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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도망쳐도 돼

온화수 2015. 10. 8. 10:28

A는 한 달만에 콜센터를 그만두었다. 어떤 목표도 더는 상실했으며, 혼자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수습 기간 중 퇴사한 것인데, A의 입장을 들어보자면 이렇다. 애초에 전화 받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만연했고, 은근히 영업을 해야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영업직이 아니어도 여느 회사를 가도 그런 부분이 있는 거겠지만, 예민한 A에겐 너무나도 거대한 거인의 그림자로 다가왔다. 처음엔 전화만 받는다고 하다가, 점점 영업을 하게 만들었다. AS 전화를 받다가도 접수를 끝내면 바로 서비스의 연장인 척 영업을 하는 것이다. 지금 순간을 견뎌서 버텨낸들, 또 다른 장벽이 끊임없으리라,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A에겐 과거 그런 경험이 있었다.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나가려는 사람을 붙잡고, 패배자 취급을 하려 한다. A는 과거 군생활을 의경으로 제대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스쳤다. 닭장차(기대마) 안에서 구타가 일어나도 소대장들은 외면했고, 잘 때도 맞았고, 온갖 불합리한 상황을 최대한 버텨야했다. 콜센터가 불합리하기만 하다는 건 아니다. 불편하고 괴로운 상황을 빗대고자 얘기한 것이다. 그 안에서 고참이나 직원들은 이 안에서 못 버티고, 불합리한 건 일러서 다른 곳으로 도망가듯 간다면, 사회에 나가도 똑같을 것이라고. 그렇게 패배자 취급을 하기에 A는 믿었고 1년 6개월 내내 후임들의 잘못에 대신 맞으며 2년을 버텼다. 후임들을 안 때린다는 이유로 A가 맞았다.

 

 

 

A와 같이 고생하던 3주 차이의 윗기수 고참 두명이 있었는데, 가혹행위를 못 참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때 고참들은 그렇게 못 살게 굴어놓고 몇 없는 후임들이 줄으니 안타깝고 짜증나는 표정이 역력했다. 후임 수가 줄면 자신도 보직이 내려가서 허드렛일이 늘어나니까.

 

당시엔 남자답지 못하고, 사회 생활 못할 거라며 다른 곳으로 도망치듯 간 그 사람들 욕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A도 그렇게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다. A는 온갖 훈련과 구타로 1년 6개월을 버티고 마지막 4개월 정도를 너무나도 편하게 생활하고 뿌듯함도 있었지만, 그 1년 6개월이 삶에 많은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도망치듯 간 그 고참은 군기가 보다 약한 큰 조직의 행정반으로 갔다. 우리는 상병 말에서야 가능한 행동들을 일병인데도, 군화보단 구두를 신고, 사무 업무를 보고, 얼굴에 꽃이 피고 웃음이 가득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이 지옥보단 훨씬 나았을 것 같다.

 

그 고참은 패배감을 안고 도망치듯 갔다는 평가를 받으며, A의 부대를 보면 찡그리며 피해다녔지만, 마주치지만 않으면 과거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제대하고 몇 년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 고참은 나약한 게 아니고, 현명한 것이었다. 저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곳에서 버티고 높은 자리로 올라갔을 때, 편안함과 뿌듯함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욕을 먹고, 순간의 감정, 가슴이 뚫린 듯한 고통을 버틴다고 해서, 그 순간의 자신은 소중하지 않는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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