아한 날개를 펼쳐 보인다. 잠자리 유충들은 대부분 물속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포식자들이다. 성충 시기가 되면 물 밖으로 대부분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이때 물 위로 솟아 있는 나무는 곤충이 물 밖으로 탈출하는 통로가 된다. 나무가 없는 계곡은 상상할 수 없다. 물 위를 떠가는 아름다운 단풍은 단순한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계곡을 가로 지르는 쓰러진 나무는 육지 동물을 위한 다리가 아니다. 죽은 나무로 인해 탄생되는 생물 섬은 물속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결국 그것은 환경이자 자원이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흙으로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는 축복 받은 나무가 아니다. 나무는 죽어 다양한 생물들에게 자신을 내어줄 때 더욱 행복할 것이다. 주목이 사는 고지대는 건조하고 추워서 자신을 쪼개 흙으로 돌려보낼 조력자들이 부족하다. 나무는 그저 세월에 풍화되어 하얀 백골로 버틸 뿐이다. 사막은 몹시 건조해 미생물의 활동이 또한 미약하다. 사막에 건초 더미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은 바로 이들을 붙잡을 물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죽은 나무는 그저 바람에 풍화되어 먼지로 날려갈 뿐이다.


사막의 모래도 흙이고 해안가의 모래도 흙이다. 단지 이들 흙에는 양분을 제공하는 유기물이 적어 생명력이 약할 뿐이다. 흙이 만들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가장 간단한 흙의 생성 과정은 지면으로 노출된 암석이 기후적 요인에 의해 풍화되어 무기 입자를 이루고 그 위에 생물 사체가 쌓여 썩으면서 유기입자가 무기입자와 섞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자연계에서 그 과정은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숲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엽이나 작지는 매년 쌓여 유기물 층을 형성한다. 낙엽은 서서히 쪼개지고 쪼개져 흙의 일부로 돌아간다. 낙엽의 쪼개진 정도에 따라 유기물 층은 낙엽 층, 발효 층, 부식층으로 나뉜다. 아주 미세한 조각으로 쪼개진 부식층은 비로소 진정한 흙 입자와 섞이면서 가장 기름진 표토를 만들어낸다. 유기물 층의 진행 정도만으로 우리는 숲의 분해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숲의 풍부한 유기물과 토양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인 입단의 생성은 숲의 토양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의 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숲의 흙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이고 분해자들이 이룬 업적의 하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많은 생물들이 땅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땅은 숲의 모든 유기물이 궁극적으로 모이는 곳이다. 죽은 나무 조각, 짐승의 사체, 숲에서 살다 간 모든 생명은 결국 땅으로 떨어지고 이들은 연쇄적으로 다른 생물들에게 먹잇감이 된다. 풍부한 생물 사체는 땅 위 생물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이들의 활동이 활발할수록 생태계로 되돌려지는 물질의 순환이 활발하다. 생태계에서는 어떤 종도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


우리에게 나무는 웅장한 줄기와 생물이 살아 있는 생명으로만 기억된다. 나무는 죽는 순간부터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숲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죽은 나무는 절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 희생을 이어 나간다. 나무와 숲, 생태계의 삶이 인간과 상당히 닮아 있고, 배울 점이 매우 많다. 숲은 작은 것 하나도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