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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 강신주 본문

심리철학

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 강신주

온화수 2013. 8. 1. 15:54


맬러무드라는 작가의 작품 중 <수리공>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의 책을 인근 도시의 한 골동품상에게서 구입했습니다. 값으로 1코펙을 지불했는데, 벌기 힘든 돈을 그렇게 책 사는데 낭비해 버렸다고 금방 후회했습니다. 얼마 후 몇 쪽을 읽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마치 돌풍이 등을 밀고 있기라도 하듯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말씀드리지만, 제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을 접하게 되자마자 우리는 마치 요술쟁이의 빗자루를 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말 5쪽)


중국 송나라의 도원이 편찬한 <경덕전등록>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등장한다. 단하 스님이 목불을 불태운 이야기로 흔히 '단하소불'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에피소드가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혜림사라는 사찰에 들른 단하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나무로 만든 불상을 태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혜림사의 주지는 어떻게 부처를 나타내는 불상을 태울 수 있냐고 힐난한다. 그러자 단하는 사리를 찾으려고 이 불상을 태우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에 혜림사의 주지는 나무에 무슨 사리가 있냐고 반문하다가 마침내 자신도 모르게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도대체 혜림사 주지는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목불이란 것도 결국 부처처럼 숭배받아야 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단하와의 문답을 통해서 의도치 않게 목불은 나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토로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혜림사 주지의 깨달음은, 그가 목불의 본질이라고 가정한 해묵은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데 있었던 셈이다. (1. 사물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플라톤 VS 아리스토텔레스 27쪽)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저지 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은 소화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 이런 망각이 필요한 동물에게 망각이란 하나의 힘, 강건한 건강의 한 형식을 나타내지만, 이 동물은 이제 그 반대 능력, 즉… 망각을 제거하는 기억을 길렀던 것이다.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


스피노자의 후계자답게 니체는 신체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를 이야기한다. 새로운 음식을 먹으려면 위를 비워야 한다. 먹었던 것을 배설할 수 없는 소화불량에 걸린다면, 우리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니체는 정신도 육체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의 기억들이 정신에 가득 차 있다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기억의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살아 있는 현재가 있을리는 만무하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낯선 것으로, 그래서 불편한 것으로 경험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는 변화보다는 불변에, 차이보다는 동일성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역동적인 변화와 화려한 차이를 긍정할 수 없기 때문에 기억 능력만이 강한 사람은 불행으로, 우울함으로, 절망으로, 그리고 소심함으로 현재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급하게 발췌 후 책을 반납해서 페이지를 확인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