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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유/인문학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지음

어디서 살 것인가 - 6점
유현준 지음/을유문화사

흥미로운 책이었다. 건축에 대해서 1도 모르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하나 추가되었다. 건축이라는 시선. 공간이라는 시선. 가장 가까운 곳이 마음이라면 그 다음으로는 주거지가 아닐까. 먹고 자는데 사용하는 공간. 공간과 환경을 아는 것. 안다기 보다는 새롭게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것. 그렇게 자기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것. 그렇게 그렇게 각자의 예술로 공간이 승화하는 것.


도시 발생에 관한 기존의 정설은 수렵 채집의 시기가 지나고 농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한곳에 머물러 살게 되어 도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의 발견으로 이 순서가 뒤바뀌게 되었다. 괴베클리 테페는 농업혁명이 시작된 시점보다 수천년 먼저 지어졌다. 이 건축물을 지으려면 60~70명의 사람이 6개월에서 1년 동안 매달려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건축물을 지으면서 한곳에서 생활하려면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원시적인 형태의 농업이 시작됐다는 가설이다. 농업으로 건축이 시작된 게 아니라, 건축을 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으로 시각이 바뀌었다. 즉 인간이 사후세계를 믿기 시작하자 의식을 치르기 위해 괴베클리 테페 같은 신전을 건축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종교적 신화를 공통으로 믿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설명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SNS는 '아랍의 봄' 때 그랬듯이 사람을 선동하고 기존의 체제를 전복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가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책의 결론에서 결국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류하는 전통적인 방법밖에 없다고 이야기 한다.

소통의 단절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도시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과거 그리스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의견을 나누던 아고라와 원형극장이라는 건축양식을 만들어서 창의적인 사회의 꽃을 피웠다. 시장 바닥 같던 아고라가 없었다면 고대 그리스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 다양한 생각이 만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21세기형 아고라와 원형극장'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 학교에서 '짱'을 먹는 아이들은 축구를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교에 축구하는 운동장과 공부하는 교실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을 못하는 아이들은 12년 동안 지옥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여러분의 자녀가 축구도 못하고 공부도 못한다면, 그 아이가 학교에 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해야 한다. 그들은 정말 힘든 시기를 참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평등을 획일화를 통해 이루려 한다. 평등은 다양성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만약에 내가 5천 원짜리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데 당신이 만 원짜리 수제 햄버거를 먹는다면 나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우리 둘 다 똑같은 크기와 종류의 음식을 먹는데 가격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만 원짜리 수제 햄버거를 먹을 때 내가 5천 원짜리 쫄면을 먹는다면, 나는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각기 다른 두 종류의 음식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성은 행복의 가능성을 높인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학교 건물에서 공부한다고 평등한 세상은 아니다. 그런 세상은 북한 같은 전체주의 세상이다.


...중정형 사옥이 누구에게느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직원들이 퇴근하는 시간이 늘 사내 다른 직원들에게 노출된다는 단점도 있다. 간부가 더 높은 층에 있으면 부하 직원들의 많은 부분을 감시할 수 있게 되어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위계질서가 분명한 회사에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사옥 유형이다.


사실 우리가 창조라고 하는 것들은 어차피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닌, 자연에 있는 물질의 재구성일 뿐이다.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행위다. 그러니 내가 다 쓰고 나면 후손들이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업사이클링도 잠시 빌려 쓰는 행위다. 현재 지구상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인간 개체 수가 있고 모두가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어느 때보다 나누어 쓰고 다시 쓰는 업사이클링이 필요한 때다. 우리 시대에 태어난 건축물은 다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진화의 몸부림을 치게 될지 궁금하다.


이처럼 건축에는 사회적, 지리적, 경제적, 구조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것은 중력을 이겨야 하고, 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며, 많은 사람이 사용해야 하는 건축물이 갖는 숙명 같은 것이다. 어떤 건축가는 이런 제약에 대해 불평하기만 하는 반면, 창의적인 건축가는 이런 제약을 이전에 없던 새롭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승화시킨다. 우리나라 도시들도 판에 박힌 건축물이 아닌 이런 창의적 디자인이 넘쳐나는 곳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약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제약은 새로움의 어머니다.


위치에너지는 '질량 x 9.8(중력가속도) x 높이'다. 고인돌을 예로 들어 보자. 고인돌은 10톤 정도 되는 커다란 바위가 3미터가량 높이에 올려져 있는 형태다. 이 경우 위치에너지는 10 톤 x 9.8 x 3미터 = 294,000이 된다. 고인돌이 이만큼의 위치에너지를 가지는 것은 백 명 넘는 사람이 수개월 동안 노동, 즉 운동에너지를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건축물은 누군가가 돈이나 권력을 써서 운동에너지인 노동력을 만들고, 이 운동에너지가 '위치에너지로 바뀐 결정체'다. 만약에 우리가 어느 건축물의 위치에너지를 구할 수 있다면 그와 동가인 운동에너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운동에너지를 비교하면 누구의 권력이 더 큰지 알 수 있다.


물론 보일러가 우리나라의 경제를 근대화시켰다고 말하면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은 웃기는 소리 한다고 할 것이다. 맞다. 근대화는 여러가지 방향에서 온다. 하지만 보일러같이 새로이 발명된 물건이 기폭제가 되거나 영향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인류의 발전과 진화에서 물건의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인간은 사물과의 동맹을 통해서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보는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이 학자들의 생각은 예를 들어 사무라이가 권력을 가지고 주변을 정복하는 것은 사무라이라는 인간이 날이 잘 드는 칼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말을 잘 다루어서라는 것이다. 인간이 말과 칼과 동맹을 맺어서 사무라이가 되고, 그 사무라이는 농사만 짓는 다른 사람들보다 권력을 더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식의 생각이다. 지금 필자는 컴퓨터로 글을 쓴다. 만약에 원고지에 만년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지우면서 글을 썼다면 필자같이 성질 급한 사람은 아마도 책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보일러는 근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맹을 맺은 기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