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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고전하는 너에게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본문

책 사유/인문학

고전에 고전하는 너에게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온화수 2016. 7. 21. 14:27


나도 책을 좋아라하지만, 고전은 여전히 몰입하기 어렵다. 시대와 배경이 달라서 몰입이 잘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통과하는 진실이 있기에 살아남았겠지. 그래서 어려워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거고.


미국에 세인트존스라는 대학이 있다. 고전을 스스로 읽고 토론하는 형식의 인문학 학교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문과 성향의 학교는 아니다. 인문학 안에는 수학, 과학도 존재하니까.



1. 가르치지 않는다.


그날 수업에 읽어 와야 하는 책을 읽고 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하지만 그 책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플라톤의 <국가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처럼 난이도가 초월한다.


교수는 없지만 튜터가 있다. 다른 대학에서는 교수지만, 세인트존스로 오면 튜터가 된다. 역할이 달라진다. 학생과 함께 공부한다. 자신의 지식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게 아니다. 어떤 주제나 책에 대해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고민을 해온 '선배'의 느낌으로 함께 의견을 공유한다. 좋은 토론을 이끌어내는 역할이다.



2. 스스로 한다.


강의 수업의 경우 수업 준비를 하는 사람은 교수다. 학생들이 예습을 해오면 좋겠지만 필수가 아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준비해온 강의를 듣고 나서야 공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토론 수업의 경우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이다. 학생이 스스로 준비해오지 않으면 토론은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토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에게는 토론 주제에 대한 공부, 예습이 필수다.



3.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똑똑해야만 뉴턴, 아인슈타인, 칸트, 헤겔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려운 고전을 읽고 배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똑똑함이 아니다. 똑똑하지 않아야 배움이 시작된다. 똑똑하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왜지?"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그 질문을 통해 스스로 '진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애국가를 읽고 "'영원히 우리나라 만세'라는 뜻이구나"하고 받아들이며 넘어갔다. 그리고는 내가 읽은 구절을 '이해했다'고, '생각해봤다'고 믿었다. 이 정도에 그치면 토론을 할 수가 없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하는 게 낫다. 모른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으니 알기 위한 시도는 할 테니까. 하지만 '이해했고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거기서 배움은 멈춰버린다.



4. 질문한다.


질문은 배움을 가져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읽었다고 가정해보자.


A: 그래. 우리나라 만만세!

B: 왜 한라산이 아니라 백두산일까?

C: 하느님? 나는 불교인데, 부처님은 안 되나?

D: 왜 '우리'나라일까?

E: 아~ 하나도 이해가 안 돼.


똑똑한 A는 애국가 첫 구절을 이해하고 동의한다. B는 산에 대한 질문을 함으로써 분단되기 전 한국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 C는 신에 대해 고찰해보면서 한국의 종교에 관해 배울 수 있다. D는 '우리'와 '나'의 개념에 대해 고민해보며 한국의 민족주의적 성향에 대해 배울 수 있다. E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생각을 포기한다.


A, B, C, D, E  다섯 명의 학생들 중 배움을 얻은 학생은 B, C, D이다. 그저 질문을 하나 던졌을 뿐인데 배움을 얻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반면 A는 애국가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헛똑똑이다. E는 생각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어떤 사실을 단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질문을 전지기 시작하면 다양한 '진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진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사물, 현상,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과 의견을 바르게 확립할 수 있다.



생각


어떻게 해야 고전에 고전하지 않을 수 있을까?란 질문을 하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고전도 고전이지만, 한국에서 책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보면 통용되는 질문이다. 


어떻게 해야 책에 몰입할 수 있을까?


문학마저도 시험을 위해 존재해왔다. 그래서 강요 당했다. 구절을 생각하기보다는 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수업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하는 법을 모른다.


한국은 모든 것에 등수를 매긴다. 모른다는 것을 내비치는 건 스스로 먹잇감이 되는 것과 같다. 질문을 해도 시험 문제와 관련된 질문만이 다수를 위한 교육이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면, 고전에 관심 없는 게 자연스럽다. 생각하지 않고 문제집을 달달 외우는 것. 뉴스를 보고 고민해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어른들의 말을 그저 따르는 것. 생각 없이 무리에 휩쓸리는 것. 잠자코 있는 것. 그것이 효도이다.


고전에 몰입하는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책을 정복해서 어떤 성과를 내야겠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천천히 문장을 읽고 내 삶에 비추어 견주어보고 생각하는 거.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생각하는 거라고 여기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