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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비경험의 경험

온화수 2015. 11. 24. 02:48

지인 결혼식이었다. 걸음걸이부터 자신감으로 가득해 보였던 S와의 대화 일부분이다.  


"넌 왜 결혼식 잘 안 다니냐?"


"거기 가서 초라하게 만들어지는 내가 싫어. 다 각자의 경험이 다른데 사회적 잣대 하나로 자기 경험이 위인 척하는 초라한 사람들을 굳이 설득하고 싶지 않아." 


"왜?" 


"조지 오웰처럼 밑바닥의 삶을 소설로 쓰고 싶어. 내가 그런 모임에 가서 요즘 뭐하느냐고 물었을 때 떳떳이 말해도 왜 저렇게 사느냐는 반응이 시선이 너무 싫어. 내가 아무리 설명한 들 그들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정답을 이미 정해놓았으니까." 


"너 전에 광고할 때 상도 받고 그랬잖아. 서울에서 회사 다니면서 쓸 수도 있잖아." 


"야근이 당연한 그런 환경에선 집에 오면 쓰러지기 급급하더라. 글 쓸 시간도 없어. 너도 그렇잖아.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니가 하고자 하는 공부할 여력이 생길까? 꿈에서 멀어질까 봐. 난 그게 두려운 거야." 




"20대일 때는 많은 경험을 해봐야지. 서울에서 번듯한 회사도 다녀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렇게 하다간 결혼도 못한다." 


"꼭 사회적 시선의 경험이 경험이니? 난 비경험의 경험이란 말을 좋아해.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공장 다니는 경험을 안 한 거 아니야? 반대로도 그렇고. 아. 그리고 결혼 안 하면 불효자가 되는 대한민국에서 그 괄시를 버텨내는 삶이 얼마나 가슴 절절한 경험인지 아니?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내 삶에 있어 성공보다도 글쓰기가 1순위라고."


"글을 쓰려면 꼭 그렇게 살아야 해?" 


"아니. 자기 자유지. 하지만 내 맘이 약자들의 삶을 향하니까. 알려면 그곳으로 뛰어들어야지." 


"그러면 삶이 불안하지 않을까?" 


"불안하지. 넌 대기업 다니면서 안 불안하니? 모든 걸 가질 수는 없잖아. 무언가를 얻으려면 뛰어들어야지. 돈, 성공, 사회적 시선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이도 저도 안 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무언가가 좋다면, 온 삶이 그게 돼야 해. 무슨 말인지 알아? 광고가 좋다면 삶이 광고가 돼야 하는 거. 온종일 아이디어 생각을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광고를 만들까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는 거지. 나는 글쓰기니까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바람만 불어도 뭔가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내 업무 시간이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되니 급여는 줄어도 퇴근이 보장되는 곳으로 옮겨야겠다. 뭐 이런 것들. 다 번듯하게 사는 척 하지만, 다수의 삶은 비슷비슷하게 초라해. 다수가 번듯하게 산다면 송곳 같은 드라마는 공감받지 못했겠지."


"쉽게 살자. 태은아 제발."


나는 매번 여느 자리에 가면 과정의 중간엔 즐거운 사람이 되지만, 결과로 갈수록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뱉는 몽상가가 된다.