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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타인을 왜 이해해야 하나요?

온화수 2015. 3. 13. 02:51

 

"타인을 왜 이해해야 하나요?" 


 
글을 쓰다 의문이 들었다. 타인을 이해하라고 하는데 왜 이해해야 하는지. 누구 좋아서 하는 건지. 나만 이해하려 하고 상대가 안 한다면 나만 손해가 아닌지. 단순히 누구나 할 수 있는 두루뭉술한 말 말고 설명할 수 없는지. 여러 곳에 왜 타인을 이해해야 하느냐며 질문을 올렸다. 돌아오는 답은 예상했거나 실망스러운 답변들.  
 
근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댓글로 예의상 고맙다고 질문과 느낌을 쓰기 시작하면서 실마리를 찾아갔다. 단순히 공동체니까! 이런 말보다 구체적인 답을 원했기에 여기저기에 물어봤던 것이다. 내 나름 정의내린 실마리?는 '나 혼자만 잘 살지 않기 위해서'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한 건, 개인적 일시적 쾌락은 줄이고 집단적 반영구적 쾌락을 늘려서, 되도록 많은 사람이 만족하며 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정치를 봐도 그렇다. 실패한 4대강 사업이 국민 세금을 부었지만, 4대강 관련 사업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 그들의 지인들은 좋았을 것이다. 그 입장에 있다면 넌 안 그랬을 거 같냐며 생각할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문제의 당사자일 때와 제3자의 입장에 있을 때, 종종 윤리적 판단을 다르게 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가장 관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윤리에 대한 담론들을 진행할 때면, 일반적으로 문제 상황과는 무관한 제3자의 입장을 전제해야 한다. "네가 그 입장에 있어봐!"라는 비판은 윤리적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면 투기보다 건설적인 방향에 투자하고 여론이 그런 방향으로 공감하지 않을까? 살기 힘들수록 멀리봐야하는데 힘든 상황에서는 겨우 코 앞을 볼 수 밖에 없지만.  

 

 


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대화했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있어서 쉽지 않겠지만. 시간과 환경이 어렵다면 책과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 그 안엔 다양한, 유별난,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나온다. 사회적으로 욕을 먹어 마땅한 인물임에도 그의 삶이 나오고 그의 감정이 나온다. 한 편으론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거나 하는 동정이 일 수도 있다.  
 
범죄자까지 이해하자는 게 아니라, 맞다고 혹은 잘못됐다고 굳어져있는 그 상황을 한 번 의심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게 정말 잘못된 건가? 이 법이 무조건 정당한 것인가? 이해 관계에 얽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수많은 질문들.     
 
이런 의심들이 서로를 절충하게 만든다. 토론하고 타협하게 만든다. 그래서 일시적 개인적 쾌락보다 길게 보는 다수의 미미한 드러나지 않는 쾌락이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까. 당장 눈 앞이 행복하다고, 나만 좋다고 그게 좋은 걸까? 보다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