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나 그렇듯, 내 삶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불교에서는 이를 ‘업보(karma)’라고 부른다. 업보는 단순히 전생이나 과거의 행위가 지금의 내 운명을 결정한다는 운명론이 아니다. 오히려 매 순간 내가 짓는 생각, 말, 행동이 나와 내 주변, 그리고 내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깊은 인과의 법칙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상처, 부모에게서 받은 감정, 반복되는 행동 패턴들 역시 내 안에 남아 있다.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고통, 반복되는 실수, 관계에서의 어려움이 모두 이 보이지 않는 유산의 일부일 수 있다.
이런 내 업보, 이 심리적 유산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는가? 아닐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능성은 있다. 불교는 업보를 ‘책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업보는 내가 지었으니, 내가 풀어야 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실천이 내 미래를 바꾼다. 심리학 역시 내가 내 삶의 주체로서, 내 안의 상처와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책임질 때, 비로소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이해’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 안의 감정과 상처, 반복되는 행동의 원인을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 치유의 출발점이다. 자기 이해는 자기 연민이자, 자기 수용의 힘이다. 내가 왜 아플 수밖에 없었는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지, 그 모든 이유를 솔직하게 마주하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바탕으로, 내 삶의 주인으로서 책임지고 변화를 선택하는 힘.
나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받은 보이지 않는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짐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나는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대로, 내 업보를 인식하고, 내 삶의 권리를 인정하며, 내가 지금 여기서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한다면, 그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책임지고 살아가려는 태도다. 내가 바뀌면, 내 자녀와 내 주변 사람, 나아가 내가 속한 세상도 조금씩 달라진다. 업보도, 트라우마도, 결국 내가 그 고리를 끊어야만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자기 이해가 치유의 시작이다.”
이 한 문장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작은 등불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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