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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국악에 눈을 뜨게 한 김용우의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창부타령)>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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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국악에 눈을 뜨게 한 김용우의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창부타령)>

온화수 2015. 12. 8. 09:07

나는 국악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지금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우리나라 전통 예술에 대해 관심이 커지기는 했다. KBS1에서 하는 국악한마당 같은 프로그램은 5분도 볼 수가 없었다. 국악 자체가 따분하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KBS 특유의 따분한 사운드가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다른 채널에 비해 음량의 느낌이 좀 그렇다. 그게 특색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유튜브로 김용우라는 젊은(?) 국악인이 부른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를 보게 되었다. 어떤 연유로 보게 되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보통의 젊은 사람들보다는 내가 조금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우연 아닌 우연으로 보았겠지 싶다.


따분한 국악이지만 좋은 기억은 있었다. 어릴 때, 지금과는 달리 명절이 되면 친척집들을 왕래할 때였다. 좁은 방에 차례상이 놓여있었고,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는 항상 방안에 국악 프로그램을 틀어놓으시곤 했다. 태평소가 울려 퍼지고 뱃노래와 같은 민요를 떼창하는 아낙네들의 음성이 명절 분위기를 복돋았다. 


그 음성은 대부분 집중해 듣지 않았지만, 어색함과 반가움 사이를 메우는 역할을 했다. 그런 아득한 기억이 있다.  


김용우의 무대를 재생하자,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무렵일 때라 그런지 몰라도, 읊조리는 듯한 창법과 시조와 같은 가사에 맘이 빼앗겨버렸다. 직접 눈 앞에서 본 공연이 아님에도, 울컥울컥하는 게 있었다. 뭔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선비의 기품 있는 표현이랄까. 매화 같은 고결한 한탄! 나는 김용우라는 국악인 때문에 국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갔다. 지루한 게 아니라, 내가 잘 알지 못해서 울림을 못 느꼈구나,라고.


불혹이 넘으신 것 같은데 젊은 국악인으로 불리시다니 슬픈 일이다. 소리꾼 얼마나 멋진가. 나 같으면 하고 싶을 텐데. 내가 별나다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이 좋은 걸 사람들은 왜 모르나 싶다. 모든 선택에 있어 다양성이 줄어가는 것 같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걸 하고도 싶다. 글 쓰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글 쓰는 과정은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다. 결과물도 감동스러울지 미지수다. 설사, 글 쓰는 과정을 영화로 꾸며서 보여준들, 키보드를 두드리고 괴로워하는 모습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무대 위에서 몰입해 표출하는 분들이 부럽기도 하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김용우의 무대는 환상이었다. 이제 그의 감정에 침잠해보자.



1분 5초부터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는데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