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여자일 텐데

어젯밤부터 오늘 낮까지도 비가 멈추질 않네. 비가 와서 이틀 하고도 반 가까이 달리질 못했어. 어젯밤엔 비가 와도 그냥 뛰려고 했더니 엄마가 말리는 거야. 비 오는 날 이상한 사람 많다고. "이 동네 외국인 많잖니. 외국인 욕하는 게 아니라, 사장들이 돈도 제대로 안 주고 실컷 부려 먹기나 하잖아. 더구나 비도 오고 그러면 충동적인 마음에 한국인한테 해코지할지도 모르잖니. 더구나 밤이고."

그래. 여자 말 안 들어서 나쁠 게 있나 싶어 굳이 나서지 않았지.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새벽에 비는 잠잠해졌고, 아침 되니 다시 내리더라. '이따 저녁에 뛰어야겠다.' 생각을 바꿨지. 18시 지나니 비는 약해졌고 가랑비 수준이길래, 그냥 나서기로 했어. 

이틀 반 가까이 못 뛴 한을 보상받으려는 듯 평소보다 2배 더 뛰었지. 6킬로 정도. 뒷동네, 옆동네, 옆옆동네까지 뛰었어. 안 가던 코스로도 가보고. 꼬마 때 친구 동네 가서 축구하던 때가 생각나서 그 길로 가보았어. 어릴 땐 그 빌라 골목이 엄청 넓었는데, 지금 보니 어른 5명 지나갈 정도밖에 안 되더라. 당시엔 골목이라기보다는 공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우태란 친구는 지금 무얼 할까 떠올려보기도 했고. 의정부에서 사회복지사 한다고 몇 년 전에 들은 것 같은데.

4킬로 정도 뛰었을 때인가. 가랑비가 폭우로 바뀌는 거야. 바람막이가 방수인데도 집에 도착할 때쯤 축 늘어진 허수아비 같았어. 숨 고르고 스트레칭하고 현관문 앞에서 빗물을 조금은 털어내고. 바로 욕실로 직행했지. 세탁기를 열어 내 젖은 옷들을 넣으려 하는데 안에 옷들이 있더라.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는데 불쾌하지 않은 미약한 식초 냄새였어.

나는 헷갈렸지. 하얀 양말을 보았어. 색이 하얀 거야. '아! 세탁기에 오래 있어서 조금 냄새가 날 뿐 빤 거구나.' 안에 있던 것들은 꺼내 욕실 밖으로 던져놓았어. 빨래통을 보니 가족들의 빨래가 보여서 내 젖은 옷과 함께 넣기 시작했어. 근데 엄마와 아버지의 팬티를 집는데 순간 어떻게 집어야 하나 망설여지는 거야. 그때 생각했어. 엄마는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이지만 타인의 분비물이 뭍은 걸 손으로 집는구나. 우리는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분비만 했구나,라고. 엄마도 여자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