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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유튜브]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3부 - 강신주

온화수 2016. 3. 25. 02:08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그것이 머리에만 있기 때문이다. 관념적으로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골방에서 고전만 읽으며 현실을 외면하는 존재처럼. 


정말 자신을 제대로 여여하게 진여하게 바라본다면 행동이 바뀐다. 정치인이 나쁘다. 저건 비상식적이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행동은 하지 않는다. 행동을 해도 어떤 처벌을 받으면 괜한 짓 했다며 후회를 한다. 그것은 자기 그릇에 맞지 않게 자신을 조작한 행동이다.


삶을 제스처처럼 산 것이다. 정치인이, 자본주의가, 나쁘다고 비판을 하는 것. 그것을 연극과 영화 보듯 관조한 것이다. 그리 슬펐던 영화도 시간 지나면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게 제스처다. 


정말 자신의 그릇을 제대로 보고, 실천해서 피해를 본들, 무슨 상관이랴. 내 마음이 원하는 것에 충실했는데. 겁이 나고 후회할 것 같다면 현실에서 적당히 거부할 건 거부하고 타협할 건 타협하며 사는 것이다. 다 그릇이 다른 법이다. 자신이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은가.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한들, 다수에 동조해서,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떠밀려서 하지 말아야 한다. 다수에게 떠밀려서,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살게 되면, 어느 순간 영화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영화 정말 좋더라. 대박이었어. 정말 슬프더라. 시간 지나면 잊힌다. 


영화 보듯 삶을 관조했다면, 리얼은 어디 갔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마음보다 옳다고 믿는 외부의 다수의 주변의 가치관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려나고, 밀려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그걸 옳다고, 자신이 결정했다고 믿는 것이다.


리얼, 진실에 가까워지려면 마찰이 있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게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상관없다. 밀고 나간다고 해서 태풍을 전면으로 맞으며 정면으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추락할 것이다. 태풍이라면 때론 눈치 보면서 돌아가기도 하고, 힘들다면 천천히, 낮게 날기도 하되, 추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그렇게. 정의만 외치며 독불로 나가는 게 아니다. 1과 2의 사이엔 무한대의 소수점 뒤 숫자들이 있다. 정의냐, 타협이냐를 딱 나눌 수가 있을까. 삶의 리얼은 마찰에 있지만, 그 마찰의 강도는 조화로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