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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감정의 수요는 어떻게 소비해야 하나요

온화수 2016. 8. 30. 21:54

 

감정의 수요는 어떻게 소비해야 하나요. 내 안에 너무나도 가득차서 이성적 행동을 할 수가 없어요. 내 뇌의 계획으로는 할 것들이 산재해 있는데, 마음이 나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서 그저 눈을 감고 싶어요. 아. 나는 왜 이럴까. 왜 이것 밖에 안 되는 인간일까. 나는 너무나도 잘 살고 싶은데. 나는 도덕적 인간이고 싶은데. 실상은 그러질 못하니. 자신에 대한 실망감만 자라나요. 저만 그런 걸까요. 아니면 저에 대한 이상이 높은 걸까요. 이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려 했는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적고 있어요. 친구도 만나지 않고, 가족에게도, 그 누구와도 분리되어서 버티고 있었어요. 삶은 외로운 거니까. 내 외로움을 누군가에게 덜어낸다는 건 꽤 비루한 일이니까. 멋 없으니까. 별로니까. 영화 Her를 보면서 기계와 대화한다는 거에 공감을 하기 시작했어요.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다들 외로운 거 같아요. 더구나 한국은 감정을 티내지 말라고 하니까. 그 감정들이 쌓여서 자기보다 가깝고 옆인 약자에게 전가되는 것 같아요. 왜 외롭다, 슬프다, 아프다,라고 말하면 안 되나요. 감정마저도 꾸며서 잘 사는 것처럼 보여져야 하는 걸까요. 혹은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아니면 스님이나 철학자들 말처럼 미래는 오지 않았고 삶은 순간이니 순간이 곧 전체의 삶이다. 그러니 비애의 감정보다는 만족하는 웃음을 지어라. 뭐. 이런 건가요. 슬픔이 없으면 기쁨이 있나요. 슬프면 슬프다, 기쁘면 기쁘다,라고 해야지. 왜 슬픔 앞에서도 긍정적이려 하나요. 슬픔을 마음껏 느끼고 다만 기쁨이 왔을 때는 웃어야 하는 거겠죠. 반대로 생각해보면 행복할 때 웃고, 슬픔 앞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마음이 정상인 건가요. 어차피 지나간다. 지나가는 거 알아요. 그러니 그 순간의 솔직한 감정을 고유하게 느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왜 긍정이라는 단어로 감정을 회피하려 하는지 그게 오히려 어른이 아닌 거 같아요. 저는 외로워요. 이성적 감정, 사람들과의 관계, 과거에 지금보다 훨씬 나았으니까요. 그때는 저로서 살지 못했지만 외롭지 않았고, 지금은 저로서 살아가는데 꽤 외로워요. 낯선 이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