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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무음이고 싶지만 소음이고도 싶다

온화수 2015. 10. 23. 15:01

01

세상에 많은 부채를 진 나는 모든 소리를 무음으로 해놓는다. 어쩌다 새로운 곳으로부터, 미처 무음 해놓을 수 없는 낯선 곳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나는 설렘보단 전신이 두려움으로 떨린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내 말만 뱉을 뿐 제대로 타인의 말을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 유별난 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까다롭지 않아야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할 때 서로 편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고 싶어도 집착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사는 이유는 사랑인 것 같은데, 그로 인해 잦아드는 구속은 예민한 내게는 반갑지 않다. 모순이다. 내가 사는 이유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부딪는다. 아직 나는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불안을 느낄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유라는 게 불안함과 동반되는 것이기에 그리 외롭지도 않다. 다만, 사랑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내가 멀어질까봐, 그게 두려워.

 

02

자아를 찔러가며 무언가를 얻으려 달려가는 것은 노력이고, 자아가 사랑하는 것을 향해 기꺼이 달려가는 것은 노력이 아닐지 모른다. 목표를 향해 눈앞의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정말 사랑하는지 사랑하는 척을 했는지 갈리지 않을까.
자아를 눌러가며 얻어낸 것들은 평생 그림자로 나를 멤돈다. 사랑하는 것들을 찾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사랑이 식었다면 떠나야 한다. 사람이든 직업이든 음식이든 취미든.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 사랑하는 걸 좇으려 할 것이고,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내 안의 온전한 나, 날 것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

 

03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건, 그 문제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민을 한다고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문제 의식 속에서 살아내고, 묵묵히 기다리면 답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문제 푸는 과정이 있는 것처럼.
당연히 답보다 앞에 있는 건, 질문이다. 어떤 지혜로운 질문을 앞서 하느냐, 어떤 문제 의식을 가지느냐가 중요한 것 같은데, 나는 과거에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의 답에서 찾으려 했다. 거기엔 내 답이 없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답이지. 내 답은 내 안에 있단 걸 몰랐다. 지혜로운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최적화된 답이 아닐까.

 

04
연장전 내내 비겼다면 승부를 결정짓는 건 승부차기의 섬세함이다. 팟빵 앱, '[창비라디오] 진중권의 문화다방' 채널에서 황석영 선생님 편을 듣고 있다. 하신 말씀 중에 와 닿은 게, 글 쓴다는 사람들이 방에 틀어박혀서, 혹은 책과 인터넷을 참고해 쓰기보다, 쓰고 싶은 소재로 직접 살아보았으면. 그게 버거우면 관련자와 부딪히라는 말씀을 하신다. 발로 써야 디테일하니까.
김수영은 시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 했고, 니체는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고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도 전쟁통에, 남편의 속썩임에 한탄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였다. 글은 평소 쓰시지도 않았다. 문학적 기술보다도 깊은 경험과 디테일에서 오는 감동은 이길 수 없다. 좋은 글을 쓰려면 삶이 소재 그 자체여야 한다. 쓰려는 소재로 삶을 살아야 한다.

 

05

광고 전공이라, 배울 때도 그랬다. 예를 들어, 생리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선 아이디어 내는 방식을 생각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남자라도' 몇 주일 몇 달 내내 직접 차고 다녀봐야 좋은 광고가 나온다고 들었다. 착용했을 때 느낌이 어떤지, 앉았을 때는 또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향은 어떤지, 등등 직접 경험한 것과 여성들의 생각은 어떤지와 같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내면 머리로만 생각한 것과는 다른 디테일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현실 참여가 뒷받침되지 않는 콘텐츠는 감동을 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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