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요양소
같은 관심거릴 가진 친구는 정말 소중하다 본문
어제는 한 친구와 대낮에 술을 마셨다. 그 애는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문학과 술을 동시에 좋아하는 친구다. 나는 대학 진학을 문창과나 국문과로 간 게 아니라서 문학 얘기할 친구들이 거의 없다. 보통 책 얘기하면 지루해하기도 하고 관심이 적다. 누군가 나와 같은 취미로 공감을 하고 얘기를 나누면 그것만으로 행복할텐데. 그걸 해소하려 페이스북에 책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해왔는데, 혼자 떠든다. 내가 흥미롭게 글을 못 쓰기도 하지만. 어떤 친구는 내게 그랬다. 자기는 페이스북에 '더 보기' 뜨면 더 이상 읽지 않는다고.
그래서 유일하게 문학과 술을 좋아하는 친구는 매우매우 소중하다. 내게 살아갈 이유를 갖게 한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니까. 윤동주에 대해 얘기하고, 이성복에게 취하고, 신경숙 같은 술잔을 삼킨다. 그 친구가 그랬다. 우리처럼 백주에 술 먹으며 이런 얘기하는 거 보면 또라이로 본다고. 그런가? 우리의 대화가 평범하진 않다. 근데 그게 서로 좋으니까 친구 아닌가.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 외면하는 가치를 우리는 추구한다는 사명감이 있으니까 말이다.
삶을 얘기하고 사람을 얘기한다. 있어보이는 것 보다 없어보이는 것에 끌리고, 둘보다 혼자인 것에 마음이 머문다. 그러니 친구도 고아인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는 직업을 가진 거겠지. 마음이 명품인 친구다.
내가 책을 읽는 건 타인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서다. 지적 허영도 다소 있긴 하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가장 주된 뜻은 가만히 있으면 생각은 굳어지기 마련이고, 그걸 항상 깨트리는 자극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던 입장도 글을 통해 각자의 사정이 있고 몰랐던 부분을 알게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정말. 정말. 소중하고 위대하다.
어떤 연대기
-유희경
우리는 어떤 연대기를 생각하고 그 위로 밤이 내
린다 한 사내가 그 밤을 다 맞으며 걸어간다 그의
등에선 해묵은 종이의 냄새가 난다 그는 한 집 앞
에 서서 손잡이를 돌려 당긴다 그는 어깨를 털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뿐이다 그가 없는 거리는 텅 빈
다 그가 걸어온 흔적이 지워진다 없으므로 이따금
죽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잠시 고요하다
이 연대기에는 가구의 흔적이 있다 우리는 잠시
일어났다가 앉는다 하얗게 변한 길이 무겁기 때문
이다 무거운 것을 볼 때면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하
듯, 어지러운 까닭이다
하나둘 불이 켜지는 시간이 되면 창문에 그려진
사내의 삶은 숨겨둔 술을 꺼낸다 그에게는 손을 떠
는 습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 이 연대기를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슬픔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낡아가는 집 같아서 사내는 붉어진 얼굴을
견디고 젖은 어둠이 흘러들어온다 어둠이 곧 촛불
을 끌 것이다 한숨에도 흔들리는 사람이란 그런 것
이다 그는 잠들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연대기
의 한 장을 찢어내야 한다 밤은 언제나 찾아오므로
그가 꾼 꿈을 들춰볼 자격이 우리에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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